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묘사
그날 그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건 영화가 시작하고 한참만에 알았다. 소리가 듣고 싶어서 케이블도 다시 꽂아보고, 각종 버튼을 만졌다.
관찰과 묘사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사색에 빠졌고, 거리를 걸었다. 의자에 앉아서 흐르는 하천을 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정물화를 그리듯 스파이의 훈련된 눈으로 담아보려 애써본다. 말을 주고받는 노부부가 지나간다. 난 일어났고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자신이 늙은 건 그의 탓인 듯 말했다. 점잖은 단어를 몇 개씩 섞어가며 그 짧은 시간에 그의 모든 걸 끄집어내어 공격했다. 하나부터 열까지라는 말을 열 번 정도 할 무렵 그 둘은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하천옆의 난간에 대롱대롱 달라붙었고, 물밑에 흐르는 고기떼를 본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어디쯤을 가리켰고, 생각을 말로 옮기듯 입을 열었는데, 그를 향한 말은 아니었다. 옆모습이 소녀 같이 가벼웠고, 양손에 짐을 든 그의 몸은 소녀의 옆에 우뚝 서있다. 준비된 1회용 구조막대기처럼. 이내 고기떼를 구경하는 것을 그만두고 할머니는 급하게 걸었고, 할아버지도 다시 쫓아가듯 뒤를 걸었다. 뒤를 따라가던 난 집으로 돌아왔다.
난 물고기가 보고 싶어서 살짝 말아 올린 할머니의 뒤꿈치가 아직 거슬린다.
관찰의 시간은 성과 없이 내 침대에서 끝났고, 고양이 몸통을 발로 간지럽히며 나의 턱을 만지며 뒹군다. 발꿈치에 닿은 이불의 무늬가 물결처럼 흘렀고 발가락에 닿은 고양이털은 물고기의 키스다.
그것의 쓸림을 즐기며, 뒤꿈치가 딛고 있던 보이지 않는 그것을 글에 담고 싶어졌다. 글자 속에 숨어 있고, 문장뒤에서 비웃는 모양으로 존재한다. 뜯어낸 글자의 눌어붙은 흔적에 있고, 사랑의 고백을 쓰다듬으며 공간을 부풀린다. 30년 전 바닷가에서 모래를 그으며 새긴 삼켜진 파도의 짠내를 담았고,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써본 첫 글자의 순수함도 녹아있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아파한 말들의 뼈가 만져진다.
그 티브이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영화를 틀고 소리와 자막을 껐다. 그러자 보이는 것들이 앞으로 드러났다. 그것들을 감정에 닿기 전에 글에 가둔다. 나의 한 손을 적기 위한 것이고, 남은 한 손은 다가가는 나의 다리를 잡기 위한 방패다.
경찰과 소방관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상사가 이곳저곳을 확인하며 커튼을 제치고, 피아노가 있는 방을 확인한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찡그렸다. 새하얀 시체의 할머니가 침대에 누워있고 그 위에 꽃이 뿌려져 있다.
공연장에 노부부가 앉아서 시작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다시 조명이 밝아졌고,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사람들은 듣는다. 모은 손을 풀기도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다. 공연은 뮤지컬로 예상한다, 공연이 끝난 후의 지인으로 보이는 관객들, 노부부도 그곳에 있다. 그들은 누군가와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창가에 앉은 할머니가 웃었다. 집에 들어온 할아버지가 문을 만지작 거리며 말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외투를 벗는 걸 도와주고, 자신의 것도 옷걸이에 걸었다. 구두를 실내화로 갈아 신고, 방입구에 서서 옆모습으로 웃다가 사라졌다. 남아있는 텅 빈 복도가 한참 동안 그곳에 있었다.
어둠. 티브이의 전원이 꺼졌는지 확인해야 할 만큼 멈춰있었다.
아침이고 둘은 식사를 한다. 할아버지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할머니는 삶은 계란을 꺼내어 이쁜 컵에 올려 할아버지에게 주었다. 각자의 할 일을 하는 평범한 공기와 볕이 있다. 이쁜 풀색 잠옷을 입고 소녀처럼 할아버지가 계란 위에 소금을 뿌리는 것을 본다. 잠옷을 입은 할아버지의 절룩이는 한쪽다리가 화면을 채운다.
내가 화면을 놓친 사이 할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정면을 보는 눈빛이 투명하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눈이다. 전날의 공연을 보던 눈과는 다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눈 끝에 맺힌 시야를 손으로 흔들어 보았고,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서로 영문을 모르는 아침이다. 할아버지는 옷을 입다가 다시 부엌으로 갔고, 식탁 위의 할머니의 눈빛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 시선이 곧다. 손에는 파이를 들고 있고, 잠깐 있었던 시간에 대해 옛날이야기하듯 이야기를 나눈다.
평범한 아침의 아직 밟지 않은 햇살이 창가를 두드리며 기어 들어왔다.
할머니는 커피를 잔에 따르는데, 손과 눈은 이유를 모르듯 떨리고, 커피는 흘러넘친다.
캄캄하지 않은 저녁, 부엌도 잠들고, 모든 건 졸리듯 잿빛이다.
혹은 푸른색
날은 밝고 두 명이 고급진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젊은 여자가 말하고 할아버지는 뒷모습인데 대답의 용도로 고개만 끄덕인다. 책장에 책이 꽉 차있고, 책장 1층엔 그림액자가 비스듬히 걸쳐있다. 그 옆 벽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하나씩 보태어진 여러 가지 액자들이 착실하게 걸려있다. 젊은 여자의 팔이 양쪽으로 나뉘며 이해하기 싫은 것을 받아들이듯 입술을 내밀었다가, 한 번씩 웃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화면에서 커지더니 말을 하고, 다시 젊은 여자와 할아버지를 번갈아서 보여준다. 무언가 받아들이려 애쓰는 얼굴들이 보인다.
젊은 남자 두 명이 환자용 전동침대를 설치한다. 이제 할머니는 휠체어를 탄다.
어느 남자가 노부부를 향해 웃는다. 코가 크고, 대머리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탄 휠체어를 절룩이며 서재로 간다. 외투를 벗어 의자에 던졌다. 그제야 느린 몸을 앉지만, 곧 벌떡 일어나서 휠체어의 할머니를 끌어안고 들어 올렸다. 삶에서 처음 스포츠를 배우는 사람처럼 낯설다. 옆의 의자에 앉히는 과정이 느리고 부자연스럽다. 엉성히 앉아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한다. 화면은 정지돼 있는 듯하고, 마치 방은 죽어가고, 둘의 대화만 가느다란 실처럼 기었다.
할머니를 침대에 눕힌다. 몸은 더 굳어있고, 할머니는 눈은 위를 향했다. 미소를 담고 말한다. 취침등에 비친 옆모습이 이쁘다. 할아버지는 방을 떠났고, 할머니의 미소는 살아있지만, 몇 마디 혼잣말을 한 후, 표정은 잠시동안 굳었지만, 화면 오른쪽에서 책을 든 할아버지를 보며 다시 생기를 찾았다. 왼손에 들려진 책을 만지다가 안경을 그 손으로 불편하게 잡아 낀 후 다시 책을 들었다. 오른팔은 안 움직인다.
다음날, 젊은 여자가 장을 봐왔고, 영수증과 잔돈을 보여준다. 무릎높이의 치마를 입은 여자는 걸어 나간다.
할아버지가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급히 끄고 밖으로 버렸다. 급히 뿜은 연기의 양이 많다. 할머니의 용변이 끝난 상황이었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안아 올렸고, 팬티를 추켜올렸다. 춤을 추듯 뒷걸음질을 하며 화장실을 벗어난다.
어둠, 어둠이 짙다. 계속 어둠이 지나칠 정도로 이어진다.
스위치로 킨듯한 아침의 식사시간이다. 스테이크를 친절하게 자른 할아버지가 눈을 쳐다보고 말하며 손에 든 접시를 할머니 자리 앞에 놓았다. 할머니의 오른손은 안쪽으로 굽어 굳어 있고, 왼손의 포크로 고기를 먹었다. 검은색의 머리핀을 꽂은 은발이 가지런하고. 고기를 씹는 턱이 뒤에서 보인다. 둘은 서로의 말을 듣고 꼭 한번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하얀 다리를 들어 올리며 재활 운동을 시킨다. 관절을 굽혔다가 펼 때마다 할머니의 입술이 벌어졌다.
할머니는 벨벳 소파 위 담요를 덮은 채 잡지를 읽고, 할아버지는 옆의 원탁에 앉아서 신문을 읽는다. 스탠드조명 2개가 켜있다. 반지를 낀 할머니의 왼손에 잡은 잡지를 배에 올리고,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할아버지는 신문을 떨듯이 만지며 말을 이어간다. 눈이 충혈돼 있다. 둘의 대화가 먼저 잠든다.
할머니는 바닥에서 벽에 기댄 채 앉아있고, 막 집에 들어온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안아 올린다. 비가 내리는 오후다. 창가에 빗방울이 부딪쳐 안으로 조금씩 들어왔고, 할아버지는 창문을 닫았다. 할머니의 얼굴과 할아버지의 얼굴과 몸이 검게 물들었다. 방 안으로 들어오는 휠체어와 할아버지. 방에 조명을 켜고 할머니는 아래를 바라본 채 말을 하고, 할아버지는 선채로 말을 한다. 그리고 마주 앉은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쳐다보았고, 할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은 무언가 계속 말을 했는데, 할머니의 눈은 붉어지고 검은색잉크가 채워진 듯하다. 할아버지는 웃지 않고 말했고 할머니는 아주 조금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코끝이 붉고, 전보다 더 늙어있다. 코트를 입은 할아버지의 목주름 아래 그림자가 유난히도 깊었다.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잡고 집안의 어디론가 향한다.
할머니는 역시 누워있다. 옆으로다. 인디고 색상의 카디건과 셔츠를 입은 얼굴은 한숨만 쉰다.
젊은 남자가 한 명 왔고, 할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할아버지가 안으로 안내를 했다. 젊은 남자가 화면아래에서 꽃을 올린다. 하얀 백합이다. 젊은 남자가 의자에 기다리듯이 앉았고, 꽃을 든 할아버지가 화면 왼쪽으로 빨려 가듯 사라졌다. 집안이 정갈하고 고풍스럽다. 젊은 남자가 고개를 돌려 처음 보는 집인양 이곳저곳을 본다. 일어났고, 어둠에서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안으로 밀며 들어왔고, 할머니와 젊은 남자는 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얼굴의 할머니가 어색하고, 힘을 주며 웃는다. 꺾인 손목과 손가락이 두드러져 보인다. 젊은 남자는 웃으며 말을 하고, 눈 끝은 할머니의 손을 향했다. 할아버지는 바닥을 보다가 눈동자만 올려 젊은 남자를 쳐다보았고, 할머니는 좀 더 말을 하고 웃었다. 젊은 남자가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는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거실 안을 해가 비춘다.
이제 할머니가 전동휠체어를 탄다. 방 안에서 장난감을 가져 놀듯 빙글빙글 돌며 할아버지에게 다가갔고, 할아버지가 뒷걸음을 치며 웃었다.
할머니는 책은 보지 않고 눈만 깜빡인다.
피아노 할아버지는 그저 앉아있다.
카펫을 청소기로 돌리는 젊은 여자가 있다. 원피스를 입었는데, 탄탄한 허벅지가 유난히 매끄럽다.
할머니의 머리를 감겨주는 할아버지의 손끝에 바가지가 들려있고, 물이 흐른다.
음식을 먹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났고, 절룩이며 어디로 향했다. 할머니가 침대아래로 떨어진 채 기대어있다. 할아버지가 몸을 끌어올려 침대에 눕혔고,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팔로 여러 번 휘젓는다.
양치질을 하던 할아버지는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 집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다. 불 켜진 방을 잠깐 보고 지나쳐 또 어딘가로 향한다. 어두운 복도다. 뒤에서 손이 뻗어 나와 할아버지의 입을 틀어막았다. 꿈에서 깨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발에 구두를 신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할머니는 걸어본다. 아름다운 얼굴에 비해 할머니의 몸이다. 손은 엉켜져 굽어있고, 다리는 힘겹게 한 걸음씩 걷는다.
오디오를 켜고, 할아버지는 의자,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있다. 할아버지가 엽서를 읽고, 할머니의 얼굴은 굳어있다. 원탁 위에 신문이 있고, 빈 재떨이가 보인다.
왼손으로 접시 위의 샐러드를 먹는다. 둘의 대화는 평범하다. 할아버지가 식사를 하다가 앨범을 들고 왔다. 식탁 위에 앨범을 펼친 할머니가 한 장 한 장 넘긴다. 흑백사진에 담긴 할머니의 모습들과 식구였던 개의 모습과 함께 어딘가 놀러 간 사진들이 펼쳐진다. 모습들과 순간들.
할아버지가 보던 신문을 내려놓자 할머니의 누운 모습이 나타난다. 취침등이 꺼지고. 다시 어둠이다.
할아버지는 막 잠에서 깬 할머니를 앉혔다. 아이보리 색상의 잠옷을 입었다. 할아버지가 안아 올린 후, 할머니는 침을 한번 삼킨다. 옆으로 걷는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고 힘겹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떨어지듯 앉자 바로 버튼을 누르고 먼저 어디론가 장난감처럼 가버렸다. 휠체어가 바닥의 턱에 걸렸는지, 탁 탁 튀듯 움직였고, 둘은 안절부절이다.
할머니는 누워있고 닝겔을 맞고 있다. 처음 보는 젊은 여자 가 침대 곁에 앉아서 말을 한다. 할머니는 천장을 바라보며 듣고 짧게 대답한다. 젊은 여자의 두 손은 서로 겹쳐져있고, 근처 할머니의 손가락은 움찔거렸다. 천장을 바라보며 오물거리더니 기침을 하는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전보다 말을 하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힘든 입술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으려 젊은 여자가 상체를 숙였다. 무언가 중요한 얘기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인지. 젊은 여자는 상체를 더욱 숙였다.
은발을 한 중년남자와 할아버지가 앉아서 대화를 한다. 할아버지는 기우뚱 말하고,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젊은 여자가 들어왔고, 은발의 중년남자가 여자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했다. 젊은 여자는 울고 있다. 할아버지의 어깨가 늘어진 채로 말을 한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사람의 얼굴이다. 젊은 여자의 눈물이 마르기 시작했고, 중년 남자얼굴이 지나쳐, 창가로 다가가 커튼밖을 쳐다본다.
할아버지는 설거지를 한다.
젊은 여자가 누운 할머니를 옆으로 살짝 들어 올렸고, 무언가를 확인한다. 젊은 간호사의 움직임이다.
할머니가 피아노를 친다. 안경을 꼈고, 회색 목폴라 니트를 입었다. 정상의 모습이다. 부드러운 상체가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오디오를 튼다.
침대의 상단부가 접히고 할머니도 앉았다. 목에 수건을 둘렀고, 할아버지는 떠준 죽 같은 것을 힘겹게 집어삼킨다. 할아버지는 매 번 수건으로 닦는다. 할머니의 혀가 파충류처럼 나왔다가 들어갔다. 죽을 먹는 할머니의 입이 굳게 닫히고, 할아버지의 수저를 든 손은 포기를 하고, 물컵을 들고 와서 할머니에게 먹였다. 물이 할머니의 입에 들어갔고, 할머니는 기침을 했다. 물렁거리는 입술로 무언가를 말을 하는데, 제각각 움직이는 입술들이 따로 도망가는 모습이다.
젊은 여자가 할머니를 씻긴다. 환자용 목욕의자에 앉은 할머니의 옆모습이 보인다. 피부가 하얗고 샤워모를 썼다. 젖가슴이 아래를 향한 주먹 같다. 젊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이고, 할아버지는 계산을 했다. 할아버지는 여자가 가자마자 할머니에게로 향했고, 할머니의 손을 한 손으로 바치고 오른손으로 쓰다듬는다. 다정한 손길이다. 굽은 할머니의 오른손의 경계면이 반짝인다. 창가에 전동휠체어가 보인다.
대머리 남자가 생수통과 봉지에 넣은 음식을 가져온다. 배달이다.
할머니의 말할 때 입모양이 더욱 괴상해졌다. 뒤엉켜서 매듭을 푸는 듯 말을 했다. 할아버지가 알파벳 하나하나를 쫓아가듯 입모양을 천천히 따라가며 듣고, 알아차리고 대화한다.
젊은 여자가 할머니의 거친 머리를 빗질한다. 거울을 비추자 할머니가 강하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밤이다, 창문 안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왔다. 비둘기를 밖으로 내몬다. 할아버지는 창문을 닫았다.
할아버지가 서재에서 젊은 여자와 대화를 한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었고, 젊은 여자는 그걸 받아서 자기 지갑에 넣었다.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았고, 담배를 핀다.
다문 입술사이를 비집고 물병의 빨대를 통해 할머니에게 물을 마시려는 할아버지의 옆얼굴이 보이고, 충혈된 눈의 할머니는 입술을 닫았다. 할아버지가 다시 물을 먹이려 할머니의 입술을 벌린다. 할머니가 마시는척하다가 뿜어버렸고, 물은 옆으로 흐르고 튀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힘없는 손으로 내려쳤다. 할머니는 다시 남은 물을 삼켰고, 할아버지는 놀란 얼굴과 얌전해진 얼굴로 몇 마디를 한다.
그림이 보인다. 어떤 부분들이 잘려있다. 유화이고, 황량해 보인다. 언덕이고 나무 몇 그루가 있다. 바다가 보이고 깎인 절벽도 보인다. 잿빛 바다가 있다.
할아버지는 어디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고, 다른 문을 열자 젊은 여자가 들어온다. 서재에 비둘기 그림의 액자가 있다. 둘은 마주 앉았고 젊은 여자가 호소하는 손짓과 함께 턱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했고, 할아버지는 말을 퍼뜨리듯 손을 좌우려 해치며 말한다. 온몸으로 말하는 할아버지는 운동화를 신고 있다. 상체가 앞으로 뒤로 움직이고 고개가 움직이는데, 젊은 여자가 벌떡 일어났고, 할아버지는 옷깃을 잡으려다가 이내 바로 앉았다.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듯 커피를 보고, 집어 들어 한 모금 마신다. 젊은 여자가 다시 들어왔고, 외투의 단추를 풀며 의자에 앉는다. 할아버지는 마치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본모습처럼 말했다. 젊은 여자는 아까보다 얌전히 눈을 깔고 듣는다. 젊은 여자가 방을 나섰고, 할아버지가 뒤따라 나갔다. 복도의 어둠 속으로 둘은 빨려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젊은 여자가 들어오더니 할머니의 곁에 섰다. 상체를 숙여 할머니의 볼을 만지자, 놀라듯 할머니는 움찔하더니, 튕기듯 몸을 한번 움직였고, 눈은 천장을 향했다. 둘은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 둘을
쳐다본다. 젊은 여자가 창가에서 흐느낀다. 하얀 수건을 꺼내어 얼굴로 가져갔다.
젊은 여자는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말을 하고, 할아버지도 말을 한다.
침대에 누운 할머니와 곁에 할아버지가 웃고, 다정하게 대화를 한다. 흰옷의 할머니와 검은 옷의 할아버지다. 할머니의 손이 할아버지를 덮었고, 덮은 손을 할아버지의 다른 손이 덮었다.
할아버지가 면도를 하다가 밖으로 나온다. 어떤 소리를 들었나 보다. 할머니에게 다가갔고, 할머니의 허리춤에서 어떤 냄새를 확인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말을 한다. 누운 할머니의 목이 굵어졌다 얇아졌다. 움푹 꺼진 눈이 붉고, 코 끝이 눈을 향해 떨었다. 젖은 입인지 마른입인지 모를 것이 작게 움직이고 가슴에서 부족한 숨을 찾는 듯 부풀었다. 할아버지는 계속 뭔가 말했다. 그것은 침묵에서 다른 침묵으로 옮겨지는 대화로 보인다. 할아버지의 손 끝이 떨지 않고 움직인다. 둘의 대화가 오래 이어진다. 할머니의 손을 매만진다. 할아버지의 왼손이 베개를 향하고, 끝을 가볍게 쥐고, 할머니의 얼굴을 향했다. 베개는 할머니의 얼굴을 가렸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모아 베개 위에 올려 두었다. 누른다. 짓 누른다는 게 맞겠다. 할머니의 무릎에 이불이 들썩인다. 창밖의 빛은 그대로지만, 살짝 반짝였다.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는 밖에서 들어온다. 꽃송이가 가득 담긴 쇼핑백이다. 꽃들의 포장을 풀고, 싱크대로 가져가 꽃송이를 하나하나 가위로 해체하듯 잘라낸다.
할아버지는 옷장에서 옷을 고른다.
사다리에 올라 방문의 모서리에 테이프를 붙인다.
테이블 앞에 앉아 편지를 쓴다.
비둘기가 방안에 들어온 것을 보고, 편지를 쓰던 것을 멈춘다. 일어나서 담요를 들었고, 집안의 모든 문을 닫자 어둡다. 불을 켰고 비둘기를 확인했다. 느린 몸으로 비둘기를 잡으려 담요를 던진다. 그 모습은 다정스럽게 보였다. 비둘기는 도망간다. 할아버지는 계속 절룩이며 추격했고, 엉성하게 던져진 담요는 결국 비둘기를 감쌌다. 담요를 한참 움켜쥔 할아버지가 비둘기를 쓰다듬는다. 자장가와 같다.
다시 할아버지는 편지를 쓴다. 무지의 종이다. 세장째 겹쳐진 종이에 잠시 멈추었지만 다시 써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오래된 싱글 침대에 누워있다. 잠시 일어났다가 잡지 못한 균형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다시 일어나 걷는다. 할머니의 설거지하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지나치고, 구두를 갈아 신었다. 할머니가 잠시 스쳐 어딘가로 걸어 들어간다. 다시 나왔고, 할머니는 외투를 입었고, 할아버지가 외투를 입고 따라나섰다. 불을 끈다. 화면이 멈춘다.
빈 공간들의 이곳저곳이 나오고, 문이 열린다.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집에는 많은 방고 문이 있었는데 문이 열려 있었고, 젊은 여자는 밝은 서재의 의자에 앉아 있다.
앉아있는 여자의 뒤꿈치가 올라가 있다.
내가 써 놓은 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본 것들은 무엇이고 새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는 아무르라는 제목의 영화다. 소리 없고 자막 없는 영화를 눈으로 좇으며, 강가에서 본 노부부를 생각한다. 할머니의 까치발이 자꾸만 생각난다. 길을 잃을까 두려운 나의 사고는 그 언저리에서 막혔다. 뒤꿈치를 채우던 빈 공간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집요하게 쫒았다. 노출된 것들에 밀려 볼록 솟아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간격을 위해 발뒤꿈치를 치켰다면, 발바닥보다 커다랗고 말랑한 그것이 있음을 알아야겠다.
우리들은 저마다 그 어딘가를 넘어 그것을 보기 위해 발뒤꿈치를 딛는다. 각자의 삶의 뒤꿈치를 지탱했던 그 무엇을 그들의 강어귀에 두고 싶다. 강가에 이쁘게 흐르는 물에 담근 당신의 발이 기분 좋게 둥둥 뜬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