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균열
[세 줄 요약]
2020년 여름, 시장은 유동성의 힘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민재의 자산은 300만 원을 돌파한다. 두 사람은 시장에 대한 토론을 나누며 부쩍 가까워지지만, 유나의 친구 세라와 민재의 친구 준호는 각자의 시선으로 둘의 관계를 걱정한다. 유나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을 느낀 민재는, 더 큰 성공을 향한 의지를 다진다.
SCENE #1 두 달 후. 2020년 5월. 민재의 고시원 방
시간이 흘러 캠퍼스에 여름의 초입을 알리는 신록이 우거질 무렵, 금융 시장은 광란의 파티를 시작했다. 연준이 헬리콥터에서 뿌린 달러는 전 세계 자산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KOSPI는 V자 반등을 넘어 연일 최고점을 향해 달려갔고, 사람들은 주식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증권사 앞에 줄을 섰다. ‘동학 개미 운동’이라는 신조어가 뉴스를 장식했다.
그리고 그 광기의 최전선에 비트코인이 있었다.
“미쳤다… 야, 강민재. 너 진짜 신내림 받은 거 아니냐?”
민재의 고시원 방, 그의 유일한 친구인 공시생 이준호가 민재의 노트북 화면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면 속 민재의 계좌 잔고는 선명하게 ‘3,124,500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익률 +524.9%. 50만 원이 두 달 만에 300만 원을 넘어선 것이다.
“신내림이 아니라 논리라고 했지.”
민재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를 숨기지는 못했다.
“논리 같은 소리 하네. 야, 이걸로 뭐 할 건데? 당장 이 방부터 빼는 거냐?”
준호의 눈은 부러움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근데 너… 요즘 그 경영학과 최유나랑 계속 연락한다며? 소문 다 났어. 조심해라, 진짜. 걔는 너랑 사는 세계가 달라. 걔한테 300만 원은 그냥 가방 하나 값도 안 될걸.”
준호의 현실적인 말이 민재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300만 원. 민재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만져보는 거금이었지만, 그녀의 세계에서는 다른 의미일 터였다.
SCENE #2 같은 날 오후. 청담동 어느 카페
“그래서, 아직도 그 남자랑 연락한다고?”
유나의 베스트 프렌드 김세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H로고가 적힌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며 말을 이었다.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맨날 무슨 경제 뉴스만 보고 있고. 너답지 않게.”
“재밌어.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
유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빨대를 휘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스마트폰 채팅창 목록 최상단에는 ‘강민재’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같이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재미? 유나야, 정신 차려. 그 남자애, 소문 들어보니까 엄청 어렵게 산다며. 너랑은 그냥 사는 물이 달라. 한태민 선배 같은 사람을 만나야지. 너네 엄마가 아시면 기절초풍하실 일이야.”
“엄마 얘기는 꺼내지도 마.”
유나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세라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근데 네가 상처받을까 봐 그러지. 너 지금 그거 호기심이야. 연애 감정 아니라고. 근데 그러다 진짜 다치면 어떡해?”
유나는 대답 대신 채팅창을 열었다.
[유나: 오늘 시장 미쳤나 봐. 나스닥 선물 오르는 것 좀 봐.]
[민재: 아직 시작도 안 한 거야. 유동성이 이렇게 풀렸는데, 고작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
[유나: 그럼 우리 가설, 아직 유효한 거지?]
[민재: 당연하지. 이건 단기 트레이딩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는 거니까.]
이런 대화를 나눌 때, 유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세라나 태민 선배와는 나눌 수 없는,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에 대한 이야기. 그녀는 이 지적인 유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SCENE #3 그날 밤. 두 사람의 통화
“그래서, 다음 스텝은 뭔데? 계속 오르기만 할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유나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흥분이 가득했다. 민재는 고시원 침대에 누워, 천장의 얼룩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 분명히 조정은 와. 과열된 시장은 언제나 작은 충격에도 무너지기 쉬우니까. 중요한 건 그때, 공포를 이겨내고 더 살 수 있는 용기야.”
“그때가 언젠데?”
“아직 아니야. 대중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너나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평생 투자 같은 거 안 해본 우리 옆집 아저씨, 식당 아주머니까지 비트코인을 외칠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신호야.”
그의 냉철한 분석에 유나는 감탄했다.
“와… 너 진짜 책 한 권 써도 되겠다. 나중에 네가 번 돈으로 투자 회사 차리면, 내가 1호 투자자 할게.”
유나의 가벼운 농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단어 하나가 민재의 가슴에 박혔다. ‘네가 번 돈’.
“그래. 그러려면 아직 멀었지.”
민재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왜? 너 지금 꽤 벌었잖아. 50만 원이 300만 원 됐는데.”
“그 돈, 네 세상에서는 어떤 의미인데?”
민재의 돌발 질문에 유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무슨 뜻이야?” “아니야. 그냥… 아직 한참 멀었다는 소리야.”
민재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지만, 통화가 끝난 후에도 씁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300만 원. 그 돈으로 그는 고시원을 벗어날 수도, 어머니께 용돈을 보내드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강남행 버스를 타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그 간극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프게 느껴졌다.
SCENE #4 주말. 최진석 회장의 서재
유나는 거실에서 아버지 최진석 회장과 마주쳤다. 그는 골프복 차림으로 막 외출하려던 참이었다.
“너, 요즘 주식 같은 거 한다며?”
최 회장이 넌지시 물었다.
“네? 아… 그냥 친구랑 소액으로…” “누가 쓸데없는 소리를 가르쳐서. 쯧.”
최 회장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는 평생을 공장에서 0.001mm의 오차와 싸워온 사람이었다. 손에 잡히는 쇳덩이와 기계만이 진짜라고 믿는 그였다.
“아빠, 요즘은 세상이…”
“세상은 무슨. 돈이라는 건 말이야, 땀 흘려 벌어야 진짜 내 돈이 되는 거야. 숫자놀음으로 번 돈은 쉽게 들어온 만큼 쉽게 나가는 법이다. 그런 허황된 생각 말고, 졸업하고 회사 들어올 준비나 제대로 해. 알았어?”
그는 유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현관을 나섰다. 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을 예측하는 것보다, 아버지의 저 견고한 세상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 터였다. 그리고 그 세상은, 자신이 민재와 함께 있기 위해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었다.
뜨거워지는 시장과 함께 선명해지는 세계의 간극. 민재는 과연 돈만으로 이 격차를 메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