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로컬 인문학연구소공감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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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블 코믹스의 최고 인기 캐릭터인 ‘스파이더맨(Spider-Man)’의 영화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Amazing Spider-Man 2)>에는 주인공인 스파이더맨(Andrew Garfield 분)과 그에 맞서는 ‘일렉트로(Jamie Foxx 분)’라는 악당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이 ‘일렉트로(Electro)’는 처음부터 악당이 아닌, ‘맥스 딜런(Max Dillon)’이라는 이름의 전기 분야 엔지니어인데, 직업 능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머리가 심하게 벗겨지고 치아도 뻐드렁니인, 외모로는 그다지 보잘 것 없는 인물이다. 거기다 성격도 소심한지 동료들에게도 예사로 무시당하고 직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상사에게 다 뺏기는 인물 되시겠다. 그러던 어느 날 맥스는 택시에 치어 죽을 뻔한 상황에 처했는데 그때 스파이더맨이 자신을 구해주더니 그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보고는 ‘맥스’라고 불러주자 그는 어안이 벙벙해지더니,
Max: How do you know my name? But I'm a nobody.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뭣도 아닌 놈인데요.)
Spider-Man: Hey, you're not a nobody. You're a somebody.
(이봐요, 당신은 뭣도 아닌 사람이 아니에요. 대단한 사람이죠.)
평소에도 스파이더맨의 팬이었던 맥스는 스파이더맨 본인이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안부를 물어주자 그때부터 그의 인생에는 한 가닥 희망이 싹트게 된다. 바로 맥스 자신이 스파이더맨의 베프가 되어서 그와 함께 활동하는 것 말이다(그 이후의 스토리는 영화를 참조하시라).
이처럼 남들의 눈에는 정말 뭣도 아닌, 하찮은 존재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인 캐릭터가 이번 이야기에 등장한다.
미국의 복음주의 목회자이자 동화작가로도 활동하는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가 지은 <너는 특별하단다(You Are Special, 1997)>는 웸믹이라는 나무 인형이 등장하는 어느 판타지 세계를 다루고 있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연작물로 현재 5권까지 출간되었는데, 8월 수업에서는 3권까지 읽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1권: 시리즈의 첫 번째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엘리 아저씨라는 목수가 만든, 웸믹이라는 나무 인형 사람들에게는 자기들끼리의 관습이 있는데, 바로 재주가 많고 모양이 예쁜 웸믹은 금빛 별표를, 반면 나뭇결이 거칠고 재주가 별로 없는 웸믹은 잿빛 별표를 받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펀치넬로는 온몸이 잿빛 별표 투성이인, 그야말로 뭣도 아닌 존재였다. 그러다 펀치넬로는 금빛 별표도, 잿빛 별표도 없는 루시아라는 소녀를 만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루시아에게 묻자 그 소녀는 엘리라는 이름의 목수를 찾아가 보라고 한다. 펀치넬로가 그 엘리라는 목수를 찾아가자 엘리는 그를 보더니 “너는 특별한 존재야”라고 말한다. 펀치넬로는 자신은 뛰지도 못하고 나뭇결도 안 좋아 여기저기 칠도 벗겨진 상태인데 어째서 특별하냐고 묻자, 엘리는 “내가 너를 만들었고, 넌 아주 특별하단다. 나는 결코 좋지 못한 나무 사람을 만든 적이 없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해”라고 답한다. 그 특별함에 대한 실낱같은 믿음이 생겨나는 순간, 펀치넬로의 몸에 붙은 잿빛 별표가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2권: 웸믹들이 사는 마을에 또 다른 이상한 관습이 생겨나는데, 바로 공과 상자를 많이 모아두는 것이었다. 펀치넬로 역시 이 관습에 따라 자기가 가진 돈, 집 등을 팔아 이 공과 상자를 사서 잔뜩 쌓아두었다. 이것들 산다고 돈도 없고 집도 없이 펀치넬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렇게 쌓아둔 공과 상자를 이고 지고 가다가 넘어져 모두 땅바닥에 쏟게 된다. 이때 다시 엘리 목수를 만나게 되고 엘리는 펀치넬로에게 또다시 지혜의 말을 남긴다. “너도 다른 웸믹들과 똑같이 생각했구나. 그러니까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훌륭해지고, 더 행복해진다고. (실은 그것이) 네 행복을 대가로 치른 거란다. 넌 여전히 특별하단다. 네가 가진 것 때문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이유만으로. 너는 나에게 소중하며, 난 널 사랑한단다. 그것을 잊지 마렴.” 잘 곳이 없어진 펀치넬로는 그날 엘리 목수의 공방에 마련된 대팻밥 잠자리에서 단잠을 잔다.
3권:: 또 다른 유행이 웸믹들의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다. 이번에는 뜬금없이 코를 녹색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코가 녹색이 아니면 왠지 세상의 트렌드에 뒤처지는 느낌이다. 왠지 남들과 다르면 나만 소외되는 것만 같다. 코가 녹색으로 물든다고 딱히 머리가 더 좋아지거나, 더 빨리 뛸 수 있다거나, 아니면 힘이 더 세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불안하다. 남과 다르다는 것이 그냥 불편하다. 여기서도 엘리 목수는 “저들은 다른 웸믹들과 같아지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지. 하지만 난 일부러 다 다르게 만들었단다. 주근깨, 매부리코, 밝은 눈동자와 검은 눈동자...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특별하게 만들었지. 그런데 모두 같아지기를 원하는구나.”
주인공 펀치넬로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 특별한 재주도 없고 재질도 버드나무로 만들어져(이는 4권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나뭇결도 예사로 휘어지고 흠집도 잘 나는 등 하등 내세울 게 없는 존재다. 스파이더맨 영화에 나오는 맥스 딜런처럼 외모도 별로고 성격도 소심해서 누구 하나 말 붙이기도 어렵다. 이미 ‘펀치넬로(Punchinello)’라는 이름 자체가 ‘따돌림당하는 어릿광대, 짐승처럼 생긴 사람, 곱사등, 사회 부적응자’ 등의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던 그가 엘리라는 목수, 다시 말해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바로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 말이다. 물론 이후로도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도 아니라 계속 실수를 연발하지만 잿빛 별표가 많이 떨어지면서 이전과는 달리 점점 주변 사람들과 말도 트는 등 변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김춘수 작 <꽃>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나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소심한 전기 기술자 맥스의 이름을 스파이더맨이 불러주자, 잿빛 별표가 덕지덕지 붙은 펀치넬로의 이름을 엘리 목수가 불러주자, 이들의 삶은 변화되었다(다만 맥스는 이후 모종의 사건으로 결국 스파이더맨과 척을 지고 그와 맞서 싸우게 된다).
물론 모두에게 속칭 흑역사도 있고 수치스러운 면이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지만 유달리 상처를 많이 받고 마음속 깊이 응어리도 쌓인 이들이 참 많다. 문제는 이들 모두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상처와 수치심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겹겹이 방어막을 친다. 다가서려는 이들을 무정하게 배척한다. 그래서 그와 말도 섞기 싫어진다. 이런 식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을 깨고 늘 패배감에 절어있던 노숙인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면서 관심을 가져준 물만골 문상식 목사 등의 노력과 헌신이 빛이 난다 하겠다.
나도 이제 이런 악순환을 깨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나 역시 성격도 소심하고 열등감도 은근히 많아서 맥스처럼, 펀치넬로처럼 나 자신을 내어놓기가 꺼려진다. 내가 남에게 용납받았듯이 나도 남을 용납해야 한다. ‘뭣도 아닌 인간(nobody)’을 불러 ‘대단한 인간(somebody)’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동의가 잘 안 된다. 그럼에도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구원받은 이유이니까 말이다.
글쓴이/ 유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