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가격
[세 줄 요약] 유나는 아버지의 소환 명령에 민재가 상처받을까 봐 불안해하지만, 민재는 오히려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마침내 시작된 저녁 식사 자리, 최진석 회장과 한태민은 민재의 출신과 배경을 들먹이며 그를 압박하지만, 민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진성정밀'의 핵심 리스크를 꿰뚫어 보며 최 회장의 허를 찌른다.
SCENE #1 다음 날 저녁. 학교 앞
유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민재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소환 명령 이후, 그녀는 꼬박 하루를 끙끙 앓았다. ‘그냥 내가 아프다고 할까. 아니면 민재가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할까.’ 수십 가지 핑계를 생각했지만, 어느 것도 아버지의 날카로운 눈을 속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과외를 마치고 나온 민재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유나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민재야. 우리 아빠가… 너 한번 보자고 하셔.”
그녀는 지난 주말 있었던 저녁 식사 자리와, 자신이 ‘파트너’ 이야기를 꺼낸 것, 그리고 아버지가 그를 소환했다는 것까지. 숨기지 않고 전부 말했다.
“미안해. 그냥 편한 자리는 아닐 거야. 우리 아빠… 네가 하는 일, 아마 좋게 안 보실 수도 있어. 한태민 선배도 같이 나올 거고.”
유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니까… 억지로 안 와도 돼. 내가 잘 둘러댈 수 있어.”
이야기를 다 들은 민재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그거, 면접이네.”
“……뭐?”
“면접. 내가 어떤 놈인지, 네 말대로 진짜 실력이 있는 놈인지 아니면 그냥 너를 홀린 사기꾼인지, 직접 확인하겠다는 거잖아.”
그는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피할 이유 없지.”
민재는 유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약간의 쓴맛과, 그 이상의 오기가 담겨 있었다.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라면, 빨리 만나는 게 낫지. 네가 어떤 세상에서 사는지, 나도 제대로 보고 싶었고.”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 관문이라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유나는 그 순간,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SCENE #2 약속 당일. 청담동 ‘운산’ VIP 룸
육중한 문이 닫히자, 방 안의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최고급 코스 요리가 하나씩 들어왔지만, 누구도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유나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 좌불안석이었고, 한태민은 여유로운 척 민재를 깔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오직 최진석 회장과 강민재, 두 사람만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탐색전의 첫 포문은 최 회장이 열었다.
“학생, 부모님은 뭘 하시나?”
전형적인, 상대의 ‘급’을 파악하려는 질문이었다.
“어머니는 지방에서 작은 식당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안 계십니다.”
민재는 조금의 망설임도, 부끄러움도 없이 담백하게 사실을 말했다.
그 순간, 한태민이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다.
“회장님, 민재 학우는 저희 과에서도 늘 좀… 과감한 베팅을 즐기는 편입니다. 안정적인 것보다는 한 방을 노리는 스타일이죠.”
그는 ‘베팅’, ‘한 방’ 같은 단어를 교묘하게 섞으며, 민재를 근본 없는 투기꾼으로 몰아갔다.
SCENE #3 같은 장소. ‘진성정밀’의 가치
최진석 회장은 손을 들어 태민의 말을 막았다. 그는 그런 시시콜콜한 뒷담화가 궁금한 게 아니었다.
“됐다. 내 딸이 자네 덕에 회사 위기를 넘겼다고 하더군. 자네 눈에는… 우리 진성정밀이 어떤 회사로 보이나? 가치가 얼마나 될 것 같아?”
이것이 진짜 면접 질문이었다. 유나의 심장이 철렁했다. 섣불리 대답하면 책상머리 지식만 아는 애송이가, 너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면 오만한 투기꾼이 될 뿐이었다. 완벽한 함정 질문.
민재는 잠시 최 회장의 눈을 응시하더니,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재무제표상의 ‘가격’은 누구나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고요. 하지만 진짜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곳이라니?”
최 회장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흥미가 깃들었다.
“진성정밀의 가장 큰 가치는 지난 40년간 쌓아온 압도적인 기술력과 업계의 신뢰입니다. 회장님 그 자체이기도 하고요.”
민재는 먼저 상대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로 존중을 표했다. 그리고 곧바로,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하지만 동시에, ‘회장님’이라는 단 한 사람에게 그 모든 가치가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
최 회장은 물론, 유나와 한태민의 눈이 커졌다. 누구도 감히 그의 앞에서 꺼내지 못했던, 진성정밀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였다.
“회장님의 다음 세대가 이 가치를 어떻게 계승하고, 다가올 디지털 시대에 맞게 확장하느냐에 따라, 진성정밀의 가치는 지금의 10배가 될 수도, 혹은 반 토막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본 진성정밀의 가치는, 그래서 아직 ‘미정’입니다.”
그의 분석은 기업의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과 리스크를 향해 있었다.
SCENE #4 같은 장소. 면접의 끝
최진석 회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 어린 학생이, 자신의 제국이 가진 가장 깊은 아킬레스건을 단번에 꿰뚫어 본 것이다.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시험 문제를 던졌다.
“자네, 꿈이 뭔가? 돈 많이 버는 거 아닌가?”
그는 지갑에서 두툼한 수표책을 꺼냈다.
“내가 자네를 아주 좋게 봤다 치고, 얼마를 주면 우리 유나한테서… 그리고 내 회사에서 신경을 꺼주겠나? 자네 능력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텐데, 내가 추천서 한 장 써주지.”
노골적인 모욕. 유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민재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저는 돈을 버는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뭐라고?” 최 회장의 눈이 커졌다.
“저는 돈이 스스로 돈을 벌게 하는 시스템을 소유하는 것, 즉 **‘경제적 자유’**에 관심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제게 얼마를 주시든, 그 돈은 제 목표를 위한 씨드머니가 될 뿐, 목표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민재는 마지막으로 유나를 한번 바라보고, 다시 최 회장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회장님의 따님이라는 사실을 떠나서, 유나는 제게 가장 중요한 지적인 파트너입니다. 그런 파트너십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민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최진석 회장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식을 깨부순 이 당돌한 청년을 쏘아볼 뿐이었다. 괘씸함, 놀라움, 그리고 아주 희미한… 인정.
한태민은 완벽하게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평생을 배워 온 엘리트의 언어가, 고시원 골방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깨우친 이방인의 언어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민재는 자신의 패를 모두 보여주었다. 이제 최진석의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계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당돌한 청년은 적인가, 아니면 탐나는 무기인가.
드디어 13화 연재를 마쳤습니다!
사실 내일 둘째 100일 잔치 가족식사가 있는데요..
둘째이기도 하고, 돌 행사도 아니라.. 거의준비 없이 가긴하는데 이렇게 준비 안해도 되나 싶긴 하네요..
코인 인 러브 쓰면서 하루종일 민재, 유나, 최회장... 서사만 떠올리네요.. 이러면 안되는데..ㅋㅋ
부족하지만 즐겁게 보고계시다면 좋아요와 댓글 꼭 부탁드립니다!! (작은 댓글하나에도 낄낄대며 남편에게 자랑하며 다음화 쓰고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