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바다, 디파이(DeFi)
[세 줄 요약]
민재는 밤을 새워 디파이 세계를 탐험하며, 살벌한 리스크 속에서 엄청난 기회를 발견한다. 유나는 민재를 통해 '신뢰가 필요 없는 시스템'이라는 탈중앙화의 핵심 개념을 배우고, 두 사람은 '디파이 스터디'라는 명목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민재는 수익금의 일부를 처음으로 인출해 낡은 노트북을 바꾸고, 작은 성공의 기쁨과 함께 더 큰 목표를 향한 결의를 다진다.
SCENE #1 밤. 민재의 고시원 방
민재의 방은 작은 우주선 조종석 같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스무 개가 넘는 인터넷 창이 열려 있었다. 트위터, 디스코드, 텔레그램, 그리고 이름 모를 해외 커뮤니티들. 그는 눈을 번뜩이며 수천 개의 정보 파편들 속에서 진짜 신호를 걸러내고 있었다.
그가 탐험하는 디파이의 세계는 정글 그 자체였다. ‘이자 농사(Yield Farming)’, ‘유동성 공급’, ‘러그풀(Rug Pull)’, ‘스마트 컨트랙트 취약점’. 모든 것이 생소하고 위험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수십억이 사라지는 해킹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코드 한 줄, 클릭 한 번에 모든 것이 증발할 수 있는 살벌한 신세계.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엄청난 기회를 보고 있었다. 연이율(APY) 100%, 200%. 전통 금융의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숫자들이 그의 눈앞에서 춤을 췄다. 이것은 단순한 이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금융 시스템의 탄생에 기여하는 대가로 받는, 일종의 ‘개척자의 보상’이었다.
그는 며칠간의 분석 끝에, 가장 유망해 보이는 프로토콜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자신의 이더리움 일부를 그곳의 ‘유동성 풀’에 예치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 그의 돈은 더 이상 그의 통제권 안에 있지 않았다. 블록체인 위의 코드, 즉 스마트 컨트랙트만이 그의 자산을 증명할 뿐이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50만 원을 베팅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이었다.
SCENE #2 며칠 후. 도서관 휴게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네 돈, 무사해?”
유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민재가 디파이에 투자했다는 말을 들은 뒤, 그녀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무사한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어.”
민재는 말없이 자신의 노트북을 돌려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그가 투자한 디파이 프로토콜의 대시보드가 떠 있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숫자가 올라가는 ‘보상(Reward)’ 항목.
“이게… 이자야?”
“비슷해. 내가 유동성을 공급한 대가로, 이 시스템의 지분을 매초마다 받고 있는 거야.”
“은행 없는 은행이라는 건 알겠는데…”
유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누가 보증해? 우리 은행은 망해도 국가가 5천만 원은 보증해주잖아. 이건 그냥 코드 쪼가리인데, 어떻게 믿어?”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민재의 눈이 빛났다.
“바로 그게 핵심이야. ‘누가’ 보증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보증하느냐의 문제지.”
민재는 노트북을 자신의 쪽으로 다시 돌려, 개념도를 그려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존 금융은 은행, 정부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제3자’를 믿는 시스템이야. 우리 아빠가 쇳덩어리를 믿는 것처럼, 우리는 은행 간판을 믿는 거지. 내 돈을 잘 지켜주고, 규칙대로 이자를 줄 거라고. 하지만 디파이는 달라. ‘누구도 믿을 필요 없는 시스템(Trustless System)’을 믿는 거야.”
“믿을 필요가 없다고?”
“응. 모든 거래 기록과 규칙은 블록체인이라는, 전 세계 수천 개의 컴퓨터에 똑같이 복제된 공개 장부에 기록돼. 한번 기록되면 위조나 삭제가 불가능해. 내가 이 프로토콜에 돈을 넣고, 연 100%의 이자를 받기로 한 ‘계약’은 코드로 짜여서 블록체인에 영원히 박제되는 거야. 은행장을 믿는 게 아니라,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수학과 암호학을 믿는 거지. 그래서 ‘탈중앙화’ 금융인 거고.”
유나는 숨을 죽인 채 그의 설명을 들었다. 거대한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왜 사람들이 자기 돈을 그런 위험한 곳에 넣어?”
“두 가지 이유야. 탐욕과 공포.”
민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첫째는 탐욕. 방금 네가 본 미친 수익률. 초기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리는 거지. 하지만 둘째 이유가 더 중요해. 바로 공포야.”
“공포?”
“사람들은 이제 은행과 정부를 예전만큼 믿지 않아. 2008년 금융위기 때 은행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봤고, 지금은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내서 내 돈의 가치가 매일같이 떨어지는 걸 보고 있잖아. 내 돈의 가치가 은행 예금 속에서 조용히 녹아내리는 공포가, 코드의 버그라는 공포보다 더 커지기 시작한 거야. 사람들은 낡은 시스템에서 탈출할 구명보트를 찾고 있고, 디파이가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거지.”
그의 설명이 끝나자, 유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돈의 흐름 너머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시대의 불안을 꿰뚫어 보는 그의 통찰력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 후로 두 사람에게는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디파이 스터디’. 유나는 민재에게 디파이의 개념을 배우고, 민재는 유나에게 설명해주며 자신의 논리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스터디라는 명목 아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만의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SCENE #3 일주일 후. 첫 번째 수확
민재의 디파이 투자는 첫 번째 의미 있는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이자로 받은 코인의 가치가 100만 원을 넘어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수익금을 ‘수확(Harvest)’했다. 그리고 그 돈을 현금으로 인출했다.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백화점이나 옷 가게가 아니었다. 용산 전자상가였다. 그는 몇 년간 자신과 함께 싸워 온, 이제는 너무 느려져 버린 낡은 노트북을 바꿀 생각이었다. 더 빠른 분석,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최고의 무기.
새 노트북을 품에 안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는 길.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100만 원. 누군가에게는 작은 돈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자신의 논리와 용기로 일궈낸 첫 번째 전리품이었다.
SCENE #4 그날 밤. 새로운 무기
새 노트북은 괴물 같았다. 수십 개의 창을 띄워도 버벅거림이 없었고, 화면은 눈이 부시게 선명했다. 그는 새 무기를 얻은 장수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띠링-’ 그는 유나에게 새 노트북 사진을 찍어 보냈다.
[민재: 새로운 무기. 디파이가 사줬어.]
답장은 거의 실시간으로 돌아왔다.
[유나: 와! 축하해! 진짜 멋있다. 그걸로 더 큰일 해야지! 완전 어벤져스 된 거 같네.]
민재는 유나의 메시지를 보며 웃었다. 그는 반짝이는 새 노트북을 한번, 그리고 여전히 비좁고 낡은 자신의 고시원 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 작은 성공은 달콤했지만, 동시에 그의 허기를 더욱 자극했다.
아직 멀었다. 이 방을 벗어나고, 그녀의 세상과 마주하려면. 그는 다시, 미지의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첫 성공의 달콤함도 잠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외부의 변수가 민재의 계획을 뒤흔들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