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공감 없는 비판은 독

소위 정답만 말하는 사람이 제일 재수 없다.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고난당하는 사람에 대한 공감은 없고 신랄한 비판만 남을 때 우린 어디서 위로를 구할까?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탄식과 함께 침묵을 깬다. 그는 태어날 때 죽었어야 했다 말한다. 욥의 말은 친구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욥을 죄인이라고 몰아넣는 엘리바스

한동안 곁에 있어줌으로 욥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친구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3장에서 터져 나온 욥의 탄식으로 인해 변하고 만다.

먼저 엘리바스가 등장한다. 그는 벗들 가운데서 나이도 제일 많고, 자기 수양도 잘 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원망하면 안 된다"라고 한다.


엘리바스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경험을 한 결과, 인간의 고난과 슬픔이 인간 삶의 불순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알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당한 고난이 “그 사람”이 불순하고 불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엘리바스는 이 고난을 기회로 삼아 욥이 좀 더 온전한 길을 걷고, 하나님과도 더 가까워지라고 한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무소유가 된 지금이야말로 하나님만이 나의 기업임을 고백할 기회가 아닌가, 신앙을 완전을 이루고 도를 이룰 좋은 기회가 아닌가? 왜 흔들리는가. 확신에 찬 경건은 어디 갔는가?


엘리바스는 욥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인간 욥은 없고, 인생만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욥에게 잔인한 말이다.


차라리 칠일동안 침묵할 때가 나았다. 입을 열어 지혜랍시고 떠드는 말이 욥에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 우리도 엘리바스처럼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잘난 체 떠들며 그들의 상처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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