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됨의 척도

공감

공감이야 말로 인간됨의 척도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이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상황이 변했다고 입장과 태도를 바꾸는데 욥이 볼 때 그것이 무슨 우정인가 하는 것이다.

염량세태(炎凉世態)라는 말이 있다. 볕 좋은 날에는 가까이 지내고, 흐른 날에는 멀어지는 것이다.


16절부터 18절까지는 바로 그런 상황을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욥은 지금 광야길을 걷다가 마른 목을 축이려고 기억에 의지하여 그 개울을 찾아온 ‘데마의 대상’이나 ‘스바의 행인’(19절)의 실망 혹은 절망감을 맛본다.


그는 친구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재물을 달라고도 위험한 적들의 손에서 구해달라고도 말이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마치 욥을 ‘더러운 오물’로 보 듯하고 있다. 마치 그를 비난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옮겨올지도 모를 재난을 피하는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 몰골을 한번 보더니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군.

내가 자네들에게 무슨 부탁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 푼 달라고 하기를 했나.

날 위해 위험을 무릅써 달라고 했나.

그런데 왜 이리 말을 돌리고 발뺌하기에 급급하나?"


욥기 6장 14~30절


그는 이렇게 우기와 건기에 달라지는 와디(건천) 같은 친구들의 모습에 실망한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지 않네. 온천지는 변해도 나 버리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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