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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Aug 28. 2021

회사가 팔렸을 때, 세번째 이야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회사가 매각된다는 소식을 들은지 한 달 반이 지났다. 본격적인 매각 절차의 일환으로 실사가 진행중이며, 약 한 달 후에는 모든 게 확정되어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예정이다. 아직까지 새 주인이 누가 될지,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좋건 싫건 이제는 모두가 변화해야만 한다. '변화는 좋지만, 변화당하는 건 싫다'는 말이 있다. 남에 의해 강요당하는 변화는 누구나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변화에 동참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 시점에 경영진이 할 일이자, 기업문화팀의 숙제다. 


처음 회사의 오너가 은퇴를 선언하고 지분을 매각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직원들은 하나같이 허망함을 금치못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회사를 천년만년 이끌어줄 것 같았던 창업주가 냉큼 회사를 팔아넘겼다는 생각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마치 배의 선장이 갑자기 배를 버리고 도망간 느낌, 회사와 함께 임직원인 우리도 같이 팔린 듯한 느낌이랄까.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잽싸게 인재 사냥을 시작한 경쟁사의 움직임도 한 몫 했다.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직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경영진이 내보낸 메시지는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오너가 바뀐다고 해도 우리의 방향성과 전략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구조조정 역시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니 직원들은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역할에만 매진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변화가 시작된 지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는 그닥 효과적이지 못하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데 기존과 똑같을 리가 없다는 걸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오히려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더 절망적이라는 시니컬한 목소리도 나온다. 맞는 말이다. 변하는 건 없을테니 안심하라는 말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는 말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변화란 무엇인가?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진화'다. 그대로 머물러 정체되어있거나 뒤로 후퇴하는 것이 아닌, 시대에 발맞춰 버전 2.0, 3.0으로 지속 발전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진화를 위해서는 무조건 다 뒤집어 엎는 게 아니라,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수십년 간 이어져 내려온 핵심가치, 그 중에서도 고객 중심 경영, 탁월한 도전과 같이 지금까지 회사를 성장시켜온 원동력은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업의 본질,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가 북극성으로 바라보고 달려왔던 '비전' 역시 갑자기 달라질 수 없다. 창업때부터 이어온 경영 철학과 업의 본질이 나무의 뿌리라면, 비전은 우리가 맺어야 할 결실, 즉 열매다. 사과나무를 심으면 사과가 열리듯이, 회사의 뿌리가 통째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 역시 변하지 않는다. 


단단한 뿌리로 잘 버티기만 해도 때가 되면 열매가 열릴텐데 왜 변화해야 하는가? 그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시장 환경도 변하고 고객의 트렌드도 변하며, 내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인식도 변한다. 나라의 정책도 변하고, 세계의 정세도 변한다. 점점 빨라지고, 급격해지며, 불확실한 변화를 온몸으로 견뎌내기 위해서는 튼튼한 뿌리와 더불어 환경에 최적화된 줄기와 잎이 필요하다. 환경의 변화에 맞게 진화하며 크고 맛있는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와, 앙상한 줄기로 환경이 바뀔때마다 비실비실하게 버티다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의 가치는 천지차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결국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역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목표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기도 하고, 필요하면 사람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일하는 방식이다. 경영진은 의사결정 방식을, 직원들은 각자의 업무 방식을 시대에 맞게 지속적으로 개선, 발전시켜야 한다. 


변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약간은 반 강제적인 외부요인이 기회가 된다. 경영 일선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관여하고 직접 결정해 왔던 오너의 은퇴 선언은, 든든한 구심점이 사라지는 불안함과 동시에 변화의 자유를 주었다. 실제로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과 관리자들은 진정한 리더십과 책임감을 발휘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의사결정, 효율 중심의 조직 운영, 관습, 관행보다는 실질적인 가치 상승에 중점을 두는 PEF(사모펀드)가 우리 회사의 최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한다는 것 역시 체질 개선의 좋은 기회다. 조금은 방만하게 운영되어 왔던 모든 자원과역량을 실제적인 성과를 위해 집중할 수도 있고, 말로는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기득권의 이익이나 관습에 의해 뒤로 밀렸던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조금 냉정하지만, 무능하고 충성스러운 고인 물들이 물갈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아주 불편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타의에 의한 변화는 우리 안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한, 어떻게 해서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관성의 힘에 의해 좀처럼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경영체제로의 전환과, 변화하지 않으려는 내부의 힘이 충돌할 때 회사는 위태로워진다. 비전의 열매는 커녕 뿌리까지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의든 타의든 변화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을 때, 자발적으로 변화에 동참할 수 있으려면 경영진의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가장 크게 변화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경영진부터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변화를 실천할 때 직원들도 변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우리의 본질적인 가치를 모두의 뇌리에 단단히 되새기고, 새롭게 진화하기 위해 반드시 개선하고 정비해야 할 것들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것이 지금 시점에서, 더 늦기 전에 회사가 준비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뿌리와 줄기, 잎과 열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완전체로서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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