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우연은 필연성의 부족함을 말한다. 필연성은 부여잡음을 말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우연은 무게를 덜고, 재밌는 선모양을 나타낸다. 우연은 에피소드로 사용한다. 우연은 놀라움을 동반하며, 침착함도 갖춘다. 당신들과 나의 우연으로 얽히었던 것을 떠올리려면, 보편적이지만 선택적 마음의 고백이 필요하다. 하필 이면이란 말 대신, 신기하게라는 말을 넣을 수가 있다. 웃기게 라는 말대신 재수 없게 라는 말로 채울 수도 있겠다. 우연은 어제에서 골라온 내 취향의 의도된 발현일지도 모른다. 계획적인 마주침을 향한 독립된 것들의 자발적 움직임. 시기를 고르지 못하는 게임에서의 불리한 조건들이 갖는 멋진 뒷걸음이 남기는 춤들. 기대감에서 시작한 우연은, 환호 혹은 그러면 그렇지로 끝난다. 서성거리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우연을 담고 있다. 뚜렷한 목적지를 향한 발끝이 아스팔트 위에 스파크를 남기면, 우연은 겁을 먹는다.
좋은 기억에서 우연을 보기 좋게 잘라내고 나면, 한두 글자로 표현되는 음식의 맛이 된다. 그러면 그 기억은 나의 것과는 상관이 없는 그 어떤 날로 흡수된다. 그리고 그 어떤 날은 우연을 향해, 날 위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어떤 사건을 위해 도사린다. 누군가의 얼굴에서 꽃이 피고, 손 끝에 멍이 든다. 책임감 없는 우연들은 그래서
다양한 해석으로 다시 태어난다. 설명되면 함수 속으로 끌려간다. 과학의 기계에서 갈려진 우연들은 지혜를 만들고, 누군가의 꿈을 키운다. 걸음걸이에 각이 선다. 시야가 뚜렷해지고, 꿈의 강은 얕아진다. 정적이 흐른다. 음악들이 줄줄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희망이 비만에 걸린다. 달력에 고드름이 핀다. 시계탑을 지키던 옛것들의 주인은 흥미를 잃고 자리를 떠난다. 이상함의 속옷이 창가에서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나와 당신과의 만남에 우연이라 생각한 그 순간을 이야기한다. 당신의 뒷모습과 귀여운 걸음걸이를 상상해 본다. 우연의 문 앞으로 향하는 당신을 쫒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