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종족의 언어
[세 줄 요약] 10억 운용 계약 첫날, 최진석 회장은 '현금 보유'를 택한 민재를 불러내 심리적으로 압박하지만, 민재는 자신만의 논리로 그의 압박을 되받아친다. 인턴이 된 유나는 아버지의 냉혹한 경영자로서의 모습을 목격하며 민재가 마주한 벽의 높이를 실감한다. 며칠 뒤, 의무적으로 참석한 비즈니스 모임에서 민재는 모두를 압도하는 존재감을 가진 마이클 정과 마주친다.
SCENE #1 계약 첫날. 진성정밀 회장실
“그래서, 이게 자네가 말한 ‘새로운 세계의 지도’인가?”
최진석 회장은 자신의 모니터에 떠 있는 단 한 줄짜리 보고서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투자 전략: 현금 보유. 시장의 방향성이 명확해질 때까지 관망.]
그는 막 사무실로 불려온 민재를 쏘아보았다.
“내 돈 10억으로 하는 첫 번째 일이, 고작 아무것도 안 하는 건가?”
민재는 최 회장의 노골적인 실망감과 조롱이 섞인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서는 사냥을 나가실 때, 숲에 들어가자마자 총부터 쏘십니까?”
“뭐?”
“아니면 최고의 사냥감이 나타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십니까?”
최 회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방식인 ‘사냥’에 비유하는 어린 녀석의 당돌함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말은 청산유수로군.”
최 회장이 애써 평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그 사냥감이 안 나타나면? 6개월 내내 숨만 죽이고 있을 셈인가? 내 돈은 이자도 안 붙고 썩어 가는데?”
“기회는 늘, 모두가 포기하고 떠나는 순간에 찾아옵니다.”
민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저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겁니다. 지금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다가올 기회를 잡기 위한 가장 공격적인 포지션입니다.”
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부딪혔다. 최 회장은 깨달았다. 이 녀석은, 자신의 심리전에 쉽게 휘둘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SCENE #2 같은 주. 유나의 첫 출근
유나는 ‘회장님 딸’이라는 꼬리표 대신, ‘경영기획팀 인턴 최유나’라는 명패를 목에 걸었다.
그녀의 첫 업무는 산더미 같은 회의록을 정리하고, 임원들의 커피를 타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녀를 특별 대우해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는 복사하는 모든 보고서의 내용을 머릿속에 새겼고, 임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의 제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안의 역학 관계와 보이지 않는 룰은 무엇인지. 그녀는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어느 날 오후, 유나는 최 회장이 주재하는 임원 회의에 커피를 들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다른 얼굴을 보았다.
부드러운 아버지가 아닌, 냉혹한 포식자. 실적이 부진한 임원을 가차 없이 몰아세우고, 숫자로 모든 것을 증명하라는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민재가 마주하고 있는 벽의 높이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SCENE #3 며칠 후. 예상치 못한 호출
민재는 며칠째 현금 보유 전략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 회장의 압박은 계속됐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김 비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장님께서 오늘 저녁 비즈니스 모임에 자문 역할로 참석하라고 하십니다.”
계약서 8조. 거부할 수 없는 의무 조항이었다.
약속 장소는 강남의 한 회원제 클럽의 프라이빗 룸이었다. 방 안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건설, 해운, 철강 등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이는 ‘구시대의 왕들’이 모여 있었다.
민재는 최 회장의 옆에 병풍처럼 서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그저 듣고 관찰할 뿐이었다. 골프, 정치, 그리고 자신들의 사업 이야기. 그에게는 너무나 먼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때, 룸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 안의 공기가 순간 묘하게 달라졌다. 최 회장을 비롯해, 콧대 높기로 유명한 재계 거물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하는 모습은, 민재에게조차 낯선 광경이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격식 있는 존경 이상의, 일종의 경외감마저 엿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정 대표님.”
최 회장의 목소리 역시, 평소의 호탕함과는 다른, 한층 정중한 톤이었다.
그가 바로 마이클 정. 월스트리트의 신화이자,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 젊은 나이에 수조 원대의 자금을 굴리는 퀀텀 캐피탈의 수장이었다.
마이클 정의 시선이 가볍게 방 안을 훑었다. 그러다 문득, 구석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젊은 동양인에게 시선이 멈췄다. 최 회장의 옆,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그 존재.
마이클 정의 눈빛은 순간 날카롭게 번뜩였다. 마치 숲 속에서 전혀 다른 털색을 가진 낯선 짐승을 발견한 포식자의 시선이었다. 그는 짧은 순간 동안 민재를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방 안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마이클 정은 최 회장을 향해 턱짓하며, 그러나 시선은 민재에게 고정한 채, 나지막이 물었다.
“최 회장님.”
“…….”
“옆에 있는 저 친구는, 누구죠?”
불타는 금요일, 17화까지 연재하고 내일 다음편을 또 올리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오늘은 새로운 인물 '마이클 정'이 나왔습니다. 일전에 한번 최회장의 말에서 '마이클 정'이 등장한 적 있는데요. 오늘 본격 등판했습니다. 마이클 정.. 강민재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좋아요와 댓글은 정말 연재에 힘이 됩니다!!
다음화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