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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Aug 22. 2021

상반기 평가를 마치며

초보팀장의 생애 첫 평가시즌

약간은 버거웠던 상반기 평가 시즌이 끝났다. 팀장으로서 처음 팀원들의 반기 성과를 평가해 등급을 매기고, 부서장과 팀원들에게 '다면평가'라는 이름의 리더십 역량 평가를 받았다. 둘 다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 동안 나름 잘한다 칭찬하고 다 같이 잘 해보자 독려하며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좋은 평가를, 누군가는 낮은 평가를 줄 수 밖에 없었다. 다면평가 역시, 나는 좋은 팀장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더라도 팀원들이 느끼기에 부족했다면 그만이다. 그저 내 마음과 노력을 그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수 밖에.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평가'라는 걸 해 본 것 같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의 만족도 평가를 제외하고는. 초중고 대학때까지 줄곧 점수로 성적을 평가받고, 직장에 들어올때도 자기소개서와 면접으로 평가받았으며, 그 이후로는 반기마다 내가 만들어 낸 업적에 대해 상사가 매긴 등급으로 지금까지 월급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랬던 내가 얼떨결에 팀장이 되어 이제는 팀원들의 연봉과 승진을, 어쩌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평가의 주체가 되다니. 끔찍이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전부 다 열심히 일하고, 성격도 착할 뿐 아니라 매우 똑똑한 친구들이다. 내가 그들을 평가할 자격이 될까. 

부담의 또 다른 이름은 욕심이다. 아끼는 팀원들에게 전부 좋은 평가를 주고싶은 욕심, 솔직히 말하면, 좋은 평가를 줌으로써 나 역시 좋은 팀장으로 평가받고 싶은, 어쩌면 당연한 그 욕심 때문에 그렇게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 욕심은 누구나 있겠지만 그걸 1도 내려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게 초짜 팀장의 한계다. 실제로 많은 선배들이 평가 몇 번 하고 나면 팀장 생활도 금방 적응될거라고 했다. 그 적응이란, 팀원들의 성격보다 성과에 더 예민해지고, 최대한 정을 떼는 것을 말한다. 동아리 회장이 아닌 조직에서 성과를 책임지는 직책자로서,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되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잔인한 훈련이 바로 '평가'라는 것, 그래서 팀장이란 직책이 그만큼 어려운 거라는 걸 조금은 실감했다.

쉽든 어렵든 이미 나는 팀장이 되었고, 어김없이 평가 시즌은 다가왔으며, 역시 예상대로 모두에게 A를 줄 수는 없었다. 평가시스템상 월 단위로 목표 대비 진도 상황을 체크하게끔 되어있고, 나름 초심을 발휘해 진행했던 1:1 미팅에서 팀원들과 수시로 이야기를 나눈 덕분인지 모두 겉으로는 결과에 수긍하며 하반기에 더 열심히 하겠노라고 약속해주었다. 물론 평가가 낮았던 팀원은 당연히 섭섭했을테지만.   

'평가 피드백'까지 개별적으로 마친 후에야 비로소 인사평가 시즌이 종료된다. 그런데 의외로 피드백을 따로 하지 않는 팀장들이 많다. 나 역시 팀원 시절에 평가 피드백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딱히 할 말이 없고 부담스러워서 그런가보다 하고 당시에는 넘어갔지만, 사실 그건 팀장으로서 명백한 직무유기다. 열심히 일 한 사람이라면 응당 좋은 평가와 함께 칭찬과 격려의 피드백을, 어떤 사정에 의해 좋은 평가를 주지 못했을 때는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열심히 하지 않은 직원이라면 낮은 점수를 받은 이유와 개선할 점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어야 발전이 있을 것이다. 혹여라도 열심히 하지 않은 직원이 좋은 점수를 받았다면, 그로 인해 다른 팀원들이 의욕을 잃고 조직을 떠나지 않도록 적절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라도 피드백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없다. 어쩌면 평가 결과 그 자체보다도, 왜 그렇게 평가를 주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팀장은 평가를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팀원을 통해 팀의 성과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한 배를 탄 선장이라면 개별 선원을 일방적으로 평가만 할 게 아니라, 팀 전체의 상황이 어떻고 지금 어떤 부분이 잘 되고 있으며 잘 안 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한명 한명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며, 각각의 영역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평소에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대부분 평가에 대한 불만은, 내 성과에 대한 평가 그 자체보다도, 다른 직원에 비해 못한 게 없어보이는데 더 낮은 점수를 받을 때 생겨난다. 어떤 팀은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서로서로의 업적에 대해 공유하고 상호간에 평가하는 자리를 갖기도 한다. 나는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지만, 가장 클리어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공명정대한 방법인 것 같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상대평가 제도인 이상 평가 자체만으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긴 글렀다. 그렇다고 실제 아웃풋과 상관없이 돌아가며 두루두루 A를 배분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무조건 팀원들과 인간적인 정을 떼고 일과 성과로만 대하는 것도 나는 별로다. 평가 시즌에만 바짝 긴장해서 안 하던 면담을 하느라 애쓰는 건 피차 민망한 일이다. 결국 팀장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팀원을 통해 팀의 성과를 만드는 팀장의 역할 말이다. 평가 역시 그 일환이어야 한다. 평가를 평가 기간에만 한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한결 부담이 덜할 것 같다. 평소 팀원들이 스스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회사의 평가 또한 납득할 수 있도록 평소에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다. 굳이 정을 뗄 필요도, 모두에게 A를 줄 필요도 없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팀장이 할 일을 그저 하는 것이 정답이다. 생애 첫 평가 시즌을 마치며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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