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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Aug 23. 2021

팀장다운 팀장

나에게 하는 피드백

팀장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평가시즌의 피날레는 팀장 다면평가였다. 다면평가는 내 리더십 역량에 대해 내 상사(부서장)과 팀원들에게 위아래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상당히 공포스럽다. 공부한 내용을 시험으로 평가받는 것도, 열심히 일한 성과를 윗사람에게 평가받는 것도,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예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뭔가 내가 노력한 데 대한 직접적인 업적 평가가 아닌, 내 인품과 행동에 대한 평가 같은 느낌이랄까. 매일매일 살 부대끼는 팀원들이 그동안 속으로 날 어떻게 생각했었나에 대한 반증이니 긴장될 수 밖에 없다. 


천만 다행히 종합 결과는 나쁘지 않았고, 처음이라 의욕이 넘쳐 이것저것 노력한 데 대해 팀원들이 곱게(?) 평가해 준 것같아 고마웠다. 그 와중에도 물론 점수가 낮은 항목이 있고, 두어 달 전의 평가 시점과  지금은 또 상황과 일이 많이 바뀐지라 안심할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계속 더 나아지지 않으면 정체된다. 초심의 힘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부분은 변질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고, 부족하다고 평가 받은 부분은 발전시켜야만 한다. 평가의 진정한 의미는 거기에 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피드백을 해보려고 한다. 잘 한점은? 아쉬운 점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처음 기업문화팀을 맡으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우리팀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그 부분을 위해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했고, 팀원들과 워크샵도 두 차례나 했다. 명확한 그림이 그려져야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내 성격 탓에, 팀원들에게도 그 명확한 그림을 그려주는 데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팀의 전략과 우선과제를 정하고 공유하는 것과, 팀의 성과를 위해 필요한 업무 환경을 조성한다는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또 1:1 미팅의 시간을 가지며 팀원들의 업무와 개인적인 어려움 등을 수시로 들으려고 했던 부분, 각자 당면한 장애요인을 바로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같이 고민했던 부분도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한편 도전적인 업무를 부여하고 다양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부분에서는 약했나보다. 아직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팀원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조금 리스크가 있더라도 획기적으로 업무를 바꾸거나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데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부하직원의 업무에 통제나 간섭을 많이 한다', '중요한 결정을 상사나 타인의 몫으로 미룬다'는 부분도 다른 항목에 비해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이 부분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평가한 '자기평가' 점수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면서도 잘 안 된다는 얘기다. 


종합하자면, 나는 아직 실무자의 티를 완전히 벗지 못했다. 명확한 업무 지시를 좋아하는 본래 내 성향 덕분에 팀원들에게도 명확하게 비전과 전략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업무 하나하나에 대해 직접 손을 대야 직성이 풀리고, 정작 크고 어려운 결정은 부서장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게 영 팀장답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팀장 옷을 입었다고 해서 곧바로 팀장으로 거듭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제까지 직접 발로 뛰며 실무를 했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팀원들에게 척척 일을 시키며 큰 방향을 결정하는 게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탈피하지 못한 뱀은 죽는다고 했다. 팀장이 되었으면 팀장답게 행동해야 한다. 실무를 잘 모르는 팀장은 무능한 팀장이지만, 실무만 하는 팀장은 팀장이 아니다. 


습관이 참 무섭다. 이러한 평가결과를 받아들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결재 문서를 하나 들고 재무팀으로 가려다 순간 멈칫했다. 기안을 올린 사람은 우리 팀 과장이었으니 그 친구가 직접 가면 될 일이었다. 그 동안 특별한 이유나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내가 뛰어왔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는 권위부리지 않고 직접 열심히 일하는 게 좋아보일 수 있지만, 경계가 없어지면 모두가 힘들다. 시킬 일은 명확히 시키고 일단 맡겼으면 어느 정도 권한도 위임해야 한다. 일일이 직접 챙기면 딱 내가 챙길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만 얻을 수 있다. 팀원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는 것 역시 기대할 수 없다. 팀장은 팀원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하고 그건 당연히 나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크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좀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결정이 어려운 건 윗사람에게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조차도 더 빨리 여쭤보고 결정을 받던가, 왠만하면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몸을 사리는 건 도전을 포기하는 일이다. 나부터 몸을 사리면서 팀원들에게 도전과 열정을 기대하긴 어렵다. 솔선수범이란 일을 나서서 내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팀장으로서 해야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의사결정하는 데에 좀 더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팀 전체의 에너지를 업 시키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그것이다.


팀원들의 피드백이 충분히 이해되고 지금 이 정도도 나쁘지 않지만, 열심히 평가를 해 준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나아져야 한다. 우리 팀의 역할을 명확하게 하고, 팀원들의 업무에 대한 가이드와 피드백을 수시로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자칫하면 지나친 간섭과 통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도전적인 일이라도 팀원들을 진심으로 믿고 맡기는 리더, 큰 그림을 보고 빠르게 결정하는 리더로 오늘부터 조금 달라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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