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팥이 나는, 콩밭에 내 마음이. 그런데 그것을 과연 콩밭이라 할 수 있나?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초록색 신호등처럼 깜빡인다. 몇 초 남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점멸하는 초록 불을 보고 있으면 불안하다. 불안하고 불온한 금요일이다. 왜 빨간 불이나 노란 불은 깜빡이지 않는 걸까. 보행자의 입장에서 빨간 불이나 노란 불일 때는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다. 초록 불이 깜빡인다는 건 안전한 시간이 곧 사라질 거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조금 밉다. 괜찮은 시간이 끝나간다는 건 알려주고 괜찮지 않은 시간이 끝나간다는 건 알려주지를 않네. 시간적인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모래시계도, 아침에 울리는 시끄러운 알람도. 안전한 시간이 끝났다고. 이제는 다시금 몸을 뒤집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아무튼 내 마음은 다시 콩밭에. 어떻게든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서 콩밭에. 콩밭으로 가려고 무수히 많은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지나친다.
빨간 불 앞에서도 개의치 않고 건너가는 사람, 발걸음을 멈춰 그 자리에 굳히는 사람이 있다. 빨간 불 앞에서 사람들은 건너기도 하고 건너지 않기도 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그런데 초록 불 앞에서 건너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 다들 부지런히 어딘가로 향하고 있구나. 괜히 그것에 반발심이 생겨 신호등의 불이 4번 바뀌는 동안 가만히 서 있던 적이 있다. 내 앞과 뒤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교차됐다. 사람들은 모두 걸을 때 팔과 다리를 흔들었다. 계속 서 있는 내 옆에 있던 건 술에 취해 멍을 때리는 아저씨뿐이었다. 그 아저씨나 나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술도 안 마셨는데 왜 이런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걸까.
어렸을 때는 변하지 않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매일 밤 끌어안고 자던 인형이 언젠가 사라졌다. 책가방이 해지면 새로 샀다. 변하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는 건 오히려 아주 힘든 일이었다. 어쩌면 이러다가 엄마랑 아빠가 처음 보는 여자아이를 데려오고 나는 발가벗겨진 채로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절대 변하지 않고 대체되지 않는 것,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지 간에. 그걸 너무 찾고 싶었다. 호주머니에 매번 넣고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싶었다. 그러나 조금 더 커서 알게 되었지. 내가 지킬 수 있는 건 나도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자리라는 것을. 그것은 바로 그림자의 각도나 길이나 넓이도 아니고 겨우 그림자가 시작되는 위치일 뿐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또 콩밭에. 이상한 싹이 터 버린 콩밭에. 무언가 심을 수 있을 만큼 남은 자리는 없는지, 밭을 조금 더 확장할 수는 없는지, 물뿌리개도 없는데 발이 닿는 곳마다 팥만 가득하다. 사실 팥인지 아닌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그런 콩밭에 왜 가려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가면 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가서 그걸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그래도 간다. 마음만은 지키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