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해야할 일들은 많다.

교실과 현실 사이

by 시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해야할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교실은 현실의 축소판이라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교실의 확장판은 아니기에 나는 종종 교실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교실에서 일어난 일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스란히 닮아있지만, 교실에서의 배움이 현실로 확장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게다가 옳고 그름에 대해 배웠다 하더라도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자주 무력감을 느낀다.

한 학급 안에서 몇몇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A학생을 몰아세우고 뒷담화를 했다. 발단은 A학생이 아파서 결석을 자주 했고, 이 과정에서 담당하던 학급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A학생이 괴로움을 호소하자 A학생의 어머님께서 이모와 이모부라는 분들과 함께 우르르 학교로 찾아와 담임교사에게 관련 학생들을 불러오라고 요구했다. 이런 상황을 전해들은 나는 담임교사와 함께 학부모님들과 대면했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부모로서 그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요즘 학교 폭력은 너무나 흔한 일이고, 뉴스를 보면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다양한 학폭 사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만연한 폭력이 내 일이 되면 그것은 더이상 ‘흔한 일’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것이 된다. 현실 어디에나 존재하던 그 흔하디 흔한 폭력이 내 삶에 등장했을 때, 그것도 내 아이를 뒤흔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여기까지 찾아오셨겠냐는 말로 인삿말을 대신했다. 어머님과 이모님은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학교에서 뭘 하는 거냐’는 기본이고, ‘아이들을 왜 방치하냐, 매 순간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따지기 시작했다. 왜 담임선생님께서 혼비백산해서 나를 찾아오셨는지 이해가 됐다. 자신의 아이가 여러 아이들에게 부당한 괴롭힘을 당해 오셨다고 하면서, 본인들 역시 우르르 몰려와 동일한 일을 담임교사에게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없다. 학생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이해없이 요구만 받고 있는 입장이라 이런 대우쯤은 간단히 참아낼 수 있다. 당황한 담임교사를 대신해 천천히 답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으며 '감정아 잠시 잠들어다오' 나 자신에게 부탁했다. 나까지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면 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것이다.

화나고 힘든 마음은 십분 이해하나 이러시면 안된다고, 명확한 괴롭힘의 증거가 있다면 절차대로 학교폭력 신고를 하시면 된다고 대답했다. 다짜고짜 찾아와 아이들을 만나자고 하는 건 절차를 무시한 행동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칠수록 다양한 친구들이나 교과 교사들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담임교사의 돌봄을 점차 줄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자신의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해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일환이고,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닌가. 학교는 학생들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자신의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교육기관이다.

아이가 죽고 싶다는 데 그럼 어떻게 하냐,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냐고 따지는 말에 천천히 아이를 돌아봤다.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을 어머님 옆에서 아이가 다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른들끼리 열을 내고 있는 이 상황을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 아이는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니?”

“애들이 단체로 괴롭혀서요.”

“단체로 괴롭힌다고 생각했구나. 그럼 네가 잘못한 건 아니네?”

“네.”

“네 잘못도 아닌 일로 왜 네가 너 자신을 해친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네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 구체적인 피해사실이 있다면 신고하고 절차대로 하면 되는거야. 네 잘못이 없다면 이 일로 네가 너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설사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너희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고 바로잡을 기회도 있어.”

마치 없는 존재처럼 앉아있던 아이에게 말을 걸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가정에서는 가정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아이가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해주고, 잘못된 관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아이에게 상황을 보다 넓은 시야로 볼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일 말이다. 교사는 교사의 일을 한다. 학생들이 잘못하는 일이 있다면 상담하고 교육하고 행동을 수정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괴로워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을 도와주고, 상황을 보다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이제 조금 진정이 된 듯한 학부모님들은 내가 가진 권한을 궁금해했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교사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권한 이외에는 없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처벌기관이 아니라고도 이야기했다. 관련된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상담하고 대화하면서 A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A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고 답했다. 학부모들의 성에 차지 않는 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육 이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처벌도 할 수 없고, 반복되는 잘못에 대해 벌점을 매길 수도 없다. 말도 조금만 함부로 하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세상이다. 학부모님들은 '일단 학교의 입장은 알겠다'고 했다. 그들의 마음도 환히 읽혔다. 애초에 원했던대로 내 아이를 괴롭힌 학생들을 만나지도 못했고, 교사들은 원하는 수위의 처벌을 할 권한도 없으며, 공공기관은 절차대로 하라는 말만 냉정하게 내뱉는다. 학부모들도 참 답답할 것이다.

“교사는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권한에 대해 물어보셨지만, 교사는 지치지 않고 교육할 의무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애들 안 듣잖아요. 선생님들이 교육한다고 이야기해도 다 잔소리로 들을 뿐이잖아요.”

“그게 잔소리의 힘이에요. 잔소리라도 지속적으로 듣고 큰 아이들과 안 듣고 큰 아이들은 다릅니다.”

“... 선생님도 참 힘드시겠네요.”

상담 중 처음으로 이해받았으나 몸 안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강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학부모와의 상담을 마치고 관련된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 상담을 했으나 무력감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일도 모레도 이 학생들에 대한 상담과 지도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무력감도 계속될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할 일을 해야 한다. 교실에서의 가르침이 조금이라도 현실로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영화 ‘보통의 가족’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어른들이 나온다.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변호사 형은 그 폭력의 책임을 덜어주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 의사 동생은 그런 형을 경멸하고 폭력의 피해자를 동정하며, 그들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어느 쪽이 더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양쪽 모두에게 폭력은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연했던 폭력이 갑자기 자신의 집 안으로 훅 들어왔을 때 그들은 그 폭력을 이용할 수도 동정할 수도 없었다. 그저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흔들리며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폭력을 행한 아이들은 아무 고민이 없다. 죄책감도 어른들이 대신 느끼고,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도 어른들이 대신 고민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가. 어른으로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내야 할 것인가. 교사로서도 엄마로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해야할 일들을 해 나가야 한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해야할 일들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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