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쉽게 말하지 말라
희망고문시대 우리의 대처법
by 인문학연구소공감 김광영 Jan 24. 2023
한 작곡가가 희망찬 얼굴로 말했다.
"한 달 후면 모든 게 끝날 거야.
꿈을 꿨는데 다음 달 3월 30일에 독일군이 항복했거든."
3월 30일이 되었지만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시름시름 앓던 작곡가는 바로 다음 날인
1945년 3월 31일에 숨을 거두었다.
나는 깊이 깨달았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은
자신의 목숨마저도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살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도 가장 나태한 방법이니까.
1945년 4월 빅터 프랭클은 유태인 수용소에서 해방되었다.
그가 남긴 말이 있다.
"육체적 자유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 나의 의지는 분명 내 것이었다."
"사람은 어떠한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Victor E. Frankl)
포로수용소라는 절망의 공간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가 오히려 희망을 많이 이야기하는 낙관주의자라는 사실은 단순히 희망을 많이 말한다고 해서 절망에서 헤어 나올 수는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까 작곡가처럼 희망에 대한 확신이 그를 오히려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환상문학의 거장 ‘빌리에 드 릴라당’은 1883년 단편소설에서 ‘희망고문’(The Torture of Hope)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소설의 주인공 유대인 랍비는 고리대금업을 했다는 죄목으로 종교재판소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나올 가능성이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출구를 발견했다.
고통의 세월가운데 출구를 보고 탈출 가능성을 엿본 랍비는 얼굴에 생기가 돌고 온몸이 삶의 의욕으로 충만해졌다. 그는 상상하기 시작한다. 밤새 도망을 쳐서 산속에 숨어들 수만 있다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순간, 자신의 팔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림자는 서서히 다가와서 이윽고 그를 삼켜 보리고 만다. 환각이 아니다. 마침내 누군가가 자신을 껴안았음을 깨달았다. 그를 단단히 움켜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종교재판소장이었다. 랍비는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종교재판소장에게 안겨있는 것이다. 이 운명의 저녁은 미리 준비된 고문이었다. 바로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이다.
프랑스 작가가 <희망고문> 소설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일까? “희망을 살짝 보여주었다가 그걸 움켜쥐려는 찰나 다시 빼앗아 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고문이라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 작가인 ‘장 아메리’는 열정적인 레지스탕스 활동과 그로 인한 투옥, 고문,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견뎌낸 생존자로서 스스로 ‘자유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심지어 자살한 호텔방의 숙박료와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메모까지 남겨놓았다고 한다.
이 ‘장 아메리’는 ‘인생은 살 만하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하다.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희망을 품게 만드는 것이 참으로 헛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희망고문’이라고 한다.
진실에 기반하지 않은 말로 희망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한 고문 일뿐이다. 희망할 수 없는데 희망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야 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