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회의에 대한 단상
어떠한 일이 생겨도 침착할 것이라는 깃발을 꽂아 두고, 일 년을 지냈다. 쓸모 있던 깃발인지
헐어있는 깃발을 만져 본다.
일월을 시작으로 깃발에 침착함이라는 글을 새기진 않았다. 막연하게 도전의 광기로 시작했던 2024년의 겨울에 꽂아본다. 사회복지 상담학과 3학년 편입을 준비하며, 담담했다. 기대감은
묻어둔 채로, 상담을 받고, 얌전한 결정을 한다. 그건 형이 이제 거동을 못하게 되어서, 그 후로
지금까지 1년 이상 대소변을 저녁마다 비워 야했을 때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담담하지만 조금 절박했던, 필요했던 도전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담담함에 시간을 파 썰듯 촘촘히 썰어서 기계처럼 공평한 힘으로 하루하루에 뿌려야 함을 깨닫는다. 봄을 앞두고 일과 속에 고정으로 해야 할 것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이제, 봄이면 나는. 일, 학교, 마라톤, 똥, 오줌, 고양이, 그런 식으로 게으를 수 있는 시간이 좁혀졌다. 2023년 겨울 전의 약 1년 가까이 나를 나이기도 잊은 채로 길바닥에 던져둔 채로 살았다. 이리 쓸리면 이리 쓸리고, 누군가 밟는다면 밟혀주고, 벽이 안아주면
그것대로 따스해하고. 그렇게 지냈었다. 봄이 되었고, 친구의 여자친구말에 고민이 아닌 의심도 아닌 결심할 과정도 없이 학교에서 과대자리에 스스로 나를 추천하여, 맨 앞자리에 앉았다.
게으를 수 있는 시간은 좁아지다 못해, 봄부터 나의 촘촘한 하루생활이 시작되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주일에 삼일씩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출근 전에 시간이 생기면, 온라인 수업을 듣는다. 일을 마치고, 형에게 들려서 형의 마무리를 해주고. 고양이를 쳐다보다가, 또 내일이 되면
오늘 한 것들을 하고, 그다음 날이면 또 그런 하루를 보냈다. 학교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수업
이른바 플립 러닝구조로 진행되었고, 수업은 재미있기도 했고, 타인에 대한 복지 전에 내 삶에 대한 복지를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성인학습이라는 형태의 학과생활이 내게 침착함의 해답을 던져주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전진하며 점점 불타오를 이야기라서, 여기서 멈춘다. 그렇게 나는 침착함을 장착하고. 1년을 열심히 살아보았다.
겨울이 왔고, 눈이 내리고, 내린 눈 위로 대책회의 초대장이 왔다. 이제 나는 일, 달리기, 학교, 똥, 오줌, 독서, 글쓰기, 고양이, 사진 등등으로 거의 옆으로 걸어야 할 좁은 시간길을 만들었다. 작년에 써먹었던 침착함의 깃발이 올해에 쓸모가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 몇 개 버려야겠어.
집안에 있는 미련 있는 물건부터 버리기 시작을 해본다. 나는 일요일마다 무언가를 하나 버리기 시작한다. 그건 작년부터 하던 일이긴 하지만, 올해는 좀 더 신중하고 과감하게 버려본다.
그 하나가 무엇이 되었건, 그것을 버릴 때 자연스럽게 같이 정리가 되는 시간이 있다.
대책회의는 독서모임이다. 내가 들어왔을 땐 마침 글을 쓰는 곳인가라고 생각할 타이밍이었고,
나는 그게 마침 재밌어서 일요일엔 신나게 무언가를 전보다 ‘더’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리고 빈자리에는 책장 속에 비스듬히 삐져서 누워있던 책으로 채워지기 시작을 했고, 탁자는 조금 불만이 생겼겠지만. 봄을 맞이하는 나의 방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종이냄새가 차오르고, 왠지 시월이-나의 고양이-도 상황에 맞추어 근사하게 걸어준다. 책을 읽고 있으면 페이지숫자가 보이는 곳 옆에서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꼬리를 털썩 인다.
대책회의는 내게 미련의 중간에서 좋은 결정을 하게 해 준다. 언젠가 다시 맞춰볼 퍼즐조각들을 버리게 해 주고, 이쁘다고 쌓아둔 박스를 과감히 찌부러뜨리게 해 준다. 구멍 뚫린 양말들을
점검하게 해 주었고, 언젠가 어느 식당에서 들킬 창피함의 기회도 박탈해 준다. 나를 한 번 더 목욕하게 해 주고, 보다 더 좋은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준다.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그대들이, 내 인생을 위로해 주려고 누군가 꾸민 계획처럼. 그들이 내게
지혜와 기쁨을 준다.
매일 한 분 한 분의 글들을 보는 재미로 미칠 것 같다. 모두 저마다의 얘기로 알림이 울리면, 참 열심히 본다. 아 이럴 때면 잠깐 침착함이 필요한데 말이다. 좋아서 방방 뛰다가, 엇나가지 않게.
큰 기쁨의 목줄을 놓아주면, 건방짐과 경솔함을 끌고 온다. 그럴 때 필요한 침착함.
기분이 좋을 때 난, 화난 표정으로 어느 정도 감출 수 있다고 믿는다. 기쁘게 화난 얼굴을 그때 내게서 보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들킬 감정도 아니고, 천성적으로 기쁨을 숨기려서도 아니다. 밝둡이 -barkmute 무음을 개같이 짖고싶어요. 지독한 모놀로그에서 거기서 장난처럼 사진을 찍으며 연결된다고 생각해서 만든 - 조울증이 아니라고 변명을 해보며, 다만 행복한 시간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고백해보면서.
한분 한분들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조용한 불꽃을 튀기며 , 불타지 않을 볼꽃을 간직하고
같이 찾고 같이 고민한 길을 밝혀주길.
그 누구 한명 중간에 죽는다 해도, 시들지 않는 밝음의 하나이길.
어쩌면 앞으로 만나지 못하더라도 오늘만큼만 계속 행복하길 인생의 끝자락에 깃발을 꽂아줍니다. 마주치지 못한 그대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