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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Jul 25. 2021

회사가 팔렸을 때, 두번째 이야기

위기와 기회

영원불멸할 것 같던 우리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마주한 직원으로서, 회사도,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의식의 흐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글을 지난 주에 썼었다. 사측도 노측도 아닌, '나측' 입장에서, 혼란스러운 시국에 나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을 찾아나서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회사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노력도 모두 나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해야만 한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회사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분노하는 것도, 이런 상황을 이용해 뭔가 새로운 자리가 생기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모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회사는 회사의 길을 갈 것이며, 그 속에서 나의 감정을 추스리고 내가 가야할 길을 찾는 건 내 몫이다. 그게 바로 사측도, 노측도 아닌, '나를 위한' 마음자세다. 


오늘은 그 다음 얘기다. 감정적인 요동이 조금 잠잠해지고, 회사의 의도와 배경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구조조정 얘기로 계속 뒤숭숭할 것이고, 경영진이 바뀌느니, 누구누구 임원이 짤리느니, 살생부에 누가 올라가니 등등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그 상황 속에서 자리가 없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무성한 헛소문을 안주 삼아 허송세월을 보내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빨리 정신차리고 각자 자기의 길을 찾아야 한다. 


창업주가 오너로서 이끌어가는 1세대 기업은 안정적이다. 정주영 시대, 이병철 시대가 그랬듯이. 창업주의 철학과 성향에 따라 회사의 방향성이 결정되고 조직문화가 정착된다. 무엇보다 경영 실적이 좀 저조하더라도 사람들을 대거 내보내지는 않는다. 성장과 정체, 위기의 극복의 과정에서 '창업주'라는 큰 기둥이 흔들리지 않는 한 잔잔바리 파도는 있더라도 거대한 쓰나미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오너가 바뀌는 시점이 되면, 그 뒤를 잇는 사람이 자식이든, 제 3자든, 아니면 다른 회사든, 많은 것들이 새롭게 정비된다. 경영진과 주요 임원진이 교체되고, 주요 전략이 바뀌며, 조직문화도 변한다. 조직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사람들이 다시 세팅된다.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는, 말 그대로 리셋이다. 이제는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최고경영진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다시금 출발선 상에 서야 한다. 잘 나갔던 사람이든, 쭈구리로 있던 사람이든, 모두 다 똑같은 조건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기회로, 누군가에게는 위기로 다가올 것이다. 


이 때를 틈타 새로운 라인에 편승하기 위해 쉼없이 눈알을 굴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존에 잘 나가던 라인은 이제 끝이라며, 앞으로 실세가 될 새로운 라인에 매끄럽게 올라타는 것을 곧 기회로 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직장이란 결국 그런 거라고, 이래서 정치를 잘 해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어쩌면 현실적인 조언 같지만 그건 기회와 위기를 오로지 '잘리느냐 안 잘리느냐'라는 한 가지 잣대로만 보는 이분법적인 생각이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생각에 반대한다. 


첫째는 '라인'이라는 것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잘 나가는 라인에 딱 붙어있는 게 마치 주체적인 나의 결정인 것 같지만, 그건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이유와 그 결과에 대한 열쇠를 남에게 쥐어주는 것이다. 그 라인이 잘리면 나도 같이 잘린다. 그것도 내가 전혀 예측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 의해서 말이다. 그건 정치라기보단 도박에 가깝다. 

둘째는 위기와 기회를 나누는 잣대가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회사에 무조건 오래 남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이번 기회에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더 좋은 회사로 스카웃되서 가는 게 더 기회 아닌가? 이제 곧 무너질 위기에 처한 회사에 오래도록 주구장창 남아있어 같이 침몰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기 아닌가? 위기냐 기회냐에 대한 판단은, 먼저 내 수준을 잘 파악하고, 회사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실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변화하는 모든 것이 위기고, 계속 자신의 실력을 키우며 몸값을 올려 온 사람은 모든 것이 다 기회다. 지금까지 해왔던 기존 판에서 벗어나, 새롭게 내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 새로운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 내 일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설사 내 미래를 생각했을 때 이 곳이 더 이상 이상적인 일터가 아닌 경우라 하더라도 오히려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 기회다.


불확실성은 누구나 힘들다. 기존 판을 바꾸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새로운 기회를 잡는 것조차 사실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필요 없이 주변의 상황이 통째로 바뀌는 건 어떤 면에서는 감사한 일이다. 변화가 없다면, 성장도 없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의 쓰나미가 몰려왔을 때, 그 쓰나미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릴 것이다. 아무 대책없이 떠밀려가는 사람과 이 거대한 파도를 기회삼아 새로운 길을 만드는 사람의 미래는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임원이든, 평사원이든, 모든 이에게 기회는 똑같이 주어졌다. 이 상황이 불편하다고, 미래가 불안하다고 투덜거리는 사이에, 기회는 순식간에 위기로 바뀔 것이다. 빨리 정신차리는 사람이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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