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쓰글방 1기를 마치며
5주간의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계약까지 해두었지만, 아직까지 작가의 삶을 살 준비가 안 된 나는 원고 마감 전까지 안전하게 밟고 지나갈 징검다리가 필요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어떻게든 글이란 걸 쓰게 만들 '마감'과 더불어 함께하는 문우의 힘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더구나 이번 글쓰기 수업은 내가 아는 세상에서 제일 날카롭고 따뜻한 에세이스트, 자옥 작가님 주최였다. 수업은 기대 이상이었다. 너무 좋았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자옥 작가님 말처럼, '좋.았.다'고 말하는 순간 그 좋음이 반감되는 법이니까.
마감의 힘.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 바로 그 주에 새로운 부서장이 왔다. 윗사람이 바뀌니 모든 게 바뀌었다. 새로운 팀의 정체성에 맞게 팀의 일을 재편하고, 새롭게 떨어지는 과제를 쳐내며 정신 사나운 5주를 보냈다. 매주 목요일, 빛의 속도로 돌아오는 마감 기한에 머리를 쥐어 뜯었다. 세 편은 기존에 써 둔 원고를 간신히 다듬어 보냈고, 두 편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파편을 모아서 냈는데 그마저도 기한을 넘겼다. 매 번 죄송해요, 바빴어요를 연발하는 것도 구차했다. 내 돈 내고 내가 하겠다고 해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람.
합평의 매력.
글쓰기 수업의 묘미는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제 3자가 내 글의 첫번째 독자가 되어 오롯이 글로써만 나를 이해하고, 내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나 역시 오롯이 글로써만 나란 사람을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적고 있는 글도 목적은 같지만, '이해하고 공감하리라'는 의도를 가지고 내 글에 집중하는 독자가 있다는 건 훨씬 난이도가 낮다. 나만 보는 일기가 난이도 1이라면, 우호적인 독자가 봐주는 글쓰기는 난이도 2쯤 되려나. 내 글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반드시 한 번 쯤은 거쳐야 되는 훈련이 합평이 아닐까 싶다.
우호적인 독자라도 독자는 독자다. 독자는 정직하다. 잘 읽었다는 피드백에도 뉘앙스가 담긴다. 100% 공감하고 완벽하게 이해한 '잘 읽었음'과, 무언가 불편하고 어려웠는데도 '잘 읽었다고' 말해주는 피드백은 천지차이다. 작가님을 비롯한 한 명 한 명의 피드백을 들으며 여기저기 꼬집힌 내 글을 다시 보는 과정은 정말 불편했지만 소중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어도 최소한 모두를 힘들게 하는 글을 써서는 안 되니까. 내가 쓰면서 꼬였던 부분은 여지없이 독자도 불편해 했다. 과하게 우겨넣은 인용구는 어색하다는 평을 받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 조각을 모아둔 불친절한 글은 다른 이들을 지치게 했다. 합평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묻어두었을 글들이 난도질과 함께 다시 살아날 힘을 얻었다. 이제 소중한 피드백을 기억하며 글을 고쳐내는 작업이 남은 숙제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5주 동안 가장 많이 들은 피드백은 이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얘기잖아.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보면 너만 쓸 수 있는 글이 될텐데.'
그래, 그러니까, 그게 뭐지? 어려웠다. 글의 구성, 표현 방식은 얼마든지 배운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건, 내 이성과 감정, 지식과 경험, 심리, 가치관, 철학, 그러니까 인생 전체를 깊게 사유해야 하는 작업인데. 어쩌지? 초 단위로 허덕이는 삶 속에서 내 인생을 들여다보며 깊이 고찰하는 건 생각만으로도 버겁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한다. 나조차도 잘 모르는 내 생각을 어떻게 독자한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지금까지 글에서 솔직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내 생각과 감정을 담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뭔가 겉도는 느낌이라고, 자꾸 옳은 소리만 하지 말고 한꺼풀 벗겨낸 내 진짜 생각을 써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뭐가 문제일까. 내 생각은 왜 맨날 뻔한 소리가 되는 걸까. 나는 왜 옳은 소리를 내 생각인 양 쓰는 것 밖에 하지 못할까. 진짜 내 생각은 대체 뭘까. 자기계발서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보다고 웃으며 넘겼지만 사실 내 인생이 딱 자기계발서였다. 다들 뻔한 소리라고 질타하는 자기계발서에 나는 항상 진심이었다. 맞아, 이래야지. 이렇게 살아야지 감탄을 연발하며 정말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시간을 쪼개 자기개발을 하고, 좋은 습관을 만들고... 어렸을 때부터 모범생 생활이 편안하고 익숙했던 고지식한 맏딸은 대세를 벗어나는 것보다, 기득권에 저항하는 것보다 늘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쪽을 택했다. 아니, 사실 선택한 적도 없었다. 내게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던 일이니까. 내 인생의 선택지는 처음부터 이것뿐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능동적으로 선택한 것 같았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온 것 뿐이었다. 그 이외의 것들ㅡ충동적인 일탈, 온갖 덕질, 사회문제, 재미만을 위한 취미, 자유여행 같은 것들ㅡ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덕분에 난 아주 효율적으로, 단 한 번도 곁길로 샌 적 없이 38년 간 세상이 인정하는 정규 코스를 밟았다.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그걸 즐겼으니까. 불편했던 적도, 그게 문제라고 여겼던 적도 없었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네 이야기를 해'라는 주문을 받기 전까지는.
마지막 날, 한 문우가 내게 물었다. "왜 책을 쓰려고 하세요?"
초보 팀장이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와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의도가 진실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초보 팀장으로서 왕초보 팀장을 돕고 싶다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글을 쓰며 마음을 다잡았던 그 분투의 과정 또한 꼭 전하고 싶었다. 다만 지난 5주간의 글쓰기를 통해 내가 전하고자 했던 것의 실체가 드러난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워진 것이다.
정석대로 살아온 내 삶이 정답이라 여겼다. 그래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정답을 알고 있으니까. 나처럼 사는 게 맞으니까. 겨우 팀장 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1년차 이하의 초보들에게는 리더십 구루의 말보다 내 이야기가 더 쉽게 가 닿으리라 자신했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내가 쓰려던 글은, 앞서간 리더에게 배울 수 있는 옳은 소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오랜 경험치에서 우러난 통찰력을 싹 걷어내고, 그 자리를 초보 팀장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얄팍한 지식으로 채우려 했다는 걸 깨달았다. 초보 팀장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면서도, 초보라서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교만하다. 이런 글을 돈 주고 사서 읽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외면하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건 이번 글쓰기 수업의 최대 수확이다. 첫 번째 징검다리 치고는 꽤나 성공적이다. 원고 다 쓰고나서 깨달았다면 얼마나 난감했을지.
그러니까 5주간의 글쓰기 수업은 내게 이런 시간이었다.
글을 쓰는 진짜 이유를 찾는 시간, 나와 글 사이, 내 글과 독자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발견하는 시간, 불편하지만 진짜 나와 마주하라는 잔소리를 귀가 닳도록 듣는 시간, 그 작업이 기대 이상으로 혹독했고, 한없이 감사했던 시간.
정석대로만 살아온 내 삶에 아직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했다. 아예 그지같으면 뜯어 고치든지 포기하든지 할텐데.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무언가를 통째로 흔드는 게 어쩌면 제일 어려운 일 아닐까. 하지만 반드시 해야한다는 걸 안다. 작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해야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아주 조금씩, 삶이라는 걸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여정을 이제부터 해나가면 되니까. 5주 글쓰기를 다섯 번 정도, 아니 열 번 정도 하고 나면 조금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 자기 안에 솟구치는 그것에 대해 알아채는 감각, 자기 욕망과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감성적 역량, 세상을 읽어나가는 지식과 시선 등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중에서
다음주부터 2기 모집합니다. 옥쓰글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