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해도 난 괜찮을 거야

by 썸머킹


삽질해도 난 괜찮을 거야




삽을 든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나를 땅에 묻는 중이었다. 이미 어깨까지는 묻힌 상태였다. 주위를 살피자 고구마밭이었다. 고구마가 열린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고구마는 흙 속에서 나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땅은 씨앗을 묻기 좋게 축축한 상태였을 뿐이다. 근데 여기가 꼭 고구마밭인 것만 같았다. 내가 이상한 확신을 가지면 그건 꼭 이루어진다. 나는 고구마밭에 묻히는 중이었다. 엄마가 내 옆에서 삽으로 푸하하하 흙을 팠다. 엄마는 고구마밭에서 삽질 중이었다.


초등학생 때 아빠와 함께 새벽에 공포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많고 많은 영화들 중에 <악마를 보았다>를 본 것은 아직도 후회한다. 굵은 쇠 파이프나 몽키스패너, 날카로운 메스, 그리고 삽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묻는다. 나는 그때부터 이것들을 전부 흉기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쯤엔 또…… 자다 말고 엄마에게 달려가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언제 죽어? 엄마가 죽고 나면 나는 어떡하지? 엄마, 나는 어떻게 살아?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며 푸하하하 우는 나를 안아줬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엄마의 이른 죽음 같은 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나를 묻어주고 있었으므로.


식물은 삶이 시작될 때 땅에 묻히는데 사람은 죽을 때 땅에 묻힌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삽은 사람을 죽일 때 사용되는 것이다. 서울에서 두 시간 동안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면 읍면리를 소재로 하고 있는 우리 집에 도착한다. 집에서 나와 7분 정도 걸으면 사방이 밭이다. 나는 가출했을 때 주로 그곳에 앉아 술 마시며 울거나 술 마시며 노래했다. 가출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고 밭 주변엔 가로등이 없다. 한 번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발에 무언가 걸려 넘어질 뻔했다. 핸드폰 후레시를 켜 살펴보니 삽이었다. 삽에게서 멀어지면 삽이 나에게 달려와 내 머리를 세게 내리칠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날 해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매일 와서 삽 근처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전했다. 그런 나날이 한참 지나, 비가 죽을 듯이 쏟아지던 어느 밤, 친구들이 밭 근처에서 푸하하하 울고 있던 나를 데리러 왔다. 집에 도착하여 자기 전에 이 근방 밭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 우리 동네의 살인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는 밭에 가지 않았다. 밭에서는 이름 모를 풀들만 자라고 있었다.


식물은 사랑받을 때 삽을 선물 받는다. 요즘엔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집에 화분을 사가 식물을 기른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모종삽만 봐도 놀란다. 너무 날카롭고 가벼워 보여서 꼭 누군가를 향해 겨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인지,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인지 알 수 없어서 모종삽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삽” 말고 “삽질”이란 말을 떠올리면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마음이 편해진다. 문보영 시인이 말한 “삽질”의 의미가 죽음보다 먼저 날 찾아오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땅을 파는 것. 아무도 묻히지 않고 새로운 길만 생겨나는 것. “삽” 때문에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삽질”하고 있는 인간은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삽”이 무서워지면 문보영 시인이 “삽질”하고 있는 걸 생각한다. 그러면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좀 웃게 되고 시를 써야지, “삽질”해야지, “삽”을 무서워할 시간에 “삽질”을 해야지, 말뿐인 다짐을 한다.


그래도 아직은 집에 화분을 들이지 않았다. 모종삽을 들고서 식물을 뽑고 흙을 갈아주고 얽힌 뿌리를 응시해야 하는 일. 삽을 들면 엄마가 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있지도 않은 딸을 붙잡고 살아라, 너는 나보다 더 살아라, 하며 분갈이를 시켜줘야 할 것이다. 그 딸은 사람일까. 식물일까. 어쨌든 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으니 삽을 들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일 물도 주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뒀지만 꽃병 속 꽃은 결국 일주일도 안 돼 시들었다. 꽃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는데, 유일하게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꽃을 묻어주지 않은 것이었다. 엄마, 나는 언제 죽어? 내가 죽고 나면 내 딸은 어떡하지? 묻자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었다. 삽을 든 엄마에게 온전히 사랑받는 중이었다. 엄마는 삽질 중이었다.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물기를 뱉으며 푸하 하하 하 하하 하 하하, 손에 닿는 고구마를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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