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특별한 존재이니깐

인문학연구소공감 그림책수업

90년 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도 비판했듯 자본주의는 효율성이라는 미명아래 공장에서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물건을 마구 찍어댄다. 인간도 물건으로 취급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인간의 독창성과 인간 만의 본질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자본주의에 맞추어 교육 또한 똑같은 인간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21세기도 벌써 25년이 저물고 있는데 한국의 교육은 20세기 중반에 멈추어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아 걱정이다. 이런 교육 때문인지 우리 사회는 사람 또한 똑같은 인간형을 원하고 있다. 조금만 자신과 달라도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리다’고 말하며 손가락질을 하고 악플과 욕설을 내뱉고 있다.


유행에는 아주 민감한 국민이라 어느 연예인이 조금만 뜬다고 하면 그 연예인이 하는 모든 것(옷이나 액세서리, 행동 등)을 따라 하는데 정작 생김새나 돈, 사는 방식에는 천편일률적으로 천민자본주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모두가 SKY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서울, 특히 50억 강남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삼성 같은 대기업 정규직에 들어가 연봉 1억(40대 이상) 직장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자를 낙오자, 루저라고 부르며 그들을 얕잡아 보고 무시한다. 한때 한 광고에서 강남의 수백억 고급 아파트를 보여주며 ‘당신은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 평등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라는 문구가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이런 것만 봐도 나의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천민자본주의적 사고와 행태는 왜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존재하는 모두가 자신만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발휘하며 살아가면 왜 안 되는 것일까! 남들이 달릴 때 나는 걷거나 쉬고, 남들이 고급 패딩을 입을 때 나는 몇만 원짜리 시장옷을 입고, 남들이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 때 나는 시골의 내가 지은 벽돌집에서 살고, 남들이 대기업에 다닐 때 나는 농촌에서 밭을 일구고, 남들이 학원을 5개 이상 다닐 때 나는 시골 냇가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으면 왜 안 되는 것일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발휘하며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날이 과연 올까?


이런 소망을 담은 그림책이 있다. 맥스 루케이도의 『넌 정말 특별하단다』이다. 약간 기독교적인 색채가 있긴 하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봐도 의미가 깊은 그림책이다.

웸믹은 엘리라는 목수가 만든 작은 나무 사람이다. 처음에는 코과 눈, 얼굴과 키가 모두 달랐다. 그런데 그들은 황금별 스티커와 점 모양의 회색 스티커를 서로에게 붙여주기 시작했다. 황금별 스티커는 예쁜 웸믹에게 붙여주고, 나뭇결이 거칠거나 칠이 벗겨진 웸믹에게는 점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잘 뛰어나 노래를 잘하는 등 이른바 능력이 좋은 웸믹에게는 황금별 스티커를, 재주가 없는 웸믹들은 점 스티머를 주고받았다. 펀치넬로라는 웸믹은 능력이 없어 비웃음을 받으며 점 스티커를 많이 받았다. 스스로 못난 웸믹이라고 자책하며 집에서만 지냈다. 그러던 중 루시아라는 웸믹을 만났는데, 그녀는 지금까지의 웸믹과는 달랐다. 어떤 스티커도 붙어 있지 않았고 그녀에게 별 스티커나 점 스티커를 붙여주려고 하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러자 펀치넬로가 루시아에게 스티커가 없는 이유를 물었다. 루시아는 매일 엘리 목수님을 만나러 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펀치넬로는 목수님을 만나러 간다. 목수님의 작업실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자신이 본 물건들과 많이 달랐다. 의자와 작업대 모두 아주 컸다. 펀치넬로가 목수님에게 자신은 노력했지만 점 스티커만 많이 받았다고 푸념한다. 그러자 목수는 남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펀치넬로는 정말 특별하다고 말해준다. 루시아 몸에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은 이유는 남들의 생각이 아닌 목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목수님이 펀치넬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믿게 되자 펀치넬로 몸에서 스티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분히 기독교적인 색채가 있긴 하지만, 이 그림책의 핵심은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들었고 알고 있는 내용이다. 바로 ‘자신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라! (편견과 차별을 말하는 한) 누구의 말이나 목소리도 듣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라!’이다. 자신만의 독창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한 자신은 특별한 존재다.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위에서 말했고 그림책에도 나오지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차별하고 갑질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한다. 그것이 사람이다. 불교건 기독교건 어떤 종교도 서로 차별하고 증오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데 왜 사람은 이럴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희망이라는 노래가사가 있지만, 현실에서의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평등과 차별과 갑질이 우리를 둘러싼 하나의 환경이고 시스템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환경을 없앨 수 있을까? 찰리 채플린의 비판처럼 효율 만능주의인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인본주의(인간, 또는 인간의 노동을 근본으로 삼아야 인간이 평등해진다는 동양철학사상)로 바꾸면 가능할까? 인류의 역사를 보면, 국가 발생 후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생기면서 불평등이 야기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국가를 없애야 하는가?


우선 교육과 문화를 전면 바꿔야 한다. 수능을 폐지하고 전 분야에서 자율성과 창의력으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 가령, 대학에서 법대생을 선발한다고 하면 무조건 ‘5지 선다’ 잘 찍는 학생을 선발할 것이 아니라, 이 학생이 민주주의를 잘 이해하고 있고 법치주의를 잘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봐야 한다. 즉, 학생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해 어떤 동아리 활동을 했는지 그 포트폴리오를 보고 면접 인터뷰를 오랫동안 해서 선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니까 윤석열(윤석열은 법대 다닐 때부터 자신이 육사 갔으면 쿠데타를 일으켰을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괴물이 탄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갑질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을 강력 처벌해야 한다. 갑질과 혐오는 인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선진 유럽은 갑질과 혐오를 처벌하고 있다. 물론 이들 나라에서도 최근 극우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회의 신뢰가 워낙 낮다 보니 선발에서 무조건 객관식을 선호한다. 주관식이나 면접으로 선발한다면 당장 거기에 수긍하지 않는다. 그리고 온갖 갑질과 혐오를 자유라며 처벌하려고 하지 않는다. 책임과 남용을 구별 못 하는 나라다. 이러니 무엇이 해결되겠는가! 참 어려운 인류의, 한국의 과제다.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인류처럼, 한국처럼 인간을 경쟁과 이용수단으로만 생각하면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차별하고 갑질하는 문화는 근절되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만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날을 꿈 꾸며 그림책 『넌 정말 특별하단다』 리뷰를 마친다.


글쓴이/ 방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