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부터 런던에 대한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가지고 있던 나는 유럽, 하면 런던이 생각날 정도로 신사의 나라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물론 역사를 배우면서 신사의 나라가 진짜 신사의 나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중절모를 쓴 신사가 비 오는 밤거리를 걷는 미스터리하고 정중한 분위기의 런던을 그려왔기 때문에 바로 다음 여행지로 런던을 선택했었다.
먼저 입국심사를 받을 때 해리포터 여권 케이스를 갖고 있던 나에게 입국심사원이 "너 어느 기숙사야?"라고 물어봐서 영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아, 여기가 해리포터의 나라구나, 내가 영국에 왔구나 하는 게 새삼 실감이 났었다. 지금까지 런던에는 총 두 번, 그리고 스코틀랜드에 한번 갔었는데 갈 때마다 입국심사원들이 다들 무척 친절해서 기억에 남는다. 역시 신사의 나라인가 싶었다. 물론 지금은 바뀌어서 입국심사대를 거치지 않고 자동입국도 가능한 것으로 아는데 그 이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입국심사대를 핑계로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한번 영국에 놀러 가고 싶다.
아무튼 첫 순간부터 설레던 런던 여행은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로 들어가면서 더더욱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런던에는 공항이 여러 개가 있는데 시내에서 먼 공항일수록 비행기 표가 저렴했고 먼 공항부터 시내까지 가는 길에 런던의 길거리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은 저렴한 표를 사면 왕복 50유로 정도라 여행을 가기 쉬운데 다만 비행기 표에서 아낀 비용은 숙소비로 모두 나가는 것 같다. 악명 높은 런던의 집세와 물가는 여행으로도 체험할 수 있었다. 먼 공항에서 런던으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 런던 시내를 한시라도 빨리 구경하고 싶어 조금은 조급해지고 공항이 멀어도 너무 멀리 있지 않나 싶을 때도 있지만, 시내 쪽으로 들어오면서부터는 셜록의 집도 슬쩍 볼 수 있고 런던의 풍경도 살짝 볼 수 있어서 약간 여행의 시작에는 프리뷰이자 여행의 끝에는 마무리 영상처럼 감상하기 좋았다.
런던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오이스터 카드를 만들어 예약한 에어비앤비로 향했는데 다행히 주인 분들이 매우 친절해서 그 또한 여행의 설렘을 더하기에 충분했었다. 그리고 런던의 그 유명한! 이층 버스를 타는 순간은 한순간이지만 나를 런더너로 만들기 충분했다. 혹시 영상을 찍어 여행을 기록하는 사람이라면 꼭 2층 버스의 2층 맨 앞줄에 앉아 타임랩스로 영상을 찍어보길 추천한다! 나중에 보면 정말 예쁘고 2층 버스!!! 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런던을 처음 갔을 때 런던의 비 오는 추적추적한 분위기를 잔뜩 느끼고 싶었는데 에어비앤비 호스트도 일 년의 몇 안 되는 해 좋은 날 왔다고 축하한다고 할 만큼 여행 내내 햇볕이 쨍쨍했다. 처음 온 런던인 만큼 주요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녔다.
박물관들과, 버킹엄 궁전, 런던아이, 빅 벤 등 여기가 런던이다!라고 소리치는 곳들을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사실 제일 좋았던 건 소소한 런던을 마주치는 일이었다. 네덜란드 지하철은 더치어로 안내 방송하는데 런던은 악센트 강한 영어로 지하철 안내 방송을 하는 걸 듣게 되었을 때, 뮤지컬 거리에 복작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건널 때, 빨간 전화 부스를 마주쳤을 때, 그런 소소하고 작은 런던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지난 벨기에에서도 언급했듯이 반짝이고 화려한 걸 좋아하는 나에게 런던은 벨기에와는 다른 반짝임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벨기에의 밤은 그랑팰리스의 크고 화려함에 집중되었다면, 런던의 밤은 바쁜 21세기의 대도시 사람들과 과거와 마주칠 수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 사이에서의 반짝임으로 가득했다.
또 나처럼 반짝이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런던의 곳곳에 있는 박물관들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게의 박물관 미술관들이 무료여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또 한국인 분들이 진행하시는 박물관 가이드를 들으면 더 알차게 구경할 수 있다. 그냥 보는 것보다 숨겨진 이야기들을 듣고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보는 게 훨씬 좋은 작품들도 있었다.
런던 두 번째 여행 때는 몇 시간을 빼놓고 또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잠깐 날이 흐릿할 때 내가 생각하던 런던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꼭 검은색 큰 우산을 들고 비 오는 런던 거리를 걸어봐야지. 테이트 모던 앞다리를 에어팟 아니고 꼭 이어폰 끼고 걸어봐야지.
아 그리고 테이트 모던 제일 꼭대기층 뷰는 꼭꼭 한 번쯤 올라가서 볼만 하다! 런던 전체를 눈에 담기에 좋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카페 스콘이 정말 맛있었다.
이외에도 런던은 즐길거리가 너무 많아서 행복했다. 해리포터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직접 볼 때의 짜릿함과 셜록의 집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두근거림까지. 기회가 된다면 한 이주 정도 넉넉하게 여행해보고 싶은 도시이다. 런던 근교도 참 예쁘다고 하던데... 여행은 늘 3박 4일이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런던만큼은 이주 정도 넉넉하게 런던만! 혹은 런던 근교까지만! 여행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리고 벨기에 여행처럼 특정한 맛집을 추천하는 건 아니지만, 런던에 간다면 꼭 한 번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그냥 간식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비쌀 수도 있는데 사실 3단으로 된 애프터눈 티는 아래부터 올라가면서 위의 달달한 디저트까지 먹고 나면 한 끼 식사 같은 느낌이라 식사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다. 런던에 정말 예쁘고 분위기 좋은 그런데 심지어 맛도 좋은 애프터눈 티파는 곳이 많기 때문에 꼭꼭 꼭 한 번은 여행을 하며 방문했으면 좋겠다. 진짜 진짜 맛있다! 그리고 스콘 위에 클로티드 크림을 먼저 올리는 게 더 맛있는지 딸기잼을 먼저 올리는 게 맛있는지 고민하면서 한입씩 먹으면 스콘만 여행 내내 찾을 수도 있다. 스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