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데이트하기로 한 날이었다. 결혼하고 처음이다. 미술관과 식당 예약은 물론 회사에 연차도 냈다. 한 달 전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 엄마는 아이처럼 들떴었다. 너랑 미술관을 가다니, 세상에, 세상에나 하면서. 하필이면 그날 아침 외할머니가 양성 반응이 나오실 게 뭐람. 순간 걱정보다 원망이 먼저 밀려왔다. 할머니의 증상과 상태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다 말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그냥 가자.
그래도, 마음이..
집에 있으면 더 우울해. 그냥 가자 엄마. 이따 봐요.
...그래, 알았어..
시청역에서 만난 엄마 얼굴은 생각보다 밝았다. 이왕 나온 거 신나게 보내자며 비싼 점심을 먹고 덕수궁 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팔짱을 꼭 끼고 걸으며 엄마는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 연신 감탄했다. 사방이 탁 트인 덕수궁에서는 칼바람에 눈이 시렸다. 너무 추워서 빨리 들어가고만 싶은데 엄마는 자꾸 거기 나무 밑에, 거기 돌 옆에, 저기도, 여기도 서보라고 했다. 덕수궁 구석구석을 수십 장의 사진에 담고서야 미술관에 들어섰다.
박수근 전.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길래 누군지도 모른 채 예약한 전시다. 50년대에 활동했던 박수근은 거친 질감과 어두운 색채로 당시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화가라는 것도 그 날 알았다. 전시는 참 좋았다. 화려한 기교로 멋부린 예술이 아닌, 주변의 것들을 재료삼아 삶을 예술로, 예술을 삶으로 살아낸 작가의 무덤덤한 인생이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혼자 조용히 감성에 좀 젖어보려는데 자꾸 엄마가 옆에 와서 속삭였다.
이 그림 참 좋다. 그치?
이 그림이 마지막 작품이래.
이건 뭘 그린걸까?
와,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
나도 이렇게 그리고 싶은데..
엄마의 방해 공작에 살짝 짜증을 느낄 때 즈음, 마지막 말이 귀에 박혔다. 엄마도 그리고 싶다고? 그림을 그저 '좋다'고 보는 게 아니라 '나도 이렇게 그리고 싶다'고 보는 엄마의 눈은 왠지 슬펐다. 박수근이 어린 시절 밀레의 그림을 보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는 전시장 벽의 글자와 엄마의 중얼거림이 겹쳐왔다.
애써 쿨하게 대답했다.
엄마도 그리면 되지. 지금부터 배우자. 내가 알아볼까요?
아니야 됐어. 언제 배우니.
엄마 그러다가 나중에 할머니되서 그때 할 걸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배워요.
그래, 생각해볼게..
엄마답지 않은 자신없는 목소리가 낯설다. 나이 50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상담사가 된 엄마다. 석사는 물론 1급 자격증도 여러 개다. 학교에서 상담 선생님으로 계시다 몇 년 전 정년 퇴임을 했다. 내가 아는 엄마는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유독 그림 앞에서 엄마는 작아진다. 꽤 오래 전부터 엄마는 그림 얘기를 했었다. 물을 많이 섞어 그리는 수채화가 좋다고, 작은 캔버스에 풍경을 그려 벽에 걸고 싶다고. 동양화를 잘 그리셨던 할아버지 얘기도 많이 했다. 그 때 배워둘 걸. 한 점이라도 따라해 볼 걸. 지금이라도 배우시라고 하면, 글쎄.. 하며 말 끝을 흐린다. 상담은 일이지만 그림은 사치라고 여겨서일까. 그저 이제는 새로운 시작이 두려운 나이가 되신 걸까. 혹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아픔이 있는걸까.
유난히도 무뚝뚝하게 그려낸 박수근의 단발머리 소녀를 엄마는 오래도록 바라본다. 당시 소녀들의 애환을 이해할 리 없는 나는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에 더 신경이 쓰인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단발머리 소녀 시절, 맏딸로서 감당해야 했던 무거운 짐들과 흘려보낸 작은 꿈을 떠올릴까. 아이들 키우느라 좀처럼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던 젊은 날을 한탄하고 있을까. 육십 다섯에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는 화가의 붓자국에 좌절한 걸까. 그럼에도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 나도'를 되뇌이며 식은 열정을 데우는 중일까.
아빠의 돈과 아빠의 젊음과 아빠의 꿈을 배불리 먹고 자란 내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도 보고 일본에서 온천도 할 동안 아빠는 줄곧 나이만 먹어왔다.
아빠가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 오십 년.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빠의 한 평생이 담긴 시간이었다.
김버금 [당신의 사전] 중에서
엄마 꿈은 엄마 것이니까 알아서 하시라고 던져둔 채 난 내 젊음을 불사르느라 바빴다. 내 일과 내 꿈, 내 아이들을 챙기는 사이 엄마는 점점 나이가 들었다. 나이가 든다고 하고 싶은 게 사라지는 것도, 순수한 열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뭐 하나를 새로이 시작할 때 젊은 사람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할 뿐. 더 쉽게 고갈되고, 좀처럼 빨리 충전되지 않는 엄마의 에너지를 외면한 채 빨리 학원 알아보시라고, 왜 맨날 하고 싶다는 말만 하냐고 채근했던 나는 이기적인 딸이었다. 그저 좀 더 자주 엄마랑 만나고, 새로운 것들과 예쁜 작품을 같이 구경했다면, 알아보시라는 말 대신 내가 직접 핸드폰을 두드려 근처 학원을 찾아봤더라면, 근사한 수채도구라도 한 벌 선물했더라면, 엄마는 사그라들었던 열정을 다시금 불태워 지금쯤 멋진 화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시려나.
붐비는 지하철 역. 오늘 너무 좋았다고, 고맙다고 연신 손을 붙잡는 엄마와 헤어지고 돌아선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이미 뒤돌아 서있던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든다. 나도 있는 힘껏 손을 흔든다. 미안함을 담아, 다짐을 담아, 사랑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