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막혀오곤 하는 날엔 종종 여행 사이트를 뒤졌다. 일상이 나를 조여올 때, 나는 여행자로서의 삶을 꿈꾼다.
왜 나는 자꾸 떠나고만 싶을까. 아마도 내가 여행을 하려는 진짜 이유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상과 놀라움, 온갖 경험으로 인해 배울 수 있는(혹은 배워야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여행은 새로운 뭔가를 경험하고 배우고 나의 가능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실제적인 어떤 경험에서 나를 분리하고, 뭔가를 배우기보다 비우기 위해, 뭔가를 얻기보다 내려놓기 위해 시작한다. 그럼으로써 나의 가능성을 시험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가능성을 최저치로 떨어뜨려놓고 타자의 가능성, 혹은 타지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일이다.
일상에서 나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배움과 놀라움이 과잉되었을 때 나는 여행을 꿈꾼다.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부담이 되는 일상은 무엇일까. 나를 떠나고 싶게 만든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지금의 나를, 나의 일상을 새롭게 돌아보게 된다. '지금 여기'에 지나치게 집중해 과하게 팽창해 버린 나의 내면을 찬찬히 살핀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꿈꾸며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을 살피는 일, 그것이 내 여행의 본질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여행을 거친 뒤에 나는 여행하는 일상을 꿈꾸게 됐다. 가고 싶은 곳과 돌아갈 곳, 이상향과 그리운 곳이 같은 곳이라면 어떨까. 여행이란 결국 그런 곳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여행이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면서 결국엔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 내가 그리는 이상향이면서 사무치게 그리운 곳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나를 낳지는 않았으나 내가 진정으로 품어 안고 싶은 그런 곳 말이다. 20대 때 한달여의 첫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마음의 고향을 참 많이도 만들어놨다. 현실이 나를 조여올 때나 가슴이 답답할 때 나는 종종 마음 속 고향들을 펼쳐본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쉽게 여행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여행지로 선택할 수 있는 곳도,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제약이 생겼다. '지금 여기' 나에게 쏟아지는 부담은 점점 과잉되고 있는데 여행을 할 수 없는 이유들 역시 과하게 많아졌다. 답답했다. 나는 일상 속에서 수시로 내 마음 속 고향으로 도망쳤다. 수많은 여행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지로서의 ‘고향’이 아니라 일상으로서의 ‘고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어디에서 학교를 나왔느냐, 어디 출신이냐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꼬집어서 '고향'을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내 세대의 사람에게 '고향'을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고향이란 '태어나 자란 곳' 혹은 '조상이 오래 누리어 살던 곳' 이라는 의미이지만, 내 친구들은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 다른 경우가 허다했고,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을 우리의 부모님 세대부터 떠나온 경우도 많았다. 우리에게 장소로서의 고향이란 그저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고향'이라는 말에 묘하게 집착하게 됐다.
수많은 여행지가 내 마음의 고향이 되었고, 다시 가고 싶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구체적인 장소로서의 고향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던 나는 나만의 고향을 찾고 싶다는 이상한 사명감에 휩싸였다. 내가 여행하는 수많은 여행지들이 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언가 절실하게 찾고 싶은데 그것의 실체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살아도 살아도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공허함만 커지던 때였다. 그 어느 것에도 절실하지 않았기에 나는 늘 공허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공허함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호기심이나 욕심도 알고 싶고 갖고 싶은 절실함에서 시작된다.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크게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아이였던 나는 무던하고 무감한 성인으로 자랐다. 주어지는 모든 일에 불평없이 임하고 평균치 정도의 성취를 거두었지만, 그 이상은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만의 취향조차 흐릿한 특징없는 어른이 되었다. 한참을 그런 어른으로 살았다. 그것이 불편하거나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무색무취의 개성없는 내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남들 하는 것처럼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나 충족되기보다는 내 안이 텅 비어버린 느낌만 더욱 강해졌다. 남들처럼 살고는 있으나 남들처럼 잘 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남들처럼 사는 것을 흉내만 내고 있던 나는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거대한 공허함을 맞딱뜨리고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지금 여기'에서 도망칠 수도, 살며시 발을 뺐다가 돌아올 수도 없었다. 나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여행지로 도피할 수 없다면, 일상 속에 흥성거리고 따뜻한 뭔가를 채워넣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우리 가족의 '고향 찾기'이다. 나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진짜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삶이 나에게 무표정하게 다가올 때, 내가 나를 견디기 힘들어질 때, 언제든 찾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나만의 바다', '나만의 언덕', '나만의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