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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Jun 11. 2021

겸손보다는 책임감으로

팀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주변에 칭찬에 매우 인색한 리더가 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결과물을 가져가도 잘했다는 말은 좀처럼 듣기 어렵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기준이 높고 까다로운 탓도 있지만, 본인만의 철학 때문이다. 사람은 칭찬하면 태만해지고, 갈구고 쪼아야만 실력이 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그는 가지고 있다.

 

칭찬을 잘 못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시니컬한 입으로 자꾸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가 던진 말 중에 가장 황당한 건 이 말이었다.

"너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이 와서 더 잘했을거야. 항상 그런 마음으로 일 하세요."


겸손해라. 그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모질게 하는 이유가 뭘까? 모르긴 몰라도,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뒤통수를 맞았거나, 쥐뿔 실력도 없는 사람이 자기가 다 하겠다고 설치는 꼴을 보느라 고생해서 저러는 걸 거라고 짐작해보지만, 어쨌거나 기분은 나쁘다. 리더는 팀원들을 동기부여하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끔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자기 경험이 어떻든, 철학이 어떻든, 그런 위치에 있는 리더가 자기 생각을 가감없이 뱉어내는 건 문제가 있다. 일단 듣는 순간 기분이 나쁘고, 곱씹을수록 화가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의 말대로 무조건 낮은 자세를 겸비하고, 나같은 쓰레기는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일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어차피 언젠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와서 다 바꿀테니 지금은 대충대충 하는 게 맞을까? 자기가 짱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건 괜찮을까?


세상에는 당연히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많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은 언제나 위험하다.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먼 길을 돌아갈 수도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변의 지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무능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는 밑천이 훤히 보이는데도 알아서 다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 더 한심하다.


반대로 스스로 자신은 무능하고 별 볼일 없는 쭈구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참 별로다. 스스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고 해 나가야 하는 사회에서 매번 자신감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겸손이 아닌 무책임이다. 매사에 위축되어 있고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은 주변 사람들까지도 기운 빠지게 한다. 안팎으로 좋을 게 없다.


가장 최악은 이 둘의 결합이다. 속으로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자신이 부족하다며 겸손을 포장하는 사람, 그 포장된 겸손으로 '부족한 제가 어떻게 그걸 하겠습니까'며 은근슬쩍 일을 다 남에게 미루는 사람이다. (그런 인간이 분명 존재한다!)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든, 쓰레기라고 생각하든, 팩트를 기반으로 해야한다. 주제파악이다. 자기가 뭘 알고 모르는지, 뭘 잘 하고 못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때에 따라서 자신이 책임지고 할 일과 위임할 일을 결정할 수 있다. 주제파악을 하고 나서는 태도의 문제다.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도 그걸 당당하게 알리고 다니는 사람과, 별 다른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고, 별 것 없는 실력을 가지고 주변을 탓하며 불만분자로 살거나, 어떻게든 과대포장하고자 애쓰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부족한 영역은 있게 마련이다. 사실 진짜 고수는,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한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알기에 그는 겸손할 수 밖에 없다. 꾸며낸 겸손이 아닌 진짜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된 겸손이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남에게 미루는 대신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쪽을 택한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자신감이 넘친다.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하면서도 당당하고 솔직하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은 성과 역시 좋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기 때문에 그에게는 언제나 기회가 있다.


그렇다. 반대로 하면된다. 언제나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와서 할 거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부족하니까 더 열심히, 남에게 미루지말고 어떻게든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 스스로의 성과에 책임을 지는 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늘 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더 열심히 하고, 덜 열심히 하고를 결정한다면, 세상 일하기 싫어진다. 이왕 하는 일인데, 남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기분 좋게 말이다.


나는 우리 팀원들에게 겸손하라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라고, 일에 대해서든, 자기 삶에 대해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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