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의 Jul 28. 2021

내일부터 험담 금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 나를 위해서

며칠 전 일이다. "소식 들었어? OO 그만두었대."

몇 년 전 같은 팀에 근무하면서 정말 나를 힘들게 했던 후배 직원의 퇴사 소식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 멍청한 애가 오래 버텼다, 그런 애를 일 잘 한다고 데리고 온 팀장은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메신저에 습관적으로 다다다다 적던 중 문득 생각이 났다. '맞다, 나 이러지 않기로 했지.'  

쓰려던 말을 다 지우고 한 마디만 겨우 남겼다. '잘 됐네.'

심드렁하게 반응하자 상대방도 머쓱했는지, '그러게.'하고 대화는 종료되었다. 


바로 오늘 아침 일이다.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가요. 아니 그런 사람을 회사는 왜 다 받아주는 거죠?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친한 선배한테 신나게 동료 흉을 봤더니 선배가 말했다.
"그러게, 우리 회사 너무한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이렇게 맥 빠지게 해도 되는거니.."

아차 싶었다. 선배를 맥 빠지게 한 건 회사가 아니라 나였다. 괜히 열심히 기분 좋게 일하고 있던 선배의 에너지를 빨대 꽂아 들이마신 느낌이었다. 너무 미안했다.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최근 글을 쓰면서 내면이 많이 정화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밴 습관을 뿌리 채 뽑아 내기란 참 쉽지 않다. 아직도 나라는 인간은 블랙홀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나보다. 누군가를 흉보고 욕할 때면 아무리 피곤해도 금새 혈기가 왕성해진다. 아직 멀었다.


친한 동료들과의 수다는 늘 즐겁다. 그 중에서도 험담이 가장 재밌다. 이상한 동료를 흉보고, 무능한 팀장을 욕하면 시간이 금방 간다. 왠지 엔돌핀이 솟아나는 것도 같다. 그런데 대화가 끝나고 나면 뭔가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고, 그런 이상한 인간들에 둘러싸여 있는 나만 제일 불쌍해지는 느낌. 무엇보다 험담을 늘어놓으면 늘어놓을수록, 거기에 매몰되어 간다.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그냥 일단 누군가를, 무언가를 험담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지 않으면 어색한 수준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 불꽃튀는 에너지가 열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불꽃은 점점 내 에너지를 전부 태워버렸다. 같이 열을 올리며 회사를 욕했던 동료들도 하나 둘 멀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블랙홀이 되어 있었다. 나 자신의 에너지 뿐 아니라 주변 이들의 건강한 에너지까지도 잡아먹는 블랙홀이었다.


독설은 무지의 산물이라고 했다. 잘 모르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해,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해, 상황에 대한 원인, 배경, 진행사항, 계획을 속속들이 알면 화가 나지 않는다. 화를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눈으로 보면,오히려 개선할 점을 찾아 제시할 수도 있다. 그조차도 불필요한 경우에는 무시하면 될 일이다. 일단 그런 이성적인 사고 자체가 성숙함의 척도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아무렇게나 느끼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말로 쏟아내 주변을 오염시키는 1차원적인 수준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블랙홀은, 적당히 반만 걸쳐있는 게 불가능하다. 빠져나오려면 완전히 멀어져야 한다. 아주 잠깐 발가락만 담궈도 금방 풍덩 빠지고 만다. 험담의 블랙홀 역시 그렇다. 누굴 욕하고 흉보면서 건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주고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좋은 말로 우아하고 고상하게 욕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아니 어떻게 좋은 말만 하고 사느냐고? 순수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자의적인 판단으로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험담은 악의가 담긴 말이다. 부정적인 말로 순식간에 검은 파장을 만들어 내는 블랙홀의 에너지다. 그래서 완전한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의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아마 쉽지는 않겠지만 또다시 다짐해본다. 내일부터 험담 금지!  

작가의 이전글 회사가 팔렸을 때, 두번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