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과 구조
숭덩 썰어 얼려둔 대파를 꺼냈다. 반쪼가리 양파도 꺼냈고, 큰 투명 포장지에 담겨 있는 만두도 손에 잡히는 만큼 잡아 꺼내었다. 맛이 진해 보이는 거대한 소시지햄과 다진 마늘이 담긴 통, 먹어보지 않고 호기심으로 샀던 체다 치즈, 버터, 계란, 설탕, 소금, 진간장, 밥 그리고 넣어도 문제없을 것 같은 재료들을 잔뜩 줄지었다. 열한 시 삼십 분이 되면 형방에서 개인 취향 따위 없는 기본 설정음이 흘렀고, 형의 역동적이지 않는 몸통과 거기에 달려있는 팔과 다리는 앙증맞게 꿈틀거릴 준비를 한다. 아직 뭔가 더 있을지 냉장고 안을 쳐다보며 나의 귀는 형의 방문을 노크한 채 멈춰있다. 새벽부터 채워진 오줌을 누는 소리가 난다, 나의 귀가 쳐다보는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끊기듯 느리고 미끄러지는 형의 가벼운 엉덩이에 침대시트가 주름지며, 형의 다음 스케줄에 맞추어 잠잘 준비를 시작했다. 늙고 큰 터지듯 갈라진 피부의 검은색 게임용 의자가 녹슨 티를 내며 허리가 꺾이고, 형의 낑낑대는 탑승소리가 들린다. 코로나가 삼십 년 전에 발생했다면, 형은 아주 훌륭한 재택근무 사원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장까지도 거뜬했을 부지런함을 발산하며, 바로 컴퓨터를 켠다. 오래오래 사용할 마음으로 잘못 들었다고 생각해서 다시 물어봤을 만큼 비싼 케이스는 형이 갖지 못하는 우람한 근육처럼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육중한 케이스 안의 초라한 각각의 부품들은 엉키어 1분 정도의 시간뒤에 부팅을 완료했다. 어머님의 장례식이 끝난 후 컴퓨터 좋은 거 사라고 기분 좋게 준 돈을 형은 안전하고 오래가는 케이스에 투자를 했던 것이다. 컴퓨터가 느린 것만큼은 공감하고 봐줄 수 있는 그이기에, 튼튼한 케이스는 더욱 오늘 아침에도 반짝이듯 들린다.
난 양파를 엉성하게 썰며 소리친다. 형 오늘은 볶음밥 만들어볼게, 보통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나도 들은 척하고, 남은 양파의 반쪽을 두 동강 낸다. 찬 대파와 함께, 야채로 분류되는 몇 가지를 큰 그릇 위에 대범하게 놓는다. 살얼음에 갇힌 대파가 정오의 볕을 쬐며 옷을 벗길래 난 살짝 울어줬다. 까인 양파에도 끄떡없었는데, 대파가 날 울리다니. 녹색상체의 허연 하체 따위한테 말이지. 그리고 거대한 분홍색의 햄을 어루만질 무렵, 형은 지금은 숲으로 바뀐, 아프리카 개인방송을 만지고 고르고 켰다. 평일의 낮, 난 점심을 준비 중이고, 형의 몸에 달라붙은 살얼음을 녹이는 방송에서는 젊은 남녀가 날것의 욕을 저마다의 입술에 당겼다가 쏘고 있었다. 냉동만두의 해동을 지켜보며, 형의 얼어붙은 관절을 향한 욕에 치유효과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아본다. 나의 눈 사이는 꽤 거리가 있는 편인데, 그 넓고 평평한 곳에 타는 만두의 연기가 올라탔고, 어떤 기억에 올라탔다.
촤라라락, 끝이 안 보이게 기다란 떡이 칼끝이 닿기도 전에 갈리고, 줄을 선다. 도마 위에 썰린 떡은 명령에 복종하는 집단이듯 한쪽 세로줄을 차지하고 웃으며 죽은 떡인양 껄떡이며 숨을 참고 있었다. 형은 반쯤 굳었지만 제법 부드러운 손목을 놀리며 장발머리 바텐더처럼 집중했다. 고집을 담아서. 형의 뒷모습은 그래서인지 웃겼다. 자존심의 두께는 30도쯤 꺾여 굳은 무릎이 어디일지 모르는 통이 넓은 청바지의 몫이었지만, 긴 허리와 제대로 만나서 내 다리를 짧다고 무시한 대가를 치를 만큼 나에겐 통쾌한 광경이다. 형은 걷지만,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형이 걸을땐 할머니가 문지르듯 튕기는 베이스기타소리가 난다. 고집을 끌고 짊어지듯 자기 자신을 일센치씩 앞으로 잘게 나누어 던지듯 걷는 형이 엉성히 서서, 도마 위에서 칼쇼를 하는 걸 슬쩍 지켜보는 이유는 하나다. 형이 만든 떡볶이는 참 맛있어서이다. 그날 오전에 서른아홉의 형은 아직 남아있는 힘으로 나에게 짜증을 내었다. 아니 화를 낸 것일 수도 있었겠다. 그리고 삐져있는 내 얼굴에 낀 살얼음을 걷어내려, 별 말없이 야식으로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뭐, 날 위해 만든다는 내 생각은 완벽한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배고파서, 어쨌건 저 떡볶이는 먹을 가치가 있기에 20년이 지난 지금 나의 미간사이에 떠오를 만큼. 그때 이미 형의 손은 깨끗하진 않아 보였다. 그 손으로 별 짓을 넘어, 상상이상의 짓을 했어서 인지 그 손맛으로 만든 떡볶이는 참 맛있었다. 형은 음식을 만들 때 모든 정성을 쏟았다. 형의 젊음 사이사이의 관절에 악행을 저지른 류마티스도 형의 야식은 한동안 허락했다. 형은 밤마다 잔뜩 기름을 두르고, 밥을 튀기고, 김치를 튀겼다. 분식류의 그런 음식은 젊은 시절 낮사이의 밤으로 이루어진 연골의 자리를 버티게 해 주었다. 김치볶음밥도 지나치게 맛있었는데, 엄마 머리에 들이닥친 치매가 김치를 가져간 후, 형은 그걸 계란 볶음밥으로 대신했다. 문득 먹고 싶다. 형의 손 끝에서 조심스럽게 부스러져 나왔던 작은 양의 소금의 간이 다시 궁금하다. 엄마의 된장찌개만큼.
만두가 어느 정도 녹았다. 코 끝이 찡해서 상한 만두를 의심해서 코를 가져가보았지만, 문제없다. 프라이팬에 내겐 비싸게만 보였던 올리브유를 두른다. 비싼 그 올리브유가 공중으로 사라질 때 얼마나 돈이 아까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 위에 밥을 툭 올리고 볶기 시작한다. 치즈를 밥과 볶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 채소랑 정을 통할지 밥이랑 낮거리를 할지, 망설이다가 밥을 선택했다. 한 올 한 올 사이를 갈라놓을 심산으로 노릇노릇 밥을 볶고, 면기에 건져내어 진정을 시킨다. 넌 거기서 조금 고슬해질 준비를 해줘,라고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에 익숙한 척 동작을 취해본다. 형 방에서 어떤 여자의 짧은 신음소리가 나자마자 사라졌고, 난 만두를 프라이팬에 올리고 갈기갈기 찢었다. 나 같은 사람과 나 같은 사람을 둔 형이 먹기에 딱인 아이디어다. 먹고 남은 만두도 아니지만, 찢기 위해 해동을 했고, 그런 와중 코끝도 찡했지만, 고기를 풀어 찢어재끼며 어떤 맛일지 상상을 하니, 침이 고인다. 햄을 볶았고, 양파 대파 그리고 땅에서 나는 몇 가지 것들을 팬에 넣었고 다진 마늘을 넣었다. 버터도 럭셔리하게 잘라 넣었고, 힘을 뺀 손목으로 소금 간을 했고, 간장을 한 바퀴 돌렸다. 밥 이외의 모두를 모았고, 비록 인천 월미도의 디스코팡팡만큼은 아니었지만 프라이팬을 튕기듯 돌려본다. 기생충의 시계방향 느낌으로 맛있게.
형의 떡볶이가 입속에서 톡 하고 터진다. 게으른 야식에 최적화된 쫄깃한 면이 떡볶이 사이를 미끄러지듯 휘감고 있었고, 어느새 조금 더 크게 반이 잘린 찐계란은 내 입속을 가득 채운다. 안방에서 떡볶이 하나가 남아 있는 작은 접시와 젓가락 두 세트가 올려진 쟁반이 밖으로 내밀어졌다.
잘 무따. 흐린 안개에 얼굴을 파묻어 찾아낸 오래된 목소리가 들린다. 웃음소리가 잘게 잘려 날아다닌다.
이제, 밥을 넣는다. 형이 만든 기억 속의 볶음밥을 흉내 낸다. 밥알은 하나하나 최대한 따로따로 흩어지듯이, 열심히 나무수저로 그것들을 헤쳐낸다. 겨우 붙어 있는 형과 나를 닮은 두 개의 밥알이 잠깐 스쳤지만, 찢어진 만두였는지 대파에 묶여 사라졌다. 간장이 묻힌 검정색 달큼함이 손목에 튀었고, 양파는 아직 남은 매력을 호소하듯 몸을 벌리고 있었다. 형태를 잃어버린 치즈와 그 속에 갇힌 버터의 속마음은 레시피 되지 않는 답답함에 기대어 내 혀에, 코끝에 안겼다. 이쯤에서 난 더 이상의 의욕을 멈춘다. 이쯤 했으면 사실 지나치게 충분하다. 간단한 계란 프라이의 생각에서 이렇게까지 연장이 된 날이면, 이유가 있던 형의 떡볶이에 비하면 굉장한 요리인 것이다. 이제 그릇을 준비한다. 맛있어 보이는 기대만큼 부족해 보이는 양에 더 넣은 밥 때문인지, 프라이팬을 삐져나올 듯 많은 그 볶음밥을 쟁반 위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김치 서너 조각을 작은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그저께 저녁 술자리에서 먹지 않고 남겨져 챙겨 온 마늘장아찌를 덜었다. 형의 손가락은 이제 젓가락을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난 숟가락만큼 중요한 반짝이는 포크를 나란히 놓았다. 쟁반을 들고 몇 걸음 걷고, 문을 발로 밀고 들어선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에 형의 옆얼굴이 반짝인다. 책상 위에 놓인 오른팔이 얌전하고 손은 잠에서 덜 깨어있다. '형, 간이 맞을지 모르겠어. 볶음밥.' 툭 놓인 쟁반에 쏟아지는 인터넷 방송에서 나오는 한낮의 축제로 얼룩진 괴성들이 묻어난다. 정성 들인 나의 볶음밥을 자신 있게 형 쪽으로 좀 더 밀었다. 형의 눈은 모니터에 연결되었고, 굳은 손에 껴서 요상한 각도로 들어가는 밥들을 보며, 난 내 밥을 향해 갔다.
이렇게 맛있는걸 둘이만 먹고, 소문도 안 내는 건 정말 참을 수가 없네. 억울하듯이 먹었다. 형은 밥이 맛있으면 이내 그릇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형의 세계에서 내는 소문이 내게 닿는다. 웅크려 먹는 고개 숙인 목이 들썩인다. 가까운 공간 비슷한 시간에서의 식사시간이 비스듬히 누워 흘렀다. 그리고 형의 깨끗이 빈 그릇이 담긴 쟁반을 치운다. 형은 잘 먹은 배부른 배에 제일 맛있는 물을 끼얹듯 말한다. 마늘장아찌가 너무 맛있다.
세상에나. 역시 그런 거겠지. 족발집을 들쑤셔서, 일 년 내내 그걸 바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김치볶음밥 고수의 혀끝을 만족시키는 건 밝은 대낮만큼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요리는 재료 다듬기부터 해야 하는데, 그 큰 대파도 그냥 사용했지. 퍼런 그 대파를 떠올려본다. 아무것도 아닌 그 대파 한 덩어리를. 파래서 파란 아이를.
그리고 항상 걷던 나만의 사유의 길로 접어든다.
추운 겨울 눈보라 속을 견디다 눈꽃한송이를 만난다.
입안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혀끝을 칼처럼 세워 그것들을 잘게 무늬질을 한다.
삶의 증거인 등에 맺힌 소금을 한 겹 칠 한 후,
내 혀의 어깨살을 뜯어내어 그 위에 올려 두었다.
하고 싶은 말은 혀 위에서 봄을 기다리는 갈망에 섞여 겨울태양에 검기운다.
지금이 일월이고,
혀 내민 채로 며칠 더 잠에 든다면,
온몸을 간지럽히는 햇귀에 잠을 마치고,
또렷한 말 한마디가 핀 봄의 꽃 한 송이를 혀에서 뽑아낸다.
항아리에서 퍼낸 봄날의 첫 국자를 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