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벽
[세 줄 요약]
4화에서 '세상의 간극'을 느낀 민재는 더 큰 성공에 대한 갈망으로 조급해지고, 유나는 그런 그의 불안을 감지한다. 도서관에서 마주친 강태민은 질투심에 민재의 투자를 '근본 없는 투기'로 폄하하고, 유나는 단호하게 민재의 편을 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재는 모두가 열광하는 '동학개미운동'을 넘어,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함을 깨닫고 '디파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을 시작한다.
SCENE #1 다음 날. 민재의 고시원 방
민재는 밤새 잠을 설쳤다. 어젯밤 통화에서 느꼈던 300만 원의 간극. 유나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선명하게 느껴진 뒤, 그의 마음은 조급함으로 들끓었다. 노트북 화면 속의 붉은 수익률은 더 이상 승리의 징표가 아니라,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의 입구처럼 보였다.
‘아직 멀었어.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그의 시선은 비트코인 차트를 넘어, 더 복잡하고 위험해 보이는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가 환호하는 이 상승장이 영원할 리 없었다. 진짜 승부사는 다음 파도를 준비해야 했다.
SCENE #2 오후. 한국대학교 중앙도서관
도서관 창가 자리. 민재는 책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전공 서적이 아닌, 빼곡한 영어로 가득 찬 해외 사이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익숙한 향기와 함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기서도 공부 중이야? 진짜 독하다, 너.”
유나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제… 내가 뭐 실수한 거 있어? 통화 마지막에 너 목소리가 안 좋아서.”
유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어젯밤 민재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민재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의 내면을 이토록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그는 애써 둘러댔지만, 유나는 그의 눈에서 불안과 조급함을 읽었다.
“요즘 무슨 생각해? 표정이 늘 심각해.”
유나의 질문에 민재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자신을 걱정해주는 그녀의 진심 어린 눈빛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열었다.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있어. 모두가 지금 이 파티에 취해있지만, 진짜 돈은 다음 파티에서 벌리니까.”
그는 노트북 화면을 그녀에게 살짝 보여주었다.
SCENE #3 같은 장소. 다른 세계의 충돌
“최유나, 여기서 뭐해? 아, 강민재도 있었네.”
차가운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갈랐다. 한태민이었다. 그는 두 사람의 친밀한 분위기에 심기가 불편한 듯,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젯밤 유나의 어머니로부터 ‘유나가 이상한 애랑 어울리는 것 같다’는 전화를 받은 터라, 그의 눈에는 노골적인 적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유나에게 말을 걸면서도, 곁눈질로 민재의 노트북 화면을 훑었다.
“아직도 그런 위험한 거 보고 있었어? 유나야, 이런 건 듣지도 마. 근본도 없는 폰지 사기 같은 거야. 기본은 재무제표와 현금흐름이라고 교수님도 말씀하셨잖아.”
그는 유나의 보호자인 척, 민재를 무지한 투기꾼으로 몰아갔다.
민재가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유나가 먼저 나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선배. 선배가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에요.”
태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뭐?”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금융이 필요한 법이죠. 저희는 지금 그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어요. 선배가 말하는 ‘기본’이 언제까지나 통할 거라고는 아무도 장담 못 하는 세상이잖아요?”
그것은 민재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 자신의 논리로, 그녀의 세상에 속한 사람과 맞서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방관자나 증인이 아니었다. 완전한 그의 편이었다.
한태민은 모욕감에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떠났다. 도서관에는 짧은 정적이 흘렀다.
“…왜 그랬어?”
민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선배가 틀린 말 하는 것 같아서.”
유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녀의 귀는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 순간, 민재는 그녀와 자신 사이의 벽이 아주 조금, 허물어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한태민의 등장은 그 ‘보이지 않는 벽’이 얼마나 현실적인 위협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SCENE #4 그날 밤. 새로운 전쟁의 서막
고시원 방으로 돌아온 민재는 이전보다 더 강한 결의에 휩싸였다. 유나의 믿음은 그에게 용기를 주었지만, 한태민의 조롱은 그의 자존심에 불을 붙였다.
그는 노트북을 켰다. ‘동학개미운동’이 만들어낸 KOSPI의 화려한 상승세. 하지만 그의 눈은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도서관에서 유나에게 보여주려 했던, 그러나 한태민 때문에 설명이 끊겼던 바로 그 세계를 열었다.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 위험천만한 정글.
그는 자신의 투자금 일부를 비트코인에서 이더리움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디파이 생태계의 기축통화였다. 그리고 자신이 몇 주간 분석한 가장 위험하고, 가장 기대수익률이 높은 디파이 프로토콜에 자산을 예치했다. 복잡한 절차와 수많은 위험 경고. 손가락이 떨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더 이상 50만 원짜리 가설 검증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고, 그녀의 세상 앞에 당당히 서기 위한, 그의 모든 것을 건 두 번째 전쟁의 시작이었다.
한태민의 조롱은 오히려 민재의 야망에 불을 붙였다. 모두가 무시하는 디파이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그. 과연 그곳은 새로운 기회의 땅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앗아갈 더 깊은 함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