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연구소공감 그림책 읽기
수세기 동안 가족은 경제적 협동 혹은 일상생활의 공유를 지속하여 정서적으로 만족을 얻는 사회생활의 기초 단위로 인식되었고,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생활하는 장으로서 가장 원초적이고 친숙한 집단으로 이해되어 왔다. 또한 자유연애가 일반화된 이후로 가족은 사랑과 결혼의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여겨져 왔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가족은 ‘사랑-결혼-가족 형성’이라는 도식화된 공식이 성립되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이상화 및 신성시되었던 가족이데올로기는 현재 급속히 해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수렵채집사회인 원시시대에는 생존이 최대 과제였기 때문에 소유와 재화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수렵사회가 농경사회로 전환되면서 잉여식량과 경작을 위한 토지, 도구, 가축 소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 결과 분배의 경쟁이 나타나고 이를 독점하기 위한 사유화가 진행된다. 이렇게 사유재산이 생기면서부터 상속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때 출산과 수유에서 자유로운 남성이 생산 활동을 담당하게 되고 자연스레 토지와 도구 등 생산수단을 관리하게 된다. 생산수단을 관리하게 된 남성들은 그들의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할 수 있는 수단을 모색하게 되었고, 이는 부자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집단혼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렇듯 사유화와 상속의 필요성으로 말미암아 가부장 가족이데올로기가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전통적 가족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근간이 된다.
전통적인 가족이데올로기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서 가부장 권력 하에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이 종속적 관계를 형성하며, 이중적 규범의 일부일처제와 젠더이데올로기를 통한 남녀의 성별 분리 등을 특징으로 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여성의 권리 향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전통적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해체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어떤 형태로 형성되어 발전, 해체되고 있는지, 그 변화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사회통제의 기제로 사용되고 있는지,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사회의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자 한다.
가부장제에 대하 논의는 가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주로 연구되어 왔다. 또한 가부장제에 국한하여 논의한 연구가 있다. 전자는 서양가족사를 다룬 연구와 한국가족사를 다룬 연구로 구분되는데 주로 가족의 변천사를 중심으로 경제적 요소나 정치적 요소가 어떻게 가족이데올로기를 형성하여 왔는지를 분석하는 것이고, 후자는 범위를 좁혀 가부장제, 특히 근대 이후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의 억압기제로 사용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이론적으로 살펴보자. 인류역사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잉여식량과 분배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인류는 서로 경쟁하게 된다. 사유화의 문제가 생기면서 상속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자기의 재산과 생산수단을 물려주기 위한 방안으로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사회의 공공 부분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남성들의 역할이 강화되고 생산수단을 확보한 남성들은 여성을 가정이라는 사적 부분으로 그 역할을 제한시켜 버린다. 특히 근대 이후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더욱 억압하며 그 이념을 공고화한다.
가부장제(patriarchy)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문자 그대로 아버지의 지배를 뜻하지만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로 쓰인다. 케이트 밀레트(Kate Millett)는 가부장제를 아버지의 지배가 아니라 남자의 지배를 의미하는, 그 자체로서 권력관계와 지배의 보편적인 양식으로 보았다. 가부장제는 상이한 사회, 역사적 시기, 계급적 차이를 막론하고 전면적으로 퍼져있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시스템이다. 하트만(Hartmann)은 가부장제를 물적 토대를 갖고 있는 남성들이 비록 위계적이기는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여성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종속성 또는 연대를 성립시키고, 창출시키는 일련의 사회적 관계라고 하였다. 즉 가부장제 아래 여성은 무엇을 하든, 여성 자신의 지위가 어떠하든 관계없이 아버지 또는 남편의 지배 아래서 살게 된다. 가부장제 아래 여성은 남성의 허락 범위 안에서만 특권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의 가부장제가 확립된 것은 대체로 조선 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선시대를 통해 강화된 부계혈통의 원리는 여성의 삶을 더욱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양란 이후 더욱 보수화된 조선 사회는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정절, 출가외인, 열녀, 삼종지도 등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 남성들은 동양 사상을 의도적으로 오독하여 여성들에게 생물학적 열등의식을 내면화시켰고 여성은 철저히 남성을 위한 존재로 하락되었다.
가부장제는 근대를 지나면서 더욱 공고화되어 여성을 억압하게 된다. 서구의 근대는 이원론에 기초하고 있다. 신과 인간, 이성과 감정, 영혼과 정신, 능동성과 수동성 등의 이항대립적 구도가 그것이다. 이 이항대립 구도에는 타자가 존재해야 하는데 바로 여성이 타자화 된다. 자본주의 발달로 더욱 확대된 공공 부분은 이성적이고 능동성의 특징을 가진 남성이 담당하고, 감정적이고 수동성의 특징을 가진 여성은 사적 부분인 가정에 충실하도록 이데올로기 화한 것이 근대의 가부장 이데올로기다. 철저히 타자화된 여성은 남성의 가부장 이데올로기 속에서 남성이 바라는 현모양처가 되어야만 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친족제도는 가족으로 묶이고 가족 속에서 여성이 머물 곳은 가정이라는 방식으로 형성된 것이다.
특히 한국의 근대는 군사독재 세력의 합리화에 이용되었다. 압축적으로 근대를 달성할 필요가 있었던 군사 독재세력은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근대의 프로젝트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가족은 근대화 달성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동되는 일종의 사회제도이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억압과 계급질서를 정당화하는 수단이자 상품의 소비 주체로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 근대의 가족은 국가의 축소판으로 작용한다. 즉 근대 가족은 남성에게는 남편으로서, 여성에게는 아내로서 성 역할을 부여하고 공적 영역(사회)과 사적 영역(가정), 자연(모성)과 문명(노동), 능동적 주체(부양자)와 수동적 부속체(피부양자), 이성과 감정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구조를 완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여기서 남자는 일하는 산업전사로서, 여자는 내조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는 현모양처로 희생할 것을 요구받는다. 가족과 국가는 공동체로서 강하게 서로를 결속하고 그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각 지위에 할당된 역할에 충실할 것을 강요받았다.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학교, 공공기관, 매체 등에서 한 목소리로 표출되었다. 그리하여 여성에 대한 관념은 갖가지 방법으로 널리 유포, 침투되어 여성들 자신에 의해 내면화된다. 대중매체의 힘을 빌어 널리 유포된 성역할 이데올로기는 계속 재생산됨으로써 남성지배를 정당화시키고 여성의 억압을 지속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전통적 가족이데올로기의 핵심적 근간이 된다.
상술한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적 영역인 가족 내에서 가족구성원들은 모두 가부장의 권력 하에 종속되어진다. 즉 경제적 지배권, 정치적 권력, 종교적 통제권은 모두 가부장인 아버지나 남편에게 부여되며 아내와 자녀들은 그의 통솔 하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공적 영역인 사회적 영역과 경제의 장 그리고 국가로 확대 적용되어 개인과 가족은 공적 영역에서 가부장적 구조에 편입되어 통제를 받게 된다.
둘째, 가부장제는 구성원리로써 일부일처제의 결혼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에겐 억압의 형태로 남성에겐 관대한 제도로서 이중적 잣대로 적용되어 실질적으로 일부다처제 형태로 존재되어 왔다.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성적인 부분이지만, 여성의 능동적 성적욕망의 표출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가령 성적으로 능동적인 여성은 남편과 가정, 사회에서 응징받으며 억압받고 소외된다.
셋째, 가부장제는 여성/남성의 성차이데올로기(gender)를 바탕으로 하여 여성은 집안에서 정서적 역할을 담당하는 타자로 존재시키고, 남성은 공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성별 역할 분리를 관습 화하고 제도화시킨다. 이것은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에서 노동시장이라는 공적영역에까지 확장되어 여성을 남성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요하였다.
넷째, 이원론에 입각한 근대를 거치면서 가부장제는 남성을 주체로, 여성을 객체화하였다. 여성을 성적인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으로 분류하여 순결 또는 정절이데올로기를 여성들에게 강요하였다. 성적인 여성은 단정치 못한 여성으로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성적이지 않은 여성은 단정한 여성으로 순결의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또한 수동성을 여성의 특징으로 강조하여 모성, 착함, 인내, 헌신, 친절 등의 이데올로기를 여성에게 부과하였다. 이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써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었다.
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가부장 이데올로기 변화 양상을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결혼을 통한 가족의 형성은 경제적 최소단위였다. 결혼을 통한 재생산과 경제적 공동체의 구성은 개인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었던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분리를 통한 임금차별 제도로 정착한다. 즉 근대 산업사회가 시작되고, 임금노동자의 개념이 규정되면서, 자본주의는 성인남자에게 그의 노동의 대가로 그와 그의 부양가족을 위한 생계유지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여성과 아동의 노동력은 그러한 부양의 의무를 지지 않으므로, 남성노동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되었다. 이러한 임금차별의 양상은 그대로 남성과 여성의 경제적 차이를 가져오게 되고, 여성이 남성에게 생계를 의지하는 경제적 의존의 양상을 낳았다.
한국의 가부장을 논하기는 쉽지가 않다. 근대화 과정이 서양 선진국처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과 군사독재의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점, 그리고 한국 특유의 유교문화와 어울려 있기 때문이다. 군부독재에 의해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서구화)가 진행되면서 80년대까지 한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하였고, 이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남성들로만 채울 수 없는 노동시장을 여성들로 채웠고, 여성들은 자연히 남성들의 고유영역인 공적 부분(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처음에 많은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남성들에게 차별을 당하는 구조 속에서 억압받았으나 정치, 경제, 사회부문으로 그들의 활동 범위를 확대해 갔다. 이런 여성의 활동범위 확대에 위기감을 느낀 남성과 군부 출신 정치인들은 박정희식 군사문화를 더욱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였다. 수직적 질서 속에서 전체 사회가 움직이도록 하였다. 그 방법으로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였던 것이다. 이런 군사 독재정권 하의 국가는 남성적, 공적 세계와 동일시되어 가부장제로 여성을 더욱 억압하고 철저히 사적세계로 그 역할을 한정하도록 이데올로기화 하였다. 남성이 중심이 되는 가정, 가부장과 장남이 절대적 권위를 누리는 가정이 모범적으로 이념화되었다. 아내는 알뜰살뜰하게 돈을 모으고 가족들을 돌보는 역할에 국한된 반면 남성이 아내 외의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것은 용인되는 불합리한 시대가 바로 80년대 한국 사회였다.
90년대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하였다. 그 과정에서 핵가족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사회, 문화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였고 탈근대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페미니즘이 사회에 정착되면서 여성은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고 의식의 변화를 이루었다. 여성들은 더 이상 공적 영역이 남성의 고유 영역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여성도 남성과 같은 역할을 하고 대우받기를 주장하였다. 가정에서 나와 사회라는 공적 영역에서 남성과 당당히 경쟁하던 여자들은 전통적인 가부장 이데올로기에 구속받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들은 남성과 같은 권리의식을 갖게 되고 경제력까지 갖추게 되면서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더욱 위기 속으로 몰아간 것은 90년대 말에 찾아온 IMF 경제위기였다. 경제위기는 실직 남성들을 대거 양산하였고,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담당하던 공적영역에서의 퇴출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곧 남성성의 위기이자 가족의 위기이며 이분법적인 성별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중대한 위기를 의미했다.
근대화의 한 축이던 자본주의와 함께 더욱 발전한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아이러니하게 경제위기로 그 운명의 위기를 맞았다. 즉 경제위기는 남녀의 역할구조와 권력구조가 변화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위력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경제위기와 함께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우려한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왔으며 ‘고개 숙인 아버지’ 담론을 형성하였다. 아버지의 부재가 가족, 특히 자식에게 크나큰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며 무너져 가는 가부장제를 떠받치려 하였다.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남성, 여성 모두에게 크나큰 짊이며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가부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해체는 시대적 요청과도 같았다. 2000년대 한국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그 이전과 달랐다. 진보적 정권의 탄생, 시민사회 영향력의 증대, 국민들, 특히 젊은 남성들의 의식 변화, 여성의 사회지위 향상 등으로 가부장제는 그 생명을 다하며 해체를 맞이하였다. 사회의 수직적 질서가 수평적으로 급격히 변화한 것이다. 근대의 이원론, 즉 공사영역의 이분법은 더 이상 사회에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남성보다 경제력이 높은 여성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그 역할이 전도되기에 이르렀다. 즉 수백만에 이르는 주부 남성, 연상연하 커플의 보편화, 예쁜 남자, 인기 있는 악녀 등의 이미지는 고전적인 남성성(근엄함, 엄숙, 강함)과 여성성(부드러움, 다소곳함, 착함)을 부정하고 급기야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성들은 이제까지 억눌러왔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자신의 길,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선택한다. 남편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찾아 당당하게 자아실현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은 전통의 가부장제를 해체, 새로운 가족담론을 형성한다. 비혼 동거형태의 가족, 여성들끼리의 가족, 혈연에서 벗어난 가족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형성한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가부장 아래 일부일처제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젊은 남성들을 위주로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남성과 여성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남성의 능력은 오로지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기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무능한 남성은 더욱 설 자리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가부장제는 필연적으로 해체할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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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이론이다. 결론을 다시 강조하면 페미니즘의 주장은 이대남들이 명백히 의도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우월사상’이 아니다. 양성평등을 주장하고 있으며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가부장이데올로기가 남아 있다면 이것은 결국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억압이 되고 차별이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사상이다. 양성평등이 되어야만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간단히 정리하면 가부장이데올로기는 ‘남녀공사이분법’이다. 남자는 밖에서 열심히 돈 잘 벌고, 여자는 집안에서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고 가사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돈 못 버는 남성들은 남성으로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존재 자체를 무시당할 수 있다. 돈 못 버는 남자들이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결혼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생활에서 대우받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런 남녀공사 이분법이라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사라져야 남성에게도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남과 삼대남들이 의도적으로 이것을 왜곡하고 오인해서 젠더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참으로 개탄스럽다. 급기야 펨코 같은 사이트에서 여자를 남자 시녀쯤으로 여기며 ‘계집신조’라는 놀이를 하고 자기들끼리 낄낄댄다고 하니 이 나라가 심히 걱정된다.
이런 가부장이데올로기와 페미니즘에 입각한 그림책이 있다. 바로 <돼지책>이다.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이라 안이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돼지책>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위에서 말한 여성의 가사 노동과 육아 등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철저하게 엄마인 여성만이 힘들게 가사 노동을 하고 아빠와 아들은 가사노동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러면서 엄마는 그림에서 배경화면으로 밀려나 있거나 흑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림책 한 프레임에 심지어 아예 등장하지 않기도 하고 엄마의 얼굴이 아예 비어 있다. 여성의 무존재, 무의미, 힘듦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급기야 너무 힘든 엄마가 “너희들은 돼지야”라고 외치며 집을 나간다. 그러자 아빠와 아들의 얼굴이 돼지로 변한다. 조금은 풍자와 익살을 넣은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얼마나 불평등하고 여성억압적, 또는 여성 차별적 행태인가! 엄마가 나간 집은 쓰레기장 못지않게 엉망이 되자 그제야 아빠와 아들은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엄마 돌아와 주세요!”라고 말한다.
엄마가 돌아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책에서 엄마가 나갈 때 자동차를 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은 이 장면이 더욱 의미 깊다. 위에서 말했듯 남자는 무조건 돈 잘 벌고 여자는 가사만 해야 된다는 사고는 시대착오적이다. 남자와 여자 모두 밖에서 돈을 벌고 집에 오면 같이 가사를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다. 반드시 5대 5로 하자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맞게 때론 남자가 가사를 더 많이 할 수도 있고 때론 여자가 가사육아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자 공무원은 휴직해서 가사와 육아를 일정기간 전담하는 경우도 현재 꽤 있다. 아무튼 여자는 차수리를 못하고 항상 남자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사고 또한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엄마가 차수리를 하면서 집을 나가는 장면은 여성의 새로운 능력(면)을 부각하는 장면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여성들도 이런 것은 무조건 남자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한 마디로 남녀 모두 고정된 역할이나 일이라는 것은 없다. 부족한 것은 서로 메워주며 의논해서 모든 것을 같이 처리하는 것이 페미니즘에서 강조하는 양성평등사상이다. 그래야 모든 환경이 바뀐 21세기 남녀 모두에게 평등과 자유를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유엔이 발표하였다. OECD국가에서 한국이 가정, 직장 모두에서 여성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라고. 그리고 각종 데이터는 여전히 직장에서 30대부터 여성차별(임금, 승진 등)이 발생하기 시작하다 40대 이상에서는 아주 심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남들은 이것을 가짜뉴스라고 하며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앤서니브라운의 <돼지책>을 아이들 뿐 아니라 남녀 모두, 특히 이대남과 삼대남들이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 땅에 진정 양성평등이 오는 날을 희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_ 인문학연구소공감 그림책 수업참가자 방정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