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
최근의 글들이 비슷한 패턴으로 흐르는 걸 느낀다. 만들어진 함수의 변수 하나에 단어하나를 집어넣는 식이라고 할까, 다시 훑어보니 만족감이 떨어진다. 평가의 단계에서 의심이 들지 않는 용기를 자부심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과정은 실패 중이다. 실패를 즐긴다. 실패를 즐기는 건 트로피를 높이 들 힘이 없는 자의 타협된 치사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로피를 갈망하지 않는 자의 실패는 쓰지만 달다. 그 뒤에 밀려오는 미지근한 빛이 즐겁다. 난 그 빛에 중독되어 있다. 그냥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얻어지기도 하는 그 만족이 용기의 부싯돌을 만들었고, 글자로 열심히 문지르고 있다. 생활의 흔적에서 뿌려져 있던 글자를 가지고 부싯돌에 던진다. 깎고 부딪치고 던지던 글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난다. 매일 보는 쓰레기에서 삶이 타오른다. 지겹게 덮었던 이불에서 지혜의 나무가 천장을 찌른다. 실패의 흔적에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살얼음이 보이고, 조심스레 발을 올려본다. 나의 글이 고집의 반복으로 태어난 음악처럼 영원히 울리는 메아리를 피운다. 믿음을 믿었던 소박한 몇 줄의 글에서 동전의 냄새가 났고, 라면봉지 안에서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집밖으로 내몬다. 부싯돌에서 주황색 꽃이 일렁인다. 앉은 자세가 누워지면, 글은 자꾸 내속으로 파고들었다. 상처를 덮었던 살이 열려 그것들을 받아들였고, 복통의 쾌감이 글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냥 걸었던 길의 모퉁이에서 커피 향이 나면 발걸음이 설렌다. 그런 식으로 매일을 걷고 있다. 원래 없던 , 주제넘게 생각했던 찬란한 상자들이 편지가 되어 허물어지는 집 앞 대문에 꽂힌다. 살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살자 라는 두근거림을 몸에 새긴다. 마음의 혼동이 식을무렵 나체의 몸으로 기꺼이 부싯돌에 들이받는다. 버리는 마음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태우고, 훔치는 마음으로 타인의 투명한 눈의 끝을 쫓아간다. 달려가는 기차의 선로가 되어 여행자의 피로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우주가 되어 인류의 모든 사랑에 괴로워해본다. 불꽃처럼 튀기는 죽음들에 혀끝을 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