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일이 재미있어지기도 하고, 재미있던 놀이가 힘겨워지기도 한다.
넌 무슨 재미로 사니? 최근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여러번 받았다. 처음에는 피식 웃고 말았으나 비슷한 질문이 반복되니 어쩐지 초조해진다. 그다지 활동적인 성격도 아니고, 인간 관계가 별로 넓은 편도 아닌 나는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재미없게 사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억지로라도 재미있는 일을 찾아봐야 하나, 내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게 뭔가, 최소한 남들에게 재미있어 보이는 일들을 찾아서 해 봐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일을 그렇게도 재미나게 하면서 사는 걸까 새삼 궁금해졌다. 재미있는 인생이란 도대체 어떤 인생일까?
나는 주어진 시간의 상당 부분을 활자와 함께 보낸다. 그 흔한 ‘독서’를 취미로 가진 나는 과연 ‘재미’로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는 걸까 돌아본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거나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글 속에서 발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붙들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재미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리고 솔직히 읽고 쓰는 일이 늘 좋은 것만도 아니다. 그 일이 힘들고 어려워 종종 좌절한다.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몸이 힘들 때는 피해버리기도 한다. 과연 나는 재미로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수영도 영어도 미술도 피아노도 다 재미있다고 하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어렵다, 힘들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말들 속에서 나는 또 갈등한다. ‘어렵고 힘들면 그만 하자’ 라고 말해 줘야 할 것인가,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참고 계속 해 보자’ 라고 말해 줘야 할 것인가. 육아는 돌봄과 이끔 사이의 무엇이다.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이가 앞으로도 스스로의 안전과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하는 것도 역시 부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한 발 물러나 그저 지켜보면서 돌봐줘야 할 때와 내가 앞으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잘 구분하기가 힘들다.
이집트인들에게 시간이란 원과 같은 순환의 개념이었다고 한다.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달라지지만 실제로 변하는 것은 없다. 진보나 발전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원시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나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조금 편안해졌다. 시간이란 화살처럼 앞으로 나아갈 뿐더러 나란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란 순환하는 것이고 지금 나의 시간이 언젠가 돌고 돌아 나에게나 혹은 내 아이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이라는 시간을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내게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순간순간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앞으로 쑥쑥 나아가 사라져버릴 것 같다고 생각할 때는 늘 조급하고 초조했다. 자꾸만 시간을 뒤쫓으며 살았고, 시간을 붙잡고 싶어 늘 분주했다. 하지만, 나를 지나쳐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시간 속에서라면 나는 조급함없이 좀 더 편안하게 지금이라는 시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어렵고 힘든 일은 삶이라는 순환하는 시간 속에 늘 존재한다. 그리고 재미있고 즐거운 일 역시 어렵고 힘든 일만큼 늘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재미있던 일이 힘들어지는 순간도 있고, 어려웠던 일이 재미있어지는 순간도 있다. ‘변화한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느끼던 ‘재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조금 다른 모습으로 순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재미’는 돌고 돌아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이런 생각을 아이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재미있던 일이 어렵고 힘겨운 일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 옆에서 함께 고민하면서 내 아이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줘야할까 열심히 말을 골랐다.
결국 나는 ‘조금 어렵고 힘든 일이 정말 재미있는 거야’라고 말해줬다. 시간의 순환에 대해서나 내가 깨달은 순환하는 재미에 대해서 아이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일과 어렵고 힘든 일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이 된다는 말을 이럴 때 실감한다. 아이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 역시 깨달음을 얻는다. 조금 어렵고 힘겨운 일이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나로 말하자면, 아무리 즐겁게 하루를 보냈어도 책을 한 장도 넘기지 못한 날은 재미보다 바쁜 하루였다고 느끼게 된다. 하얀 백지의 모니터 앞에 앉는 일이 두렵고 힘들지만, 하루에 한 문장도 쓰지 못한 날은 어쩐지 침울해진다. 내게 어렵고 힘겹지만 재미있는 일은 읽고 쓰는 삶 그 자체이다. 앞으로도 일과 놀이 사이에서 힘겹지만 재미있는 일들을 하며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 아이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모두 이런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정말 재미있고, 또 조금은 힘겨운 일 말이다. 그 일과 함께 재미와 어려움 사이를 순환하면서 정말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그런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