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by 썸머킹


환상통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처럼 꽃잎이 맺혀 있는 가지를 흔든다. 사진을 찍는다. 꽃잎이 다 떨어지면 자리를 떠난다. 나는 사람들이 떨어뜨린 꽃잎을 밟는다. 꽃잎을 밟으면서 출근한다. 가끔 운동화를 뒤집어 보면 신발 바닥의 고무 틈 사이에 꽃잎이 껴 있다. 그것을 빼지 않고, 꽃잎이 껴 있는 운동화를 신고 퇴근을 한다. 꽃잎으로 꽃잎을 한 번 더 밟으며.


목련은 가장 더럽게 지는 꽃 중 하나라고 한다. 나는 새로 산 분홍색 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하면 날 때릴까 봐 차라리 바닥에 떨어진 꽃을 응시하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마다 까매진 목련이 있었다. 처음엔 목련을 피해 걷다가 나중엔 그 수가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어쩌면 내가 목련만 골라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분홍색 바지를 입고 분홍색이었던 목련을 밟았다.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분홍색 바지를 빨았다.


목련이 졌으므로, 곧 매미의 계절이 온다. 매미가 죽을 듯이 울 때는 어떤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매미는 나무의 머리채를 단단히 잡고 흔들고 있다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살려달라는 나무의 소리일 수도 있다는 것.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의 비약에 휩싸이게 된다.


빛이 좋으면 주먹이 더 잘 보일 수도 있지만 봄은 너무 눈부시다…… 바람도 선선해서 아무래도 피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박치기한다. 머리로 온 충격을 받으면 어지러워서 그런지 그나마 덜 아프다. 선생님에게 받은 수면제의 부작용이 발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괜히 몸이 더 간지러웠다. 약국에 가서 여러 종류의 연고를 사놓고 바르지 않았다. 버스에 타면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나를 때릴 것 같다. 나 같은 건 여기 탈 자격도 없다고. 하지만 안 되는데. 버스에 타야만 하는데. 버스의 흔들림을 느끼지 못하면 나는 내 안의 떨림을 혼자 견뎌야 한단 말이다. 진동과 반동이 필요하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온다. 마구잡이로 욕을 하고 쥐어팬다. 나는 웅크려서 맞는다. 아저씨에게 잡혀 나무처럼 흔들린다. 승객들은 가만히 앉아 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좌석과 바닥에 꽃잎들이 충분히 내려앉자 아저씨는 주먹을 멈춘다. 미안해요. 많이 때렸죠. 아녜요.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많이 맞아서 죄송합니다.


병원에 전화를 하고 입원 수속을 밟으러 간다. 선생님. 제가 방금 폭행을 당하고 와서요. 병원에서 몇 주간 치료받아야 할 것 같아요. 음, 제 생각엔 환자분은 지금 수술을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별다른 준비 없이 수술은 바로 시작된다. 나 같은 건 마취를 받을 자격도 없다고. 선생님들은 나를 개복해놓고 금방 수술 도구를 내팽개친다. 다 바닥에 던져버리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나는 배가 고팠다. 배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다. 혼자라서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배는 울었다. 너무 아프고 허하다고.


충무로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서 직진을 한다. 나는 다시 출근하러 간다. 맞지 않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출근한다. 샘솟아 나는 불안을 목련의 탓으로 돌리며. 목련만 골라 밟아가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목련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건 가끔 천국으로 가는 길처럼 보인다. 길 끝에, 남산타워쯤에 도달하면 문이 있을 것만 같다. 닫힌 문 앞에 가만히 서서 나는 울 것이다. 매미처럼, 나무처럼, 안쪽이 훤한 배처럼. 이제 그만 때려달라고. 이런 진동은 원한 적이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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