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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소년 May 01. 2024

엄마,  정상으로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19살 토익만점 글로벌 자율주행 AI 팀장


복지관의 최고 슈퍼스타! (장애인도 멋지게 살고 싶어해요.^^)



유치원 대신 산골축사 유치원을 졸업한 유빈이는 8살이 되어 와부읍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유빈이가 유치원을 가지 않아 단체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해 친구들과 잘 어울릴지,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등 모든 게 걱정이 많았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유빈이는 학교생활을 너무 즐거워했고 특히 노래와 율동 수업을 좋아했다. 유치원을 졸업한 친구들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율동이나 노래 수업을 이미 배워 흥미가 덜 했지만 유빈이에게 이 모든 게 처음으로 배우는 것들이라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휘성이에게 가르쳐 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문제는 학교까지의 거리였다. 산골축사에서 초등학교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 통학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눈과 얼음 때문에 집 앞 비탈길이 눈썰매장처럼 미끄러워 통학버스를 탈 수 있는 도로까지 나가기가 위험했다. 유빈이뿐만 아니라 곧이어 연년생인 휘성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산골축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우리는 주변 지역 알아보았고 산골축사에서 가장 가까운 두물머리로 이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라 이름 붙여진 두물머리는 친환경 공원과 수변녹지가 많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자라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서울 근교의 마을이었다.


산골 축사에서 내려와 유빈이와 휘성이 둘 다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산골에서 사용되는 생활비보다 많이 들게 되었다.  꿈소 부부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적합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꿈소는 산골에서 사람들과 갈등 없이 오랫동안 생활해 온 탓에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적인 일보다는 월급이 적더라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또한 청년 시절  꿈소 자신과 한 약속도 잊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꿈소는 양평의 한 작은 지체 장애인 복지시설에 지원하였다.


꿈소 자신과의 약속은 멀리 군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꿈소는 강원도 화천에서 군대 생활을 했는데 인적이 드문 접경지역이다 보니 불법 가혹 행위가 아주 많았다. 평소 선임들의 합당하지 못한 일에 대한 꿈소의 항의로 감당하기 힘든 가혹행위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당해야만 했다. 결국 허리를 다치게 되었고 아무런 치료나 보상도 없이 점점 심각할 대로 심각해진 허리 통증과  함께 만기 제대하게 되었다.


군대에서의 이런 잔인한 경험으로 꿈소의 꿈과 미래가 영원히 바뀌게 되었다. 대학 시절 꿈으로 부풀어 늘 패기만만했던 꿈소는 군 제대 후 거의 6년 간을  평범한 생활이 사치일 만큼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을 오르락 내리는 경계선을 넘나들며 참혹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한 고통을 겪으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마치 나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얻게 되었다.


얼마나 허리 고통이 심했던지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신에게 단 10분만이라도 편하게 누워 잘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꿈으로 가득 찬 내 뜨거운 심장은 이렇게 젊음의 에너지로 힘차게 뛰고 있는데 그 꿈을 향해 달릴 수 없는 나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워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음을 삼켜가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때 이 고통이 멈추고 몸이 회복된다면 이 사회의 소외된 분들을 돕는 일에 꿈소의 평생을 헌신하겠다는 애절한 기도를 수없이 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밤낮으로 송곳으로 허리를 찌르는 듯했던 극심한 고통이 부모님과 꿈소의 기도가 하늘까지 닿았는지 26살 어느 날에 정말 기적처럼 멈추었고 나는 신께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년 200명을 모아 소년소녀가장과  장애인들의 집을 고쳐주는 청년 봉사단을 먼저 만들었다.


일단 봉사단은 열정적으로 만들었지만 봉사에 대한 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단순히 새 집으로 잘 고쳐주면 된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였다. 한 달에 한번 나가는 봉사를 위해 연구소 근무가 끝나면  봉사단 임원들과 한 달을 바쁘게 보냈다. 첫 봉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든 줄도 모르고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드디어 집 고치는 봉사 첫날이 밝았다. 자원봉사자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집을 새로 고치고 도배도 해주었고, 밀린 빨래를 하고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청년 20명이 집을 완전히 새집으로 바꾸어 주고 나니 비록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음만은 하늘을 날 듯 뿌듯했다. 정말 세상에 태어나 가장 보람된 하루를 보낸 개선장군처럼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 온종일 봉사를 해서 비록 몸은 뻐근했지만 월요일 가뿐한 마음으로 연구소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는데 집을 수리해 준 장애인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내용을 듣는 순간 황당함과 미안함으로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우선은 빠른 대처가 필요한 일이어서 봉사단원 중 바로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단원을 보내 겨우 사고를 수습할 수 있었다.


우리가 봉사를 나간 장애인은 50대에 당뇨병 합병증으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 방문 봉사자의 도움으로 사는 분이었다.


봉사단을 만들고 처음 하는 일이라 물질적인 것만 준비하면 되는 줄 알았지 장애인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분이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집 안을 청소하고 수리하는 도중에 그분이 평소 사용하던 도구들의 위치가 모두 바뀌어 있었던 거였다.


결국 우리는 봉사자가 아니라 그분께 불편만 끼친 채 우리끼리만 만족한 봉사를 한 셈이었던 것이다. 이후 며칠 동안 청년 봉사단원들이 교대로 그분이 찾는 물건의 위치를 익히게 도와드린 후에야 비로소 안도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 꿈소가 한 봉사는 진정한 의미의 봉사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명예를 위해 시작한 것 같았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그런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그래서 유빈이와 휘성이가 어릴 때부터 사회적 약자들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도록 꿈소가 근무하던 장애인 시설 봉사를 계획하였다.


꿈소는 아내에게만은 늘 빵점인 남편이다. 산골축사에서 그렇게 고생을 많이 시켰으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여야 함에도 월급이 높은 직업을 찾지 않고 양평에 있는 지체장애인 복지시설에서 한 달에 100만 원을 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봉사정신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출근하는데만 해도 1시간 30분이 걸렸고 근무를 마치면 녹초가 되어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꿈소는 자신의 장애인 제자들을 예수님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장애인들은 질 낮은 음식물을 주어도 남들이 버린 옷을 주어도 항상 기뻐하였고 심지어 자신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복지비를 다른 이에게 모두 빼앗겨도 해맑은 미소를 짓기만 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일하다 보면 평생을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복지시설장들도 많지만,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장애인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꿈소는 장애인 제자들을 위해 가진 모든 재능을 최선을 다해 나누었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의 주인공 '키팅 선생님'보다 더 멋진 선생님이 되어 그들의 행복을 지켜주고자 노력했다.




형들 많이 먹어^^



유빈이와 휘성이가 처음에 복지시설에 도착했을 때는 시설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와 지체 장애인들의 행동이 무서워서 피해 다녔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린 선생님이 되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음료수도 가져다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냄새나는 화장실 청소도 하면서 초보 선생님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려서 모른다고만 생각하는데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 속에는 다른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있다. 우리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의 공부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약자들과 함께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건전하고 배려 많은 세상이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장차 아이들이 자라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형제자매는 우애 깊은 자녀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꿈소는 봉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정한 봉사자는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봉사를 받아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멀쩡한 몸으로 육체와 정신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짧은 시간에 돕고서 그 봉사에 대한 대가로 행복을 얻지만, 장애인들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고 그들이 봉사를 받아주어 오히려 우리 같은 정상인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유빈이와 휘성이는 그날 봉사로 장애인들의 생활을 경험하고 난 뒤에 난생처음으로 자신들이 정상적으로 태어난 것 자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빈이와 휘성이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비록 풍족하지는 않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들이 얼마나 감사한지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날 봉사를 하며 느낀 바를 쓴 글은 지금까지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처음의 두려움과 어색함은 사라지고... "형, 누나, 오늘 우리 잘했지?"^^



우리들은 너무 행복해서 몰랐어요...


우리가 싫어하는 숙제

우리가 싫어하는 음식

우리가 싫어하는 옷


우리가 싫어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이란 걸 이전에는 몰랐어요.


아빠가 돌보는 지적 장애인들은 신문지와 몽당 연필만 줘도 좋아하고 김치만 줘도 맛있다고 하고

구멍 나고 냄새나는 옷만 줘도 행복해한대요.


천사 같은 장애인에게 귀하고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고 아빠는 항상 말해요.

그들에겐 함께하는 가족도 없고, 정상인처럼 오래 살 수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쓸쓸히 인생을 마감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제일로 귀하고 좋은 것을 주어야 한대요.


그래서 아빤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아빤 장애인들의 학용품과 맛있는 반찬과 깨끗한 옷들을 제공해 주기 위해 저희가 무관심했던 장애인들에 대한 교육을 매일 해주시고 함께 토론해요.


저희도 아빠와 같이 장애인들을 위한 인권을 찾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2015. 05. 20.

봉사를 통해 미래의 인권 운동가 유빈이와 휘성




           혼자 꾸는 꿈보다 함께 꾸는 꿈이 더 행복하다.           

-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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