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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Jul 20. 2021

회사가 팔렸을 때, 첫번째 이야기

사측, 노측, 그리고 나

직원의 입장에서, 회사가 매각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1. 우릴 버린 오너를 욕한다.

2. 그 동안 애사심을 가지고 충성했던 게 허무하다며 좌절한다.

3.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냐며 답 안나오는 술잔을 기울인다.

4. 빨리 다른 회사를 알아본다.

내가 여지껏 몸 담고 열심히 일했던 우리 회사의 주인이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가지 착잡한 마음과 일종의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채, 나의 역할을 담담하게 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회사의 입장에서 직원들과 소통해야 하는 사측이면서 동시에, 직원들의 의견을 접수해 경영진에게 전하는 노측이다. 이런 시국에 박쥐처럼 왔다갔다 해야 하는 역할이 버겁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아직 완전히 이해가 안 된 사안에 대해서 괜찮다고, 다 잘될거라고 말하는 게 싫었다. 나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그냥 회사의 결정을 받아들이라니, 그렇다고 오너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 직원들이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는 걸 일일이 전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갑자기 이런 결정을 한 회사도 못마땅하고, 그에 대해 이를 갈며 회사를 욕하는 직원들도 답답했다. 역할 갈등과 인지부조화 속에서 부대끼며 한 이틀 끙끙 앓았다. 다행스럽게도 회사는 부도 위기에 헐값에 팔아치운 상황이 아니라, 강력한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를 통해 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방편으로 매각을 결정했다. 이는 평생을 지독하리만큼 회사의 성장 하나만을 위해 바쳐온 오너의, 자기 자신과 회사를 위한 마지막 결정이기도 했다. 이는 내부의 기밀이 아니라 기사에서도 이미 다룬 얘기고, 지금까지의 오너의 경영 방식과 그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분 답다'고 고개를 끄덕일만큼의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시점이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그것 역시, 바깥에서는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부를만큼 적절했다.

문제는, 정보의 불균형이다. 제공되는 정보가 다른 게 아님에도 받아들이는 정보는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우리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똑같은 사건을 호재라고 환영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돈독 오른 오너의 배신이라고 욕한다. 어떤 이들은 상속세 폭탄을 만든 악랄한 정부가 기업을 다 망가뜨린다고 개탄하고, 어떤 이들은 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두 기업의 합작품이라고 칭찬한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전부 다 맞는 말이다. 다만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서 하나의 단면이 부각되고,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내 생각과 감정이 좌우된다. 어떤 정보를 취사선택할 것인가는 철저하게 내 몫이라는 얘기다.

회사에 몸 담고 있는 직원으로서, 처음 회사가 팔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부터 '회사가 비싸게 팔렸다니 그것 참 잘되었군!'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다. 당연히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우리 회사가 망한건가, 오너가 우릴 버린건가, 지금까지 한 게 그럼 다 무용지물 되는건가,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처음 다가오는 감정을 억지로 부정하고 막을 필요는 없다. 그 자체도 소중한 내 감정이다. 지금까지 열심을 다 했던 회사라면 더더욱, 그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다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혼란의 파도가 좀 잠잠해지면, 이제는 정보를 수집할 차례다. 이 때 어떤 정보를 알아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내 태도가 결정된다. 회사를 믿고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사의 입장 표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런 결정을 한 이유에 대해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잘 된 케이스를 찾아보기도 한다. 회사가 직원을 팔아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조조정과 매각위로금, M&A로 인해 망한 사례들을 들여다보며 계속 회사의 결정에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회사 아니라 그 누구도, 달래주기 어렵다. 스스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계속 이해가 안 된다며 화를 낸다면, 어떻게 해줄 재간이 없지 않겠는가. 정보를 모으는 건 이해하기 위해서다. 지금 이 상황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이해하고, 이 결정이 내게 미칠 영향을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는 먼저 '이해를 해보겠다'는 마인드 세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단 머리로 이해를 하고 나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그 다음이다. 물론 사람마다 시차가 있다.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이 있고, 이해가 되면 마음도 금방 풀리는 사람도 있다. 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기존에 쌓아왔던 회사에 대한 신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회사가 직원들을 괴롭히려고 이런 결정을 한 게 아니라는 걸 믿는 사람은, 이유와 배경, 앞으로의 행보를 이해하고 나면 그만큼 마음도 금방 추스릴 수 있다. 믿지 못한다면 그만큼 오래 걸릴 것이다. 직원들이 공감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만큼 회사도 손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떠나는 이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빨리 이해할 수 있게, 그리고 공감할 수 있게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회사의 역할이다.

감정을 추스리고 나면 할 일이 보인다. 지금처럼 묵묵히 할 일을 하든, 뭔가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라인에 편승을 하든, 아니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회사를 떠나든. 그런데 이 모든 건 세 단계의 흐름을 거친 후여야 한다. 그저 감정적으로 분노하며 회사를 떠나거나, 무조건 새로운 라인에 편승하려 눈치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충분히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충분히 정보를 모으고 공부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후회없는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혼란스러운 감정의 파도를 지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이를 수용하고 나의 할 일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얼마나 빨리 거치느냐가 성숙함의 척도인 것 같다. 나도 아직 멀었다. 어떤 건 이해되고, 어떤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 내가 회사를 이해해야 직원들을 이해시킬 수 있고, 직원들의 입장에서 감정의 파도를 타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참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더 빨리 성장하리라 기대해본다.

넌 사측이냐, 노측이냐 소리를 많이 듣는다. 내 입장은 분명하다. 나는 나측이다. 나는 나를 위해 일한다. 내 회사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 일 만큼은 편안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고 싶을 뿐이다. 회사의 지분을 사고 파는 건 내 소관이 아니지만, 내 심신의 안정을 찾고, 앞으로 어떻게 일할지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그 결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은 회사를 위해서도, 직원들을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팀원들도, 우리 열심히 일해 온 동료 직원들도, 그런 마음으로 힘을 내주면 좋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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