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엎드려 드리는 고백

주신이가 거두셨다

광풍처럼 불행이 몰아닥친다. 그것도 자녀들이 맏아들 집에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평안한 일상에 닥쳐온다.

종들은 계속해서 불운의 소식을 전해온다. 그가 말하는 동안 또 한 사람이 아뢰러 들어온다. 공통적인 전갈은 나만 홀로 피하여 주인께 아뢰러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전갈을 전하는 종은 욥의 자녀들의 식사자리의 불운을 전한다. 거친들에서 큰 바람 불어 집 네 모퉁이를 쳐 자녀들이 즉사했다.


모든 불행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다. “뜻밖의 일”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도 실제로 내게 닥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 된다. 그것은 인간의 “뜻 밖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무릎 조금 앞 땅에 손을 놓고, 두 손 사이로 코와 이미를(코를 먼저) 땅에 댄다.”

그 소식에 반응하는 욥의 행동들은 많지 않았다. 몸의 상처도, 누더기를 걸침도, 먼지를 뿌림도 애가도 울음도 단식도 없었다. 이는 단지 ‘단순” 내러티브 스타일의 질서인가, 아니면 격정의 대화로 터져 버릴 과잉 억제의 신호인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 온즉 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욥은 자기가 겪는 고통에 초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존재의 터전이 무너진 것처럼 반응하지는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그는 그것을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만 받아들인다. 여느 사람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평정심이다.

욥은 “까닭 없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탄의 패배는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욥의 이 순전한 신앙이 또 다른 불행의 전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욥은 어찌 그리 무덤덤해 보일 수 있는가? 모든 소유와 가축들이 도적에서 강탈당하고 불에 살라지고 자녀들 모두가 광풍에 잃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삶에 연거푸 닥쳐드는 상실과 환란에 우린 어떻게 반응할까? 너무 쉽게 욥의 고백을 읽고 있지 않은가?

나는 생각해 본다. 큰 상실을 마주하고 욥은 고백했으리라. "주신 분도 하나님,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 그리고 긴 침묵의 끝에 어렵게 뱉어진 한마디.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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