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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Jul 07. 2021

덩어리 일은 잘게 쪼개기

기업문화팀이 일하는 법

기업문화팀의 팀장으로 일하다보면 가끔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기업문화가 중요한 건 알겠고, 좋은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건 맞는데, 도대체 어떤 기업문화가 좋은 문화인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우리 팀 안에서부터라도 그 생각의 결을 맞추고, 우선순위를 정해주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기업문화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무형의 '가치'를 놓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아무리 외친들, 저마다 머릿속에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전부 다르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이렇게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걸 붙잡고 지지고 볶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수학처럼 딱 떨어지거나 바로바로 결과물이 나오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온갖 좋은 말과 이상적인 계획들이 난무하는 종합 보고서를 만든다든지, 목표와 비전, 가치와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잘 견디지 못한다. 백지 상태에서 뭔가를 그려내야 하고, '전략' 내지는 '기획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언제나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고, 누구나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성과를 요구한다. 세상에서 제일 추상적일지도 모르는 '좋은 기업문화'라는 개념을 회사의 목표와 전략에 부합하는 결과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게 우리의 과제다. 


'직원 몰입도 향상'이라는 굵직한 과제를 부여받은 한 팀원이,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달 단위, 짧게는 일주일, 아니 하루 단위로도 매출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는 부서에서 일을 하다가, 최근에 기업문화팀으로 와서 직원 전체의 몰입도를 높이는 거대한 과제를 떠안게 되니 어쩔 줄 모르겠는 모양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과연 이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인지, 한다면 1년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도무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회사의 전 직원이 자기 일과 조직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한명의 머리로 뚝딱 해결될 일이었다면 과제로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일은 아주 커다랗고 추상적인, 그래서 도무지 실체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덩어리다. 그 상태로는 아무리 들여다본들 어떤 모양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보는 방향에 따라, 입장에 따라 전부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 어떤 이는 직원의 몰입도가 워라밸에서 나온다고 하고, 어떤 이는 높은 연봉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아마도 경영진은 회사의 성장 가능성, 즉 비전이야말로 직원 몰입도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말할 것이다. 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영업사원과 스탭 직원의 동기부여 요인이 다 같을까? 팀장과 팀원은? 여성과 남성은? A본부와 B본부는? 이 모든 걸 한 덩어리에 집어넣고 이쪽 저쪽을 아무리 부지런히 살펴봐도 결론이 안 난다. 설사 문제점들을 파악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어렵다. 직원 전체의 몰입도를 높이려면 어느 하나만 개선해서는 안 되고, 이 모든 문제들이 전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13과목 시험을 보고나서 평균 점수를 올리려면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가와 비슷하다. 각 과목의 점수와 오답을 모른 채, 평균 점수를 올리려고 하면 절대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각각의 과목 하나하나의 점수를 들여다보고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야, 당장 해야 할 과제가 나온다. 무조건 평균 점수를 높이는 것도 사실 잘못되었다. 과학고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수학, 과학 성적을,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영어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일을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할 일은, '덩어리를 잘게 쪼개는 것'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이곳 저곳을 살피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회사의 방향성에 따라 제일 중요한 하나의 대상을 정하고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직원 전체의 몰입도 향상'이 아니라, 'A본부의 대리 이하 영업사원들의 몰입도를 50% 높인다'는 구체적인 타겟과 목표를 정하고, 그 본부의 영업 직군만 집중적으로 분석해보는 것이다. 설문조사도 하고, FGI 조사도 하고, 실제 영업 현장에 동행해서 관찰도 하고, 현장에서 접수한 고충들을 모아서 분석하는 등 인풋을 집중한다. 그 다음단계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 1,2,3을 정해 기한을 정해두고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면 컨설팅을 받거나 유관부서와 논의를 거쳐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받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스템인데 홍보가 안 되었다고 판단되면 교육이나 홍보자료를 만들어 전파하면 된다. 해야 하는 과제가 명확해지만 거기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그 다음 할 일이다. 이것 역시 잘게 쪼개야만 가능하다. 모든 걸 다 해내기에는 시간, 인력, 예산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다. 


말처럼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래놓고 막상 잘게 쪼개서 '이것만 하겠습니다' 하면, '이것도 하고, 그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할지도 모른다. 일을 축소하고 한정짓는 게 민망해서,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라고 포장하는 느낌도 든다. 아직 실체가 없는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선택하고, 자원을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모든 걸 다 하려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팀원들이 나가 떨어진다. 나는 죽어라고 달렸는데 마치 바닷가의 모래알을 세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애매모호한 성과물로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열의 넘치고 능력있는 사람들도 오래 버티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 팀원들을 바라보는 나 역시 지칠테고 말이다.


팀원을 다독이며 이야기했지만, 나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기업문화를 좋게 만드는 일, 그 어마무시한 일을 짊어지고 아무리 머리 아프게 고민한들, 그만두는 직원은 계속 생겨나고, 익명 게시판에는 계속 회사를 욕하는 글이 올라온다. 그때마다 스트레스 받으며 어떻게 이 모든 걸 해결하고 완벽한 기업문화를 만들까 고민하는 것은 그야말로 바닷가의 모래알을 세는 것과 같다. 고민한다고 될 일도 아니며, 야심차게 시작한다 해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을 것이다. 명확한 실체가 없고 광범위한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덩어리를 통째로 집어삼키겠다는 무모한 열정을 잠시 내려놓고 최대한 세세하게 쪼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대한 덩어리를 손에 잡힐만 한 작은 조각으로 나눈 다음에는,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쳐다보고, 당장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추상적인 일을 하는 '기업문화팀'이 지치지 않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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