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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Feb 09. 2020

새로운 만남

2017


새로운 만남


새로운 나라에 오게 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내가 새로운 곳에 가기 전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 말이었다. 초중고를 통틀어 딱 한번 이사를 해본 나에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 만나기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학원을 가거나 등의 새로운 장소에 가면 당연히 새롭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곤 했지만 그럼에도 그 새로운 만남들 후에는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낯선 나라, 새로운 나라에서는 모든 게 새롭고 또 새로운 사람들밖에 없었다. 친한 친구들, 오랜 시간을 보내서 내가 '아 그거 있잖아'라고 말하면 '아 그거 뭔지 알지'라고 대답해주는 사람들 없이 완전히 낯선 공간에 나 혼자 뚝 떨어진 건 처음이라 신 이나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선생님은 원래 소심하고 말이 없는 편이셨는데 선생님을 아무도 모르는 대학교에 가면서 성격을 바꿨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게 기억이 났다. 정말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있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나는 선생님처럼 성격을 바꾸거나 나에 대해 크게 바꾸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새로운 사람일 때의 느낌을 알게 되었다. 낯선 것들에서 오는 스트레스. 새로움에서 느끼는 설렘,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신기함에서 오는 두근거림. 



처음에 도착해서 학교 한인 학생회의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서 기억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여기에 학교를 다니며 이미 1학년인 사람들. 두 번째, 같이 파운데이션에 입학했지만 전에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하다 온 사람들. 세 번째, 나처럼 유학을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처음 여기에 온 사람들.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파운데이션 과정과 본과 과정에 대해 짧게 소개하자면 먼저 네덜란드는 한국과 교육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네덜란드 대학교 1학년을 입학하려면 한국에서 대학교를 1년 다니거나 혹은 외고를 다니거나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등 입학 조건들이 있다. 그 입학 조건에 해당되지 않을 때는 파운데이션이라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의 과정을 반년에서 1년 정도를 수료해야 한다. 파운데이션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경영/경제 학과를 위한 과정 그리고 PPLE (Politics, Psychology, Law and Economics) 과정이 있다. 두 파운데이션 과정은 9월 시작과 1월 시작, 1년에 두 번 입학 기회가 있고 파운데이션 과정을 통과해야만 본과 과정에 입학할 수 있다. 나는 당시 1월 파운데이션 PPLE과정을 통해 입학했다. 


아무튼 다시 사람들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던 본과 1학년, 2학년 사람들은 나에게 그리고 나와 함께 파운데이션을 시작한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선배이자 대단한 개척자들로 보였다. 낯선 나라에 이만큼이나 적응해서 모든 걸 알려주는 사람들. 당시 트램과 메트로 등 모든 교통수단이 존재하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타는지도 모르고 또 우리가 탈 수 있다는 생각 조차 못해서 학교까지 거의 한 시간을 늘 걸어 다니던 우리에게 교통카드의 존재, 식료품 가게의 위치들을 알려주던 선배들은 엄청난 사람들로 보였다. 


또한 나와 함께 파운데이션에 왔지만 이미 유학을 하던 사람들은 같이 이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익숙하게 영어를 쓰는 모습이 부러웠던 것 같다. 그동안 한국에서 모든 교육과정을 배우고 해외여행이라고 해봤자 친척들 집에 방문하는 것 한번,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갔던 여행 한 번 총 두 번 밖에 없었던 나에게 영어란 아직 친숙한 언어가 아니었다.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어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잘 쓰기 때문에 영어로 대부분의 소통이 가능한데, 해외 생활이 처음인 나는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영어를 쓰는 나 자신이 오글거렸다. 


마지막으로 같이 모든 게 처음이었던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함께 유학을 시작한 친구들은 서로 많은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서로 영어를 쓰는 것에 대한 막연한 느낌에 대한 공감, 한국과 많이 다른 점들에 대한 신기함 들을 이야기하며 친해졌던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 번에 새롭게 만나고 친해지고 하는 과정이 피곤했지만 다 같이 한국이 아닌 타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빠르게 친해지고 빠르게 마음을 나눴던 것 같다. 당시에는 피곤하다는 느낌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적응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지금은 벌써 네덜란드에 온 지 4년 차로, 다시는 이때의 감정들을 못 느낀다는 게 아쉽긴 하다. 이제는 다 익숙해져 버린 공간들이 새로웠던 시간들이 그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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