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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Aug 26. 2021

수직문화와 수평문화

MZ세대가 원하는 조직문화


직장인들의 익명 게시판중에 '블라인드(BLIND)'라는 게 있다. 회사 메일로 인증하고 가입하기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들끼리만 떠들 수 있다. 완전히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거침이 없다. 회사 욕, 경영진 욕은 물론 회사에서 하는 각종 행사나 컨텐츠에 대한 욕도 넘쳐난다. 기업문화팀 입장에서는 폭파시켜버리고 싶은 앱이다. (진심ㅎㅎ)


사실 거기서 떠드는 이야기들 역시 하나의 여론이고, 의견이다. 회사에 따로 익명게시판이 없으니, 거기서 오가는 댓글들을 보며 요즘 젊은 친구들, 소위 MZ세대의 주 관심사나 생각을 파악할 수 있기도 하다. 댓글, 대댓글로 자기들끼리 싸우는 걸 보고 있으면 재밌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지 놀랍기도 하다. 때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열올리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어쨌거나 블라인드 역시 소통의 장이다. 의견이 오고가고, 감정이 오고가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최근에 재밌는 게 하나 올라왔다. 정확히는 옮겨적을 수 없지만 내용은, '팀장이 자기가 지시하는 걸 했냐고 묻는게 팀원으로서 기분 나쁘다'는 거였다. 기분 나쁘다는 포인트는 '지시'라는 단어였다. 요즘 세상에서 팀장이 뭔데 지시를 하냐는 거였다. 재밌는 건 댓글 반응이었다. '팀장이 지시를 하지 그럼 부탁을 하냐, 팀장이 왜 팀장인 것 같냐,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면 니가 팀장 해라...' 대충 이런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그 댓글을 쓰는 이들이 다 팀장들인가 싶었다. 블라인드 들여다보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들이 아닌데.. 그러다 이 글을 보고나니 이해가 되었다. 


직장인들을 위한 컨텐츠를 소개하는 '퍼블리'에 게재된, MZ세대와 일하는 법에 대한 글이다. 일부를 옮겨본다. 


많은 분들이 MZ세대는 수평적인 걸 좋아하고 소통을 좋아하기 때문에, MZ세대와 수직적인 조직구조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그런데 미래의 기업문화를 상상해보면, 투명하고 건조한 조직문화를 위해 '계층형 조직구조'가 선명한 조직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MZ세대가 이러한 조직문화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MZ세대 근로자는 소위 말하는 '가족 같은 회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회사에 '주인 의식(ownership)'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MZ세대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딱 하나, '회사가 나에게 월급을 줬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일한 만큼 인정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회사의 일이 가치 있기 때문에, 나는 회사의 일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일에 '참여(involve)'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고요.   
다시 말하면 그 어느 세대보다 MZ세대에게 '회사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직적인 계층형 조직구조에 오히려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쩌면 MZ세대에게는 당연한 인식이기도 합니다. 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은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많은 일을 하니까요. 나에게 맞는 책임을 다해 일을 잘하면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고, 승진한 다음에는 또 해당 직급에 맞는 연봉과 업무를 하게 되겠죠. 
- '퍼블리'에 게재된 포럼M 아티클 중에서 - 잡플래닛 COO : MZ세대와 함께 잘 일할 수 있는 기업 문화는 없을까?



MZ세대는 가족같은 회사를 원하지도 않고, 주인의식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건조하고 수직적인 조직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는 내용이다. MZ세대는 무조건 수평적인 문화를 원할 거라고 오해(?)하고 있었는데, 정말 신선했다. 그리고 이해가 되었다. 여긴 회사고, 조직에서 직책을 가진 사람이 일을 지시하는 게 무엇이 잘못된 거냐는 합리적인 논쟁은 MZ세대니까 오히려 가능하다는 것을. 아마도 그 글을 본 팀장들은 오히려, '혹시 내 얘긴가?' 하며 바짝 쫄았거나, '요즘 것들'이라고 욕만 하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나 역시 그 중 하나 ㅎㅎ) 


조직문화계에서 아주 핫한 '배달의 민족'에서 수직 문화와 수평 문화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한 표현이 있다. 바로 '실행은 수직적, 문화는 수평적'이라는 말이다. 이것 역시 퍼블리의 같은 아티클에 소개되었다.  


우아한형제들이 공개한 '일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 에 관한 한겨레 기사

2018.06.24 


성과를 내기 위한 업무의 실행은 수직적으로 잘 정렬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며, 서로서로 의견을 나누고 유연하게 소통해야 할 때는 수평적인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 너무 맞는 말이다. 일을 해야 하는데 상사가 팀원들에게 하나하나 할까 말까를 물어가며 의사결정을 미룬다거나, 팀원들이 상사가 지시하는 일에 전부 수평적인 자세로 따지고 든다면 과연 일이 진행이 될까. 그렇다고 말단 사원들은 입도 뻥긋할 수 없는 강압적이고 경직된 문화 역시 발전이 없을 것이다. 업무 실행은 수직적,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는 수평적이어야 한다. 우아한 형제들은 표현도 참으로 우아하다. 


무조건 윗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부조리한 일들도 무조건 따르거나, 일 못하고 멍청해도 말만 잘 들으면 승승장구하던 시대는 이제 지난 것 같다. 그렇다고 위아래 없이 모두가 똑같이 대우받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 직급을 없애고 모두를 매니저로 칭하거나 영어 이름을 부르는 회사도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의사결정을 하고, 누군가는 돈을 받고 주어진 일을 한다. 요즘 세대가 원하는 조직문화는, '일 하는 곳'으로서의 직장의 속성에 충실한, 클리어하고 질서정연한 문화다. 그들이 말하는 수직적 문화란 무조건적인 상명하달이 아니라 위계질서가 명확하고, 성과에 따라 확실하게 평가/보상하는 문화다. 그리고 수평적인 문화란 모두가 대등하게 편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이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뀐 게 아니라, 수직, 수평의 정의가 달라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수직이냐 수평이냐, 기성세대냐 MZ세대냐로 자꾸 편을 가르면 갈등이 생긴다. 수직적 문화와 수평적 문화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감투만 쓰려 하지 말고 직책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조직생활에서 엉뚱한 존중을 요구하기보다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라는 건 합리적인 MZ세대에게 배워야 할 교훈이다. 


블라인드도 열심히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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