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는 말들

혀의 채찍이 위로인가?

욥을 후벼 파는 말들, 욥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들. 엘리바스는 위로한답시고 욥의 환부에 소금을 들이붓는다. 욥은 이제 만신창이. 그가 감내해야 했던 심적, 육적 고통에 죄인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낙인효과’이다. 일단 어떤 사람을 나쁘다 낙인찍으면 상황이 변해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이 되어 욥에게 충고하다. 엘리바스는 욥이 당한 재난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본다.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8절)


‘나라면’이라는 단어가 참 묘하다. 우리도 이런 말을 종종 한다. 이 말속에는 이미 상대방에 대한 무시 혹은 구분 짓기의 욕망이 잠재되었다.


엘리바스는 욥이 회개하면 하나님이 구원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여섯 가지 환난과 일곱 가지 환난 중에도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신 다는 것이다.

이 위로가 적절한가? 도리어 절망을 가중시키는 아픈 말에 불과하지 않은가? 욥이 무슨 죄를 범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음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은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눈시울이 시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엘리바스의 말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마음에 내리는 단비이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이 말씀과 만나는 순간 큰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혀의 채찍’이라는 단어가 있다. 참담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지당한 말씀은 오히려 "상처에 뿌리는 소금"일 수 있다.


평소에는 축복처럼 들리던 말이 어떤 때는 비수처럼 살을 파고들기도 하니 말이다. 때로는 언어가 소통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