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울었으면 할 일을 하자. 교수님들이 할 법한 말이다. 다 운 다음에 정말로 할 일부터 하나요. 교수님들이 어떤 표정으로 얼마나 길고 서럽게 우시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할 일을 하기 전에 일단 세수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눈물 자국이 굳는다. 눈을 뜨거나 입을 벌릴 때도 뻑뻑하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세수를 했다. 나는 매일 세수하고 살아야 한다.
매주 2번씩 강의실에서 시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매 수업 때마다 합평을 한다. 나는 아주 가끔 내 시를 읽고 자주 사람들의 시를 듣고 말한다. 강의실에 앉아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내 시를 낭독한다. 그럴 땐 기침 소리도 나지 않는다. 잠시 환절기가 멈춘 것 같다. 시는 매번 달라진다. 매번 다른 사람이 다른 시를 읽으니까. 합평을 위해 강의실에 오기 전, 시를 미리 여러 번 읽는다. 한참을 읽고 필기한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메모도 해 둔다. 그런데 강의실에만 오면 전부 잊는다. 내가 쓴 글씨를 해석할 수도 없는데 무작정 손을 든다. 교수님, 저 말하고 싶어요. 말하고 싶습니다. 입을 벌리는데 광대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것처럼 건조하다. 눈물은 아무리 발라도 보습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동국대학교 명진관 강의실 의자는 전부 일체형이다. 의자에 한 번 앉으면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재빨리 일어서려고 하면 재빨리 넘어지게 된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상상하는 것이다. 누군가 읽고 있는 누군가의 시를. 그 사람의 소리를. 강의실 밖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을. 나는 자주 몬데그린을 겪는다. 특정한 언어를 의도된 것과는 다르게 들어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시를 읽지 않고 듣는다. 대부분은 어렴풋하게 알아듣지만 가끔 재밌는 표현을 알아차린다. 시래기를 들으면 쓰레기가 생각난다. 파라노이아(paranoia)를 들으면 파란 오이가 생각난다. 계약을 들으면 개학이 생각난다. 코냑(cognac)을 들으면 곤약이 생각난다. 이런 게 웃겨서 혼자 웃음을 참을 때가 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시는 끝나 있고 나만 혼자 남아 시를 계속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몬데그린이라는 제목으로 시도 썼다.
그러나 강의실을 나오면 다 잊는다. 뭘 읽었고 뭘 들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본 것만 기억이 남는다. 때때로 시와는 아주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잠시 꺼졌다가 켜진 강의실 조명등이기도 하고, 옆자리에 떨어져 있는 축축한 우산이나 교수님이 오늘 입고 오신 강렬한 빨간색 의상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매번 달라지지만 얼굴만큼은 달라진 적이 없다. 마스크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사람들이 아침에 세수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젠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데 강의실은 여전하다.
가끔 꿈을 꾼다. 꿈속의 나는 강의실에 앉아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내 시를 낭독한다. 그건 이번 학기에 처음 만난 학우의 목소리처럼 생경하고 또 어색하다. 나는 그걸 나보다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다. 강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태블릿이나 노트북, 프린트된 종이로 조용히 시 본문만 응시하고 있다.
언젠가 시를 읽다 말고 주변 학우들의 눈치를 살폈던 기억이 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부터 아, 이제 세수하고 싶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