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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Dec 15. 2021

'괜찮았다'는 말

 초보팀장의 일희일비

12월, 팀원들과 올 해의 마지막 1:1 미팅을 하는 중이다. 연 마무리와 내년도 사업계획과 당장 오늘 해야 할 일들과 온갖 회의로, 정말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로 바쁘지만(립밤 바를 시간이 없음) 그래도 절대 빼먹지 않고 해야하는 그 것. 팀원과의 대화시간이다. 

한 달에 한 번, 이 루틴을 꾸준히 지키면서 느낀 건, 이 시간은 팀원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시간은 철저히 팀장을 위한 시간이다. 팀원의 고민을 들으며 지금 우리 팀의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 내 리더십을 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마구 휘청이던 내 정신줄을 부여잡는 시간이다. 이 선물같은 시간을 바쁘다고 스킵하면 될 일인가. 

오늘도 그랬다. 함께 간단히 점심을 먹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슬쩍 물었다. 올 한해 어땠냐고. 팀원은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대답했다. "네, 올 한해 괜찮았어요!"

이 말을 듣는데 나는 왜 온 몸에 전율이 올랐을까? 팀원의 한 해가 괜찮았던 말던 나와 무슨 상관인가? 설마 그게 내 덕분이라고 생각하는건가? 

의식의 흐름대로 적자면, 팀원의 '괜찮았다'는 그 말은 팀장인 내가 그래도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그 생각에 기뻤다. 사실 뭐 굳이 시시콜콜 별로였다고 말하기도 귀찮아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진심이라고 믿어본다. '좋았어요'라는 말보다도 '괜찮았어요'라는 말은 왠지 진짜같다. 그래도 한 해가 괜찮으려면 하루에 8시간씩 머무는 회사 생활이 나쁘지는 않아야 할텐데, 그럼 나.. 잘 한건가? 

나름대로 이 친구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아주고,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하고, 더 잘 해보자고 이런 방법, 저런 방법 고민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괜찮았다니. 정말 다행이다. 설사 회사 일이 괜찮았던 게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서의 만족이었다 해도, 그 조차도 기쁘다. 나와 함께 한 첫 팀원이, 한 해동안 너무 힘들었고 괴로웠다고 답하는 것 보단, 괜찮았다는 대답이 백 번 나으니까. 

사실 뭔가를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는데, 묻고 보니 그렇다. 나는 사실 너무너무 궁금했던거다. 팀원들은 나와 함께 한 일년이 어땠을까, 나는 과연 잘 한걸까, 나름 노력했던 것들을 이들이 알아주기는 할까, 나 때문에 힘들었으면 어쩌지... 이런 것들이 말이다. 순수하게 궁금하다면 거짓말이다. 너무 불안하고 겁난다. 내 첫 팀장 생활을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함께 했을까.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다들 나쁘진 않았다고 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다 같이 웃으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을테니까. 그래도 일단 한 명은 괜찮았다니 한시름 놓았다. 

오늘도 선물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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