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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Sep 18. 2021

어른을 어른답게 대하기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직원들과 싸우지 말자고요


회사가 직원들을 어른으로 대할 때, 직원들도 어른으로서 행동한다.
[파워풀] - 패티 맥코드


재택근무 50%에 백신을 맞으러 가는 20~30대가 많아지면서 사무실이 텅 비었다. 간혹가다 나오는 사무실 내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의 자가격리도 한 몫 한다. 위드(with)코로나라고 하지만 아직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사무실 풍경이다. 아직도 바로 눈 앞에 있어야 대화가 편하고, 바로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일을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없으니 왠지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각자 집에서 뭔가를 하고는 있겠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하는 팀장의 입장에선 불안하다. 실제로 결과가 어떤지와 상관없이, 뭔가가 잘 되고 있는건지 안 되고 있는건지 모르겠는 답답함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episode 1.

월초에 재택근무 일정을 취합해놓고는, 정작 재택하는 날이 되자 팀장이 자연스럽게 한 마디 던진다.

"내일 다 나올거지?"

"..."

다들 이게 뭔가 싶지만 딱히 재택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그렇게 어영부영 사무실에 전부 나와서 앉아있다. (그러다 갑자기 확진자가 나와서 전원 코를 쑤시러 간다)



episode 2.

팀장이 오전에 백신을 맞고, 오후에 출근을 했다. 괜찮으시냐 했더니 쿨하게 한 마디 한다.

"이 정도는 뭐."

거기까진 괜찮았다.


팀 막내가 백신휴가를 이틀치 올렸다.

"야, 젊은 애가 그거 맞고 이틀씩 쉬냐. 나도 괜찮았는데."

"젊을수록 아프대요."

"..."


episode 3.

팀원이 백신 휴가를 쓰고 아침부터 자리에 없자 팀장이 묻는다.

"얘 오후에 맞는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왜 아침부터 없는거야!?"

"..."




팀장이 딱히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니다. 그는 그냥 팀원이 눈에 안 보이는 게 싫은 것 뿐이다. 재택을 해야하지만 하지 말라는 압박, 백신 휴가가 공식적으로 이틀이 주어지지만 이틀 다 쉬지는 말라는 압박은, 개인의 안전과 건강도 (물론) 중요하지만, 회사 일을 더 우선해주었으면 하는 무언의 강요다. 나 때는 그렇게 했으니, 팀의 성과가 팀장인 나한테는 중요하니, 팀원들도 그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팀원들은 당연히 이게 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린가 할 것이다. 그리고 억울할 것이다. 누가 일을 안한댔냐고요...!



다행히 내 얘기는 아니다. 나는 재택근무를 아주 권장한다. 처음에는 어수선하지만 계속 하다보면 가장 효율적인 자기만의 방식을 찾게 되어있다. 백신휴가도 힘들면 힘든 만큼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고 힘든데 억지로 나와서 책상 앞에 앉아있는다고 일이 될리가 없다. 무엇보다 에너지 낭비다. 왜 다른 사람들은 다 재택하는데 나만 나와서 일해야 하지, 백신 휴가가 분명히 이틀인데 왜 나는 이틀을 쉬지 못하는거지, 저 팀은 저런데 우리 팀은 왜 이렇지, 다른 회사는 이런데 우리 회사는 왜 이렇지.. 이런 생각을 하느라 에너지가 자꾸 사방으로 흩어진다. 성과를 내는 데에 초집중되어도 모자른데 말이다. 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정작 해야할 일은, 팀원들을 눈에 보이는 곳에 앉혀두는 게 아니라, 팀의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게 잘 관리하는 것이 아닐까?



기업문화계의 글로벌 선두로 알려져있는 '넷플릭스'에 별도의 휴가 제도가 없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휴가 제도가 없어도 직원들은 알아서 자기 일을 하며, 꼭 필요할 때 리더에게 말하고 알아서 쉰다. 직원 개개인이 자기 일과 자기 시간에 책임을 질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휴가를 제도화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 일과 시간에 책임을 진다는 것, 그것은 그들이 어른이라는 증거다. 그리고 회사는 직원들을 어른으로, 어른답게 대한다.


아마도 리더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어른답게 굴어야 어른으로 대해주죠!'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소개한 책 [파워풀]에서는, 무엇이 먼저인가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회사가 직원들을 어른으로 대할 때, 직원들도 어른으로서 행동한다.'


직원들이 어른이라서 어른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직원들을 어른으로 대할 때, 직원들이 어른으로서의 행동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어른인 게 먼저가 아니다. 회사가 먼저다.


집에서 놀 거라고 자꾸 의심하면 진짜 놀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믿어주지도 않는데 열심히 하기란 쉽지 않다. 하더라도 억지로 억지로 한다. 억지로 움직이는 동력은 금방 힘을 잃는다.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먼저 그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어른임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다. 신뢰는 믿음이다. 눈에 뻔히 보여야만 믿는 건 신뢰가 아니다. 보이지 않아도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 것, 자기 시간과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직원들이 주체적으로, 알아서 잘 해주길 바란다면, 먼저 믿어야 한다. 그게 어른다운 리더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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