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암울해보여도 일단 희망의 나무부터 심어보자
장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by 인문학연구소공감 김광영 Jul 22. 2025
글쓴이 _ 유현대
지난 번 내가 썼던 <마지막 나무> 독후감에 나는 본의 아니게 깊은 빡침(?!)을 내비치게 되었다. 거기다 근래에 황령산과 가덕도를 결국 개발하겠다는 정부 당국의 행태에 실망을 넘어 분노의 지경에 이르면서 내 마음은 더욱더 들끓었다. 이 개발 논리가 어디까지 가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까, 눈앞에 떨어질 떼돈에 눈이 멀어 우리 후손이 이유 없이 져야 할 생태적 책임만 더 전가되지나 않는가 하여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럼에도 일단은 희망을 가져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바로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 1895~1970)가 1953년에 지은 <나무를 심은 사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은 ‘엘제아르 부피에(Elzéard Bouffier)’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엘제아르는 평범한 농부였지만 일찍이 아내와 아들을 잃고 혼자 프랑스 프로방스 알프스 어느 산골에 거주하면서 양을 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50대 나이에 가족이라고는 양몰이 개 한 마리가 전부로, 그의 삶은 누가 봐도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1910년부터 그는 혼자 묵묵히 3년 동안 무려 10만 개나 되는 양질의 도토리를 심었다. 이후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도 더 심기로 했다. 일찍이 그가 살던 곳은 국가 소유의 공유지로 주변에 나무라고는 하나 없는 황무지였다. 그 땅이 메말라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는, 소싯적 농장을 가꾼 적도 있었던 농부답게 나름 능숙하게 그 지역을 가꿔나간다.
홀몸이었으므로 누구의 칭찬도 비아냥거림도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자기가 키우는 양들이 나무의 잔가지와 새싹까지 먹어치운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양들을 죄다 팔아버리고 대신 벌을 키워서 나무의 번식을 돕는다. 그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변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1,2차 양대 세계대전을 연달아 겪으면서 그 지역이 잠시 위기에 처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곳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그리하여 1945년 경 그 지역에는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는 물론 보리수까지 자라나게 되었고 인근 무너진 마을도 되살아났으며 곳곳에 꽃과 열매가 맺히고 샘이 솟아났다. 아무런 칭송도 대가도 바라지 않았던 이 농부는 나이가 들어 1947년 어느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에밀리 하워스부스의 책 <마지막 나무>의 후속편을 짓는다면 아마 이렇게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이 책은 살아난 자연경관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하나 남은 파리하고 창백한 나무를 아이들이 함부로 베지 않고 지키면서 숲을 가꿔나갔듯이, 이 책 역시 너무도 황폐한 산골 지역이 극적으로 되살아나는 장면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여러 명과 한 명의 차이랄까.
현재 너무도 삶이 팍팍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니 사람들의 마음은 점차 옹졸해지기 시작한다. 이웃을 돌아볼 겨를도 없다. 내 일용할 양식도 부족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일자리도 뺏기고 내가 먹고 살 기회도 뺏기고 심지어 내 목숨도 뺏길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를 구해줄 영웅을 기다린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오랜 믿음 아래 자기의 욕구를 달래줄 누군가를 찾는다.
그러다 서로의 정치 성향 때문에 사람들은 양극화된다. 내 편만을 들어줄 사람을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한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극우파가 판을 치고 있다. 극우파들은 환경 보존이나 지속 가능한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연을 마구 개발해서라도 사람들 일자리 만들어주는 게 최우선이라는, 또한 그 일자리는 오직 자기 나라, 자기 지역 사람들만이 가져야 한다는 그럴듯한 논리로 세상을 망쳐나간다. 이 논리에 감화된(?!)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 세계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개탄스런 현실 속에서도 그나마 희망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이유는,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묵묵히 자연환경과 생태를 보존하는 일을 해나가고 있는 이들이 그래도 아직은 제법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누군지,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활동 덕분에 세상이 비교적 덜 파괴되는 것이리라. 물론 환경 보존을 위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고, 이들 역시 필요하다.
내 주변 사람들 중에도 열혈 환경 보존주의자가 꽤 있고 오늘도 그들은 들어주는 이 없어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을을 가꾸고 숲을 지키는 이들 역시 없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물만골 주민들부터 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그래도 일단 희망을 가져볼 이유는 바로 여기 있지 않을까 한다.
사족:
1. 국제연합 환경계획(UNEP)이 이 책의 영향을 받아 2007년 나무 10억 그루 심기 운동을 펼쳐 1년 만에 이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한다.
2. 중국의 이제팡(易解放)이라는 여성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들 양루이저(楊譽哲)를 잃은 이후 내몽골 사막에 나무를 심어 황사 피해를 줄이면 좋겠다는 아들의 생전 바람에 따라 남편과 함께 '녹색생명'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12년 동안 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약 6.7㎢ 면적의 숲을 조림하는데 성공했다.
3. 인도네시아 중부자바 주 달리(Dali)에서 산불로 황폐화된 산에 묵묵히 20년간 홀로 반얀나무 씨앗을 심어 숲을 일궈낸 농부 ‘음바 사디만(Mbah Sadiman)’의 사례가 있다. 사디만은 산불 이전의 고무나무 숲과 하천을 재건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반얀나무 씨를 황무지에 심었는데, 처음에는 농사에 방해나 되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해 방해하던 사람들도 마을이 풍요로워지자 그를 마을의 영웅으로 대접하고 삼림 복구를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4. 인도 아삼주에서도 홍수와 가뭄으로 황폐해진 땅에 자그마치 40년 동안이나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어낸 야다브 파옝이라는 인물이 있다. 40년 동안 심은 나무로 약 5.5㎢의 숲을 조림했으며 이미 인도에서는 상당히 유명해서 그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와 동화책으로 만들어졌을 정도라고 한다.
5. 전라남도 보성군 윤제림(允濟林)의 회장 정은조라는 인물이 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100만평 규모의 나무심기를 하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나무를 심은 사람>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