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정중앙에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중간쯤에 엉거주춤 머물 뿐.
그렇게 되면 모든 울림이 죽고,
모든 의지가 어정쩡한 중간상태에서 정체될 것.
거룩한 대립은 양쪽 낭떠러지 사이에서
산마루를 타는 것이 아니라,
이 산봉우리에서 저 산 봉우리로
활발하게 넘나드는 것
자유 없는 성실은 굴종,
성실 없는 자유는 방종,
평온 없는 열정은 광신,
열정 없는 평온은 냉담.
마틴 슐레스케, '가문비나무의 노래' 중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조율'이라고 부제가 붙은 책이다. 마르틴부버가 말한 포용교육의 의미를 시적 언어로 현대적으로 너무 잘 풀어놓은 말이다.
우리는 중용이라는 이름으로 중간에 서 있다는 함정에 빠져있다. 포용은 한 극단과 다른 극단을 모두 껴안는 것이다. 그래서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걷듯 긴장감이 있다. 공감을 통해 포용으로 나갈 수 있다. 어려운 길이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치우치면 지지자를 얻고 소속감을 갖기 쉽다. 포용의 길은 양극단에 사이에서 욕을 먹고 오해받는 길이다. 하지만 두 세계를 한꺼번에 포용하여 그것이 치우치지 않게 하며 화평을 이루는 길이다. 전쟁은 쉽지만 평화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