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과 금관악기들
https://youtu.be/yJpJ8REjvqo?si=hl2-f43YU-khLqLg
그 음악 선생님께서는 두꺼운 안경을 꼈다. 피부는 잘 관리된 오래된 흰건반처럼 하얗진 않았지만, 윤기가 났었고, 으깨고 남은 샾자리에 있던 검은건반이 얼굴 여기저기에 두 개씩 그리고 세 개씩 있었다. 안경을 통해 보이는 눈동자는 안경의 반대편 세상에서 가끔 궁금할 때 올려다보는 창가를 보는 용도의 것이었다. 그리고 음악이 나올 때에 감긴 눈꺼풀 안에서 신나게 추는 춤을 작은 창가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음악선생님이 피아노에 앉아 오랜 기간 단련해 온 손가락 끝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기 시작을 하면, 두꺼운 음악실의 문은 강하게 빨려들 듯 굳게 한번 더 닫힌다. 금관악기를 불며 내뿜었던 숨결로 희끗한 것들을 남긴 창가에는 새들이 모였다. 그 음악선생님은 한음 한음에 힘을 실었다. 강한 힘에 항복을 한 건반들이 아름다운 소리로 이어진다. 벌렁거리는 콧구멍과 , 씰룩이는 입술과, 박자와 상관없이 면을 뽑아내듯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사이들 사이에 광대뼈가 물렁인다. 안경저편 눈동자들이 감긴 눈에 기대어 볼록 거리거나 아래로 퍼져갔다. 검거나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는 피아노가 그의 손끝과 발끝으로, 안경너머 보이는 보여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헤엄친다. 몇 올 없던 머리카락이 온음표처럼 늘어지다가, 쫒기 힘든 짧은 16분 음표와 만나 사라진다. 그 음악선생님은 그렇게 피아노 연주를 하고, 눈을 뜨지 않은 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말은 꽉 찬 음악실안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어디론가 툭 떨어졌다.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창밖에 모여 있던 새들이 습기를 찾아 떠나간다.
그 음악선생님은 무서움을 발산시키는 무언가 있었기에, 더욱 외로워졌다. 그 아름답고 진지한 연주에 몰입하지 못함을, 눈 속의 댄스가 끝나기를, 학생들은 자신들의 무거운 눈꺼풀을 들며 참아야 했다. 어떤 때는 하나의 수업시간 내내 음악을 들려주곤 했는데, 그는 거의 음악실을 떠돌듯 미끄러지며, 안경 속의 감은눈 속의 댄서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그때 그 정적은 지켜지고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음악 속 불순물들은 허용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잔인하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이다.
그 음악실은 수업이 시작하기 전 아침일찍과 수업이 끝난 후 늦은 오후 항상 가야만 했던, 연습실이기도 했다. 나는 금관악기로 이루어진 학교 밴드부원이기도 했다. 내가 맡은 것은 수자폰이다. 보통 학교 이름을 크게 붙이는 용도처럼 보이지만, 수자폰이야말로 모든 음악 들을 아래서 감싸주는 콘트라베이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난 연습실에서도 맨 뒷자리에서 선배에게 피스로 머리를 한 대씩 맞으며, 모든 이의 뒷모습에서 옆모습들을 본다. 트럼펫 작은 피스에 도톰한 입술을 가져다 댄 통통한 친구의 발갛게 달아오른 눈두덩이와 소리를 위한 호흡으로 삐걱대며 경직되는 굽은 허리를 본다. 금관악기의 아래는 모두 침으로 홍건 하다. 금관악기는 많은 침을 잉태한다. 생각보다 많은 침. 그래서 침냄새는 음악실을 가득 채웠다. 하고 싶던 트럼펫을 부는 친구를 쳐다보다가, 피스로 머리통을 한 대 맞고 정신을 차린다. 붕붕, 거리고, 방방 거리며, 그들의 소리들을 감싼다. 옆을 쳐다보면 트롬본 세 개가 나란히 춤을 춘다. 바로 앞에는 말을 한마디를 안 하는 친구가 맡은 튜바가 있었고, 그 앞에는 하루종일 말을 하는 친구의 클라리넷이 있다. 오른쪽 트롬본 앞에는 알토 소프라노 색소폰의 두 명이 있다. 색소폰은 말대로 섹시하지만, 못할 때야 말로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 앞에 트럼펫. 음. 트럼펫, 뒷줄에는
타악기 아이들이 짝다리를 하고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무언가를 패고 있었다.
그곳 그 선생님이 잠재웠던 공기를 우리들은 아침저녁으로 망가뜨렸다. 맞지 않는 샾과 잘못 내뱉은 숨결로 구석 몰래 숨어있는 두 마디의 멜로디를 헤쳤다. 엉망진창의 힘으로 그의 선생님의 안경안 댄서들의 춤사위를 방해했다. 나는 가끔 트로트 합주 때 아주 신이 났었는데, 이 커다란 몸을 감고 있는 수자폰을 벗어버리고, 반짝이옷을 입어버릴까 싶게 신이 났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닐 다이아몬드의 스윗캐롤라인였는데, 쉬운 곡인만큼 감미롭고 기분 좋음의 경험을 매번 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랬다. 스윗 캐롤라인 합주 중에 좋아하는 부분에서 오른쪽을 쳐다보면 트롬본 세명의 아이들은 살짝 힘들어하는 표정인데, 난 그 표정이 웃기면서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침은 뚝뚝. 그 부분은 그놈들을 쳐다보며 행복한 나만의 시간. 침은 뚝뚝.
밴드부는 1년의 기간으로 해체되었고, 그 선생님도 그 후론 마주치지 못했다. 학교 안을 다니면 마주칠법한대도, 그 음악 선생님은 기가 막힐 정도로 나의 눈을 피해 다니셨나 보다. 노래를 부르는걸 한 번쯤 들어보았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불렀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안경도 한번 벗겨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쳐다보던 그 눈 안의 댄서들. 피아노로 단련된 손가락을 자랑하며 몇 번 누군가의 이마를 딱밤을 때린 적이 있다. 그 장난 같은 광경이 그 선생님의 무서움의 피부에 닿는 장면이었는데, 굉장히 죽을 것같이 아팠다고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했던 말이니 참 믿을만한 말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면,
그 선생님의 피아노치던 모든 순간들에, 우리들의 엉망진창 오전 오후에 불어댔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쏟아진다면 나름 이러한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참 아름다운 곡이다. 저마다의 날아가는 눈물들을 쫓아가는 기분이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그저 추억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