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다 알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엄마와 딸 사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던 엄마가 이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을 때가 많다.
이렇게 힘든데 왜 어서 결혼해서 아이 낳으라고 했어? 언젠가 엄마에게 이토록 철없는 말을 내뱉은 적이 있다. 엄마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딸로서는 생각없이 쏟아내곤 했다. 엄마가 되고보니 한편으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가도, 엄마 앞에만 서면 여전히 철부지 딸이 되고 만다. 이래서 자식은 환갑이 되어도 애라고 하나 보다.
예전에 나는 많은 것을 엄마에게 물어보곤 했다. 요즘 재미있는 드라마가 무엇인지, 엄마가 잘 하는 요리의 비법은 무엇인지, 식물을 잘 키우는 방법은 무엇인지, 친척들 경조사가 언제 있으며 경조사비는 얼마나 보내야 하는지 등. 무슨 일이든 엄마의 말이 기준이 되곤 했다. 엄마는 기꺼이 내게 대답해 줬고, 내가 묻지 않은 것까지 여러가지 정보들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 요즘은 엄마가 내게 자주 묻는다. 인터넷으로 뭔가를 사고 싶을 때도, 병원을 다녀와 앱을 통해 보험금 청구를 할 때도, 버스 노선이나 지하철 노선도를 알고 싶을 때도, 근처 맛집을 찾을 때도 종종 전화를 걸어 묻곤 한다. 그런데 일을 하는 중이거나 아이들을 픽업하느라 바쁠 때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짜증부터 난다. 뭐 그런 일로 이 바쁜 와중에 전화를 할까, 휴대폰 사용법을 몇 번이나 알려줬는데 왜 못하는 걸까 답답해 하며 일단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넘기고 만다.
언젠가부터 엄마와의 대화가 불편해졌다. 엄마를 통해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내 삶이 엄마의 부추김이나 조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때문에 내 삶이 여기까지 와 버렸다는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엄마때문에 내가 이정도밖에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탓을 하기도 했다. 엄마라고 가만히 앉아 그 원망을 듣어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만큼 키워 결혼시키고 애 키우는 것까지 도와주고 있는데!”
엄마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이만큼 키워서 결혼시키고 육아에까지 도움을 주고 있는데 고맙다고 대접을 해 주지는 못할망정 자신을 불편해하거나 불평만 하는 딸이 못마땅할 것이다. 나는 때로 엄마때문에 결혼했다고 생각했으나, 엄마는 당신덕분에 내가 결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때로 엄마때문에 내 삶이 내가 바라던 모습과는 조금 틀어진 상태로 나를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엄마는 아직도 사춘기 어린애처럼 불평만 해대는 내가 덜 컸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엄마만큼 내 딸에게 결코 해 줄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힘들 때마다 끊임없이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 탓을 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툴툴거리면서라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엄마로서, 교사로서, 생활인으로서 내가 소비되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엄마를 소비했다. 그렇게 다 커서도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딸로 살고 있다.
“딸아, 엄마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지는 말아라. 그리고 엄마 때문에 어떤 선택을 미루지도 말아라. 너는 너의 선택만으로 살아라.”
딸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해 주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온전히 딸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말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다. 내가 엄마로서의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만든 변명이 아닐까. 내 딸아이에게도 힘들때마다 끊임없이 소비할 ‘엄마’를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힘들어도 네가 선택한 일이니 무엇이든 네가 전적으로 책임지라고 밀어붙이는 서글픈 말이 되지는 않을까. 아이가 힘들 때 비빌 언덕이 되어 주면서도, 마음껏 자신의 삶을 펼칠 수 있도록 조언해 주려면 어떤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하는 걸까.
딸아이에게 해 줘야 할 말을 고민하면서, 한 편으로 엄마에게 할 말을 생각해 보니 오로지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딸아이에게 해 줘야 할 말도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열심히 말로 포장하려 해도 엄마와 딸 사이에 놓인 삶은 포장할 수 없으므로.
이제는 딸이라고 마냥 엄마를 의지할 수만은 없는 나이다. 그리고 엄마라고 마냥 딸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는 시기이다. 엄마로서도 딸로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한 방법은 모르는 채로 시간은 흘러가고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던 엄마가 이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을 때가 많다.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딸 아이는 마치 자기가 다 안다는 듯 말대꾸가 늘었다. 엄마와 딸 사이에서 나 역시 엄마였다가 딸이었다가 수시로 모드를 전환하며 산다. 매일 고마운 일과 미안한 일 사이에서 엄마와 딸 사이의 삶을 오간다. 그 어떤 포장된 말보다도 단순하고 솔직한 말로 계속 변화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삶을 헤쳐나가고 싶다.
엄마,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딸아,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