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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하나도 과학적이지 않게 심혈을 기울여서.

by 밝둡

쓰인 글들이 한두 개 늘어나면서, 나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열거하고 몇 가지 정보를 만들어가면서, 적당한 테이블 구성을 하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에는 전문성이 최소화되어 있다. 대부분 감각에 일그러진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게 무엇인지,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변명, 알리바이 없는 순서나 진행으로 툭툭 겨울에 뿌리는 비료같이 제멋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므로 인해 가끔 하는 명상을 하고 난 후의 뿌듯함보다 큰 앎을 얻기 시작했다. 대충 뿌리는 액션페인팅을 하고 나서 억지로 끼워 맞추기는 아니었었는지, 남의 글을 보는 것만큼 나의 글을 다시 한번 보는 것에서부터 오는 나에 대한 앎이 수학문제를 풀지 않고 문제만 되풀이하면서 쓰다가 갑자기 풀어버리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앎이 찾아오기 시작한 거다. 난 내가 사랑했지만 죽어갔던 것들에 대해 글 중간중간에 잠깐씩 부활시키며 글을 이어갔다. 사라진자들이 그들이 묻힌 슬픈 글 위에서 나를 보고 반기며 웃기도 했다. 상황이 나열되면 그때의 얼어있던 슬픔 안에서 위로의 꽃이 그렇게 피어났다. 슬픔들만 나열한다면, 잊기 힘든 슬픔은 어쩔 땐 내게 양식 같은 거일 수도 있었는데, 그 슬픔들을 글 안에 가두니 위로로 내게 보답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기쁨들의 기억들은 웃음과 함께 이미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쨌건 글을 쓰며, 옳지 못한 슬픔을 저 아래서 집어 꺼내어 여기저기 살펴보며, 혹시 내가 잘못 슬퍼하고 있는 곳이 있는지 다시 본다. 오해로 인한 슬픔이 있는지 샅샅이 뒤져본다. 더 슬퍼할 수 있던 것이 있을지도 찾아보고, 남의 슬픔이 껴있을지도 한 손에 칼을 들고 조사한다. 사라진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말없는 등을 다시 살펴본다. 등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을 하기에, 그들의 등이라는 글자를 써보고, 그들의 등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옷들을 벗겨 손끝으로 등의 이야기들을 따라가 본다. 아직 기억에 내가 감당할 만한 그런 장면들을 다시금 새겨 박고서, 나는 그렇게도 다시 돌아보고, 돌아보았나 보다.


난 예민하다. 어떠한 것들이 꽂혀 그 예민함에 발동이 걸리면, 괴롭다. 그러한 괴로움을 몰래몰래 녹여보기로 계획을 짜본다. 덩어리째 쿵 하고 올려놓는다면, 그것은 지켜보기 힘들기에, 나는 조금씩 녹여서 혹시나 이런 식으로 내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내게 스스로 고백을 해본다.


지독한 모놀로그.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어떤 패턴의 일상생활 안에서 나오는 소리의 형태는 나를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괴로움을 준다. 그야말로 그 소리의 근원을 영원히 말소시키고 싶을 정도의 충동이 든다. 이를테면, 컴퓨터로 어떤 글을 키보드의 방향키 네개를 계속 순서대로 누르며 읽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나를 몇 년째 괴롭히고 있다. 좋아. 오늘은 더 자세한 묘사 없이 이 정도만 적어보자. 이 정도의 데이터가 내게 어떤 변화를 줄지 한번 살펴보자.


나는 문을 잠그는 것에 굉장한 강박증세가 있다. 출근길에도, 집 문이 잠겼는지, 네다섯 번 다시 와서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는 때도 있고, 집에서 10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서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좋아, 이것도 여기까지 노출시켜 보자. 나에 대한 실험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뭐 내가 편해진다면, 그 누군가도 편해질 가능성이 있으니. 어쩌면 그들과 상관없이


지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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