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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Jul 05. 2021

팀원을 보내는 자세 두번째이야기

레퍼런스 만들기


팀원의 보직 이동. 요 며칠 계속 이게 화두다. 팀장으로서 처음 팀원을 다른 팀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보니, 좀처럼 쉽게 정리가 안 되고, 머리가 아프다. 아마 그 친구가 떠나고 남은 이들과 다시 업무 분장을 하고, 그 친구가 없는 회의를 몇 번 거듭하고, 남은 팀원들에게서 버겁다는 투정을 몇 차례 듣다보면 서서히 적응되지 않을까. 그 때까지는 아마 계속 하루하루가 고민의 연속일 것이다.  


일을 제일 많이 해야하는 중간 직급 팀원의 공백을 감수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 아픈데 전혀 예상치 못한, 그래서 더 당황스러운 숙제가 자꾸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가기 싫어할 줄 알았던 팀원이 너무 신이 났다. (그게 너무 티가 난다)

2.남아서 그의 일을 도맡아야 하는 다른 팀원들이 황당해한다.

3.아직 옮기는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벌써 간 사람처럼 행동한다.(자리를 오래 비운다던지) 

4.시킨 일도 다 안 해놓고 일찍 퇴근 해버린다.


이게 어려운 숙제인 이유는, 철저하게 내 감정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적인 부분이라면 차라리 괜찮다. 일은 빨리 나눠서 하면 되고, 제대로 안 하면 똑바로 하라고 시키면 된다. 문제는 내 마음이 이미, 그러고 싶지조차 않다는 것이다. 팀장의 입장에서 내 팀원이 어떻게든 다른 팀으로 빨리 가고 싶어 안달이 난 걸 보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그 동안 이 팀원을 위해 고민하고 애썼던 게 다 헛짓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나름대로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고, 그만큼 아쉬움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표현하고 지적하지 않은 데 대한 후회도 밀려왔다. 유치하지만 본전 생각이 났다. 어차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감없이 할 말 하고, 일도 왕창 시키고, 똑바로 좀 하라고 소리나 질러볼 걸.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거 기분 좋게, 잘 마무리 했으면 했다. 최소한 자기가 책임지고 있던 부분은 가기 전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해주길 바랬다. 그건 전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퇴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는 부서 간 이동인데, 마무리를 똑바로 안 해놓고 떠나는 건 스스로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본인도 그걸 모를리가 없을텐데 지금 곧 떠날 사람이라는 걸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고 괘씸하다. 


친한 선배한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했더니,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그 친구가 갈 부서에 그 친구의 부족한 면을 시시콜콜 알리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평판에 기스를 내는 것이다. 그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부서 입장에서는 새로 올 팀원에 대해 알고 싶은 건 당연하고, 가장 쉬운 방법은 전임 팀장인 나에게 레퍼런스를 체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주알 고주알 말 할 필요도 없다. 방법은 간단하다. 굳이 그의 장점을 찾아 언급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 친구 어때요?"

"음, 글쎄요.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좋은 얘기를 별로 할 게 없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물론 나쁜 쪽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번 생겨난 부정적인 생각은 무서운 선입견이 되어 뇌리에 박힌다. 그 팀원이 뭔가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 선입견은 기정사실이 되고, 그렇게 강화된 부정적인 평판은 그가 왠만큼 잘 하지 않는 이상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참 잔인한 일이다. 말 한마디, 눈짓 하나로 한 순간에 바보로 만들 수 있다니. 사실이 아닌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의적으로 좋은 말은 쏙 빼고 나쁜 점만 얘기하는 것은 인간성의 문제겠지만, 어쨌거나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노력은 본인 스스로가 해야 한다. 평소에 잘 해왔다 하더라도 이렇게 보직을 옮기거나 퇴사하는 시점에 본인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않거나, 무책임하게 행동하면 좋은 레퍼런스를 얻기 어렵다. 사람은 장점보다 단점에 더 민감하며, 좋은 점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쁜 점은 훨씬 더 또렷이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말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건 그런데.. 과연 그게 옳을까? 굳이 떠나는 팀원에 대해 별로라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는 게 맞을까? 아주 잠깐 고소할 수는 있겠지만, 내게 과연 그게 도움이 될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그것일까? 


처음 팀장이 되어 좌충우돌 하는 나와 그래도 지금까지 반년간 호흡을 맞춰온 첫 팀원이다. 내겐 한명 한명이 다 소중하다. 단 하루를 데리고 있더라도 내 식구다. 가끔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대해 왔고, 그건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팀원의 부서 이동을 결정한 것도 그 이유였다. 그의 성장을 위해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팀에 가서도 욕 먹지 않고 잘 해주길 바랐다. 비록 마무리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봤자 겨우 일주일 상간의 일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팀에 간다고 마음이 들뜨는 것 역시 아주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요 며칠의 괘씸한 행동때문에 그 간의 실망스러웠던 모습을 모두 되새김질하여 좋지 않은 레퍼런스를 만들어내는 건, 팀원을 진심으로 위했던 내 그동안의 내 노력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오히려 반대로 하면 어떨까? 우리 팀원이 이동할 새로운 부서의 팀장에게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특히 무엇을 잘 하고, 어떤 일에 적임자인지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좋은 얘기를 들으면 기대치가 높아진다. 그만큼 그 친구가 잘 해야한다는 소리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하면 그만큼 성장할 것이고, 거기서도 똑같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그에 부응하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전적으로 팀원 자신의 몫이다. 굳이 기스를 내기 위해 나설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팀장으로서 그의 성장을 도울 뿐이다. 


자, 그럼 이미 상해버린 내 감정은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당사자에게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제 남은 일주일 동안 어떤 일을 반드시 해주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무엇을 신경 써주었으면 하는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들뜬 시간이겠지만, 남은 팀원들에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야 할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변함없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 일상에서는 감정의 요동과 혼란은 적을수록 좋다. 내가 할 일은 최대한 빨리 내 감정을 추스리고, 팀원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다. 떠나는 팀원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런 대화 자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말이다.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전임 팀장이 내게 팀원 한명 한명에 대해 말해주었던 때가 생각난다. 좋은 얘기는 거의 없었다. 이 친구는 이게 부족하고 저 친구는 저게 좀 아쉽고.. 그 말을 들은 후, 한명 한명에 대해 선입견을 씻어내고 오롯이 믿어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팀장이 팀원들을 흉봤던 이유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또는 그 팀원들의 부족한 면을 알림으로써 내가 앞으로 그들의 성장을 도와주기를 당부하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런 부족한 이들을 데리고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약간 비약이긴 하지만, 팀원이 일을 못하면, 결국 그 팀장이 제대로 키워주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내가 데리고 있던 팀원의 평판에 흠집을 내는 것은 결국 팀장 자신에게도 같은 흠집을 내는 것과 같다. 누워서 침 뱉기란 얘기다.  


헤어질 때 잘 해야 하는 건 팀원 뿐만이 아니다. 팀장도 지혜가 필요하다. 팀원의 성장을 진심으로 원하는 리더,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 독려할 수 있는 리더, 자기가 좀 힘들더라도 팀원에게 새로운 기회를 찾아주는 리더, 그런 리더가 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헤어짐의 순간은 그런 면에서 아주 초특급 고난도의 특수 훈련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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