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만 즐겁지 않아야 한다.

고쳐쓰기

by 밝둡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 인사를 난 너무나 열심히 했기에, 말이 가 쌓일수록 난 학교를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에 몰두했다. 선생님도 집안의 누군가에게 학교 다녀온다고 인사를 한 것일까. 내가 고등학생 즈음에 주변의 모든 것들은 학교로 왔다가 모였다가, 열과 성을 다해서 집으로 갔다. 어느샌가 흩어졌다.


학교 이야기를 꺼낸 건, 배움의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 왼쪽이나 윗쪽에 교과서를 피고, 오른쪽이나 아래쪽에 겹친 노트에 열심히 열심히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 것에 몰두하던 짝궁의 모습을 떠올렸다가, 필통에서 서너 가지 색상의 펜을 꺼내서 요즘의 다이어리 꾸미기의 그것과 닮은 것을 생각했는데, 그놈은 성적은 좋지 않았다. 반면에 나의 노트는 두꺼운 펜을 좋아하던 시절의 노트와 검정색 글씨에 굵직하고 새빨간 펜으로 이미 이해완료한 자의 어른의 선을 그었던 나름 맘에 들었던 몇 페이지도 기억한다. 나는 고등학교땐 공부에 관심은 크게 없었지만 워낙에 중학교 때까지 성적이 좋았던 터라 그것에서 나자빠지지 않을 관성의 힘 정도로 중상위만 유지했다. 필요 없는 설명 부분이라 여긴다. 어쨌건 배움이란 즐겁고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 그것도 아닌가. 배움이란 꼭 즐거움과 조금이라도 어긋나 버린다고 도망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경험상 내가 몇 가지 좀 더 파고들었던 시간은 오기가 발동할 때다.


지금의 글에 그어지는 선들은 일종의 그 오기의 증거들이다. 작년 이월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니, 내가 나를 글쓰기의 광장에 펜하나 뒷주머니에 찔러주고 발로 차버린 거에 가깝다. 그때 지우개를 같이 챙겨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아니, 챙겼다고 해도 난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잠깐은 그때부터의 느낌 그대로 도무지 고쳐쓰기 따위 남자는 하는 거 아니지,라는 맘이 녹은 졸림 덩어리가 만든 귀찮음의 도움을 받아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가겠다.


라고 말했지만, 낮잠을 자고 싶다.


뭐 이런 식이 었다. 이런 식의 글들을 내가 보며 그때의 이해의 점은 내 삶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그렇게 막 써도 글은 글이 되었고, 돈 하나 들지 않고도 글을 쓰면 강바닥에선 소나무가 하루 만에 피기도 했고, 새벽의 하늘에서는 꿈속에서 보았던 고래가 떠다닐 수도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영화에선 누군가 그것을 연기하기 위해 온몸을 꿈틀거리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야 했지만, 나는 단어들을 내 맘대로 바느질하는 것으로 해버린다는 게 즐거웠다. 그러니까 천진난만함이 발동했다. 약 일 년간.


올해는 조금 다르다. 그러니까 올해에 글을 쓰는 나의 마음은 다르다. 조금은 아니고 많이 다르다고 믿고 싶다. 이제 내가 무언가에 미쳐서 파고들 때의 그 오기를 상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몇 가지 방법들이 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비밀스럽게 진행하고 싶다. 지금 살짝 웃음이 나는 이유는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으니까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해 주자면, 이렇다.

무언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건 타인에게서의 나를 향한 기준이 아니다. 그건 스스로 오로지 나를 기준으로서 둔 확인이어야 한다. 혹은, 방법에 있어서 무엇이 더 나을지 궁금하거나 결정을 하기 힘들어할 때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것은 무엇이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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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



역시 그만두겠다. 이건 일단 저작권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오늘의 글제인 고쳐쓰기와 제목은 나에게는 길모퉁이 돌기전에 뒤돌아 바라본 바다와 같다. 내가 머물렀던 공간은 커다란 바다였다. 그건 걸음을 가질 수 없는 발 없는 몸통과 호흡의 아가미가 없던 내가 묵었던 자그만 방이 허락한 한 모금의 소금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별로인지 알았을 때 겨우 조금 변한다는 성장의 조건에 한 꼬집의 짠물이 있다면, 난 이제 모퉁이를 돌아보려 한다.


오늘만큼 글을 너무 쓰기 싫은 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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