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기와 함께 하기

혼자와 연대 사이

by 시소


섬같은 교직 사회 속에서 풍요로운 섬이 되는 상상을 한다.


새 학교로 전근을 하면서 1학기동안 휴직을 했다. 전학한 내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고, 나도 조금은 쉬고 싶다는 것이 이면적인 이유였다. 그래서 한학기동안 정말 푹 쉬었다.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던 책을 읽고, 조금씩 내 생각을 끼적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출근한 뒤에는 종소리에 맞춰 수업시간을 지키며 살아야 했던 나에게 이렇게나 시간이 내 편이었던 적은 없었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쓰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남들이 보기엔 텅 비어있었으나 나에게만큼은 꽉 찬 1학기 동안의 휴직 기간을 보내고 복직을 했다. 두 아이를 낳으면서 5년 가까이 휴직을 했다가 2학기에 복직한 경험도 있어서 적응하는 일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학교는 모두 다르지만, 비슷비슷한 면도 많아 1-2주면 금세 새학교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이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학생들이 달랐다.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업 준비를 시키는 데만 5분여의 시간을 썼던 전의 학교와 달리, 이번 학교의 아이들은 그 어느 학교의 학생보다 정적이었다. 수업 종이 치고 내가 교실로 들어가면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나를 바라봤다. 그 이상적인 모습이 놀라웠고, 나를 향한 눈빛들이 낯설어 저절로 긴장이 됐다. 그러고보니 교직 생활을 하는동안, 나는 어느새 학생들은 당연히 나를 무시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의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오늘은 이걸 배울 거라고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배울 거라고 달래기도 하고, 유혹도 하고, 엄포를 놓기도 하며 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수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나의 수업 전략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전략이 필요없는 곳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처음에는 편안했지만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을 사이에 두고 학생들과 내가 밀고 당기는 것이 있어야 쉽게 다가갈 수 있는데, 아이들에게 선뜻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수업을 하면서도 학생들과 내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은 커녕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도 힘들었다. 수업을 통해 나와 아이들이 함께 호흡하고 함께 배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치열한 느낌이 없다. 그저 나는 물흐르듯이 편안히 수업을 이어나가면 됐다. 이것이 편안한 것인지 그저 한시간 한시간을 수업이라는 요식행위로 때우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교사들의 문화도 이전의 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제한된 사무실에 최소 7~8명의 교사가 복작이며 늘 정신없는 업무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이전의 학교와는 달리 단 둘이서만 한 사무실을 쓰게 됐다. 교무실이 너무도 고요하고 광활했다. 이 학교는 한 때 학년별로 열반이 넘는 큰 규모의 학교였으나 구도심의 특성상 점차 규모가 절반으로 축소되어 학년별로 4-5반밖에 되지 않는 학교가 됐다. 별관은 아예 비워두고 본관만 교실과 사무실로 쓰는 데도 공실이 넘쳐났다. 당연히 선생님들의 사무실도 여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편안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한마디로 정말 외로웠다. 나는 교무실 안에서 고요하고 외로운 섬이 되어 침잠했다. 그 외로움 안에서 내가 지나온 교직 문화를 되돌아 보았다.

곧 복직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휴직 막바지의 느슨함이 공존하던 지난 여름은 참 뜨거웠다.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을 발단으로 교권 추락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여름을 달궜고 나 역시 그 속에 깊이 빠져 들려고 무던히 애썼다. 여름옷으로는 이례적으로 검은색을 많이 사들이며 여러번 집회에 참석했다. 여러가지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문제로 집회에 매 주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참석하려고 노력했고 아이들과 함께 서이초에 가서 추모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유독 교사 대 학생, 혹은 교사 대 학부모의 대결구도를 만드는 듯한 언쟁들에 불편을 느꼈다. 교사들이 집회를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 선생님들을 추모하는 것은 학생이나 학부모를 비난하고 적대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교사들의 움직임은, 학교에서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 하고 관계의 지속을 이어나가지 못한 채 섬이 되고 있는 교사들이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다짐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여름 휴직을 한 상태로 집회에 참석하면서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내가 지나온 교직 사회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한 교사들의 교직 문화, 그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학생과 학부모를 차치하고, 지금 교사들은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는가.

교무실에 있을 때 과연 나는 평화로운가 자문해 본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교사들도 서로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고 동료들을 서열화한다. 문제없이 담임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부장업무를 맡겨 준관리자로서 부서원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가 없는가, 공문서 작성에 능한가 서툰가 등이 기준이 된다. 교사들이 다른 회사원들과 다른 점은 학급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정도나 학급 학부모의 민원 강도,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정도나 인기 등이 교사 개인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수련회에 가서 등산을 하는데 어려운 코스는 A, 조금 쉬운 코스는 B로 안내하고 학생들의 신청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함께라면 할 수 있다고 독려하며 전원 A 코스로 가자고 밀어붙였다. 학급 전원이 A 코스를 선택한 반은 우리반이 유일했다. 그 때 학년 부장님도, 교감선생님도 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들어 주었다. ‘그 반은 00 선생님의 왕국이야. 선생님 말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아주 훌륭한 반이야.’라는 평을 들었고 나는 어쩐지 정말 훌륭한 담임선생님이 된 것 같아 우쭐해졌다. 하지만 등산을 하면서 약간의 천식이 있던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중도 포기를 하고 다른 선생님과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가야 했다. 나는 모두 함께 가자고 신나게 외쳤던 내가 그 아이에게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자문했다. 그 아이는 분명 B 코스로 가고 싶었을텐데 왜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솔직한 의견을 들어주지 못하는 나는, 아이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지 못하게 한 나는 과연 몇몇 교사들의 평가대로 훌륭한 담임이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개학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아이들은 방학 중 누렸던 일탈의 모습을 미처 다 벗지 못할 때가 많다. 그 중 가장 많은 경우가 머리 염색이나 화장, 네일아트나 사복입기 등이다. 어느 정도 허용을 해줄 때가 많지만 너무 눈에 띄는 머리 염색이나 화장, 사복 등은 여러 선생님들이 지적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지적해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중학생 아이들은 방학 전과 후에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다. 방학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방학이 지나면서 어떤 자각이 생겼는지 어른, 특히 선생님의 말이라면 이유없이 반항하고 보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반 학생 중에 한 명이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몇차례 주의를 주었음에도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아예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을 내길래, 또 다시 얘기해봤자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실랑이를 하게 될 것만 같아 한동안 아이의 심리 상태를 관찰만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그 반 아주 엉망이야. 그 선생님은 애들 못 잡아. 관리가 안돼’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씁쓸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들께 인정을 받아야 나 역시 다른 교사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도 담임을 평가하지만, 학급의 문제로 동료 교사들도 동료교사를 평가한다. 그래서 담임들은 학급의 문제를 끌어안고 혼자 끙끙댈 때가 많다. 학급의 문제는 당연히 담임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때문에, 그리고 스스로 학급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능한 교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교사 집회에 나가서 수많은 선생님들의 발언을 들으며 희망을 느꼈다. 혼자 끙끙대던 문제들을 광장에서 외치는 수많은 교사들과 그들의 외침에 공명하는 수천, 수만의 교사들 속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했다. 그들의 고통이 전해져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이제야 비로소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편안해질 수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선생님들이 내 가까이에 그리고 저 멀리에도 있었다. 교사들은 이미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교사에게 학교는 결코 편하거나 평화로운 곳은 아니다. 때때로 끔찍하기까지 하다. 교실 안에서도 교무실에서도 오롯이 홀로 서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해도 내 가까이에, 그리고 저 멀리까지도 나의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교사들 한 명 한 명은 섬 같지만, 보이지 않는 검은 물결 속에서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있음을 계속 상기하려 한다. 뒤늦게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면서 막막할 때도 많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나는 이 곳에 혼자 앉아 풍요로운 섬이 되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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