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밥을 먹는다. 먹을 시간이 없거나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먹지 않는 경우가 조금 더 많다. 그 가끔 중에서도 정말 가끔, 상 앞에 잘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 그건 방금 막 도착한 배달음식이거나 친구가 해줬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부 버리고 미역과 밥풀이 바짝 달라붙은 그릇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상태로 아무 생각이나 하고 싶다. 가끔 밥을 먹는 것처럼 그저, 가끔 그러고 싶은 것이다. 목젖이 아플 정도로 깊숙히 밥을 쑤셔넣거나 매운 김치를 한 무더기 욱여넣는 경우가 조금 더 많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목젖이 밥을 밀어내는 것이 느껴진다. 어느 새 나는 가끔 밥을 먹고 그 가끔 중에서도 정말 가끔, 밥을 먹다가 우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슬픈 사람에게 있어서 밥 먹다가 울었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상이라 나는 <슬픈 사람들 모임>에 갈 때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밥 먹었어? 아니. 왜? 그냥. 먹을 시간도 없고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슬픈 사람들은 꿋꿋하게 허기에 시달리는 우리를 좀비라고 스스로 칭했다. 다음 만남부턴 <슬픈 좀비들 모임>으로 이름을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얼마 전 유튜브로 제주도의 바다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사라오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사라오름, 사라오름. 이름 참 이상하다. 꼭 살아서 오른다는 것 같다. 사라오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사라오름을 오르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갑자기 신이 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라오름을 자랑했다. 뒤이어 우리 모임이 좀비들의 모임으로 바뀐 일을 말해 주었다. 네 생일 때 제주도 갈래? 정말? 응. 사라오름에 다녀오면 아무도 너를 좀비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더 많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거야.
사라오름에 가는 길은 경사가 낮아서 힘들지는 않지만 코스가 아주 깁니다. 12.2km로 왕복 소요 시간은 대략 5시간입니다. 사라오름에 다녀오면 다음 날에는 꼭 근육통에 시달리게 된다는 블로그 후기를 봤다. 사라오름에 오르게 되면, 나는 그것을 성장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월급날이 되었고 처음으로 등산화를 샀다. 사라오름에 다녀오고 나서 협재 해변 같은 다른 관광지도 살펴볼 것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바다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등산화를 신고 간다고 해도 말이다. 그때 가서 바를 새 선크림이 사고 싶어져서 집에 있던 선크림을 온몸에 바르고 나가기 시작했다. 아주 끈적였고 몸이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 꼭 좀비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상관이 없었다. 사라오름에만 다녀오면 더 이상 <슬픈 사람들 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믿음이 발목부터 나를 점점 적셨다.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신앙을, 높아지는 수위를 믿기로 했다. 종교를 갖게 된 좀비는 내가 아마 처음이겠지.
좀비도 과연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끔보다 자주의 이름으로 말하자면, 성인이 된 이후로 나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예감이 자주 들었다. 성인이 됐는데 왜 잘못되고 있지? 어떤 정상성에서 내가 완전히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수수료를 내고 잘못 예매한 비행기 표의 시간을 바꾸는 것이나 아직 설익은 밥을 입에 넣었다가 곧바로 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나는 사라오름을 자주 생각했고, 발에 딱 맞는 등산화를 구매했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이제 밥을 자주 먹어볼까, 다짐했다. 그러나 등산화는 내 발목까지 구겨넣으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컸다. 등산화는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한 상품이었다. 친구야, 발목으로 걸어다니는 좀비는 어떠니.
사라오름이 무너진 것 같아. 등산화를 잘못 산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 헐레벌떡 일어나 네이버에 사라오름을 검색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등산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곤 했다. 그러나 사라오름에 다녀와도 <슬픈 좀비들 모임>에선 계속 나를 부르고,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해야 할 것 같았다. 어서 가서 등산화를 잘못 샀다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해야 할 것 같았다. 사라오름이 무너지면 사라무너짐이 되는 걸까. 내가 자꾸 사라오름이 무너지는 걸 상상하는 바람에 진짜로 사라오름이 무너지게 되면 아무도 모르는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걸까.
그리하여 오늘은 참지 못한 것이다. 멜라민 그릇을 머리에 쓰고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하염없이 보냈다. 친구는 내색하지 않고 밥상을 치워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밥을 자주 먹으려 노력한다는 것. 내가 사라오름에 가기 전까지, 사라오름이 붕괴하기 전까지는 그래야 한다. 사라오름과 씩씩함과 건강함. 사라오름. 씩씩함. 건강함. 나 살아오름. 살아서 여기 올랐음. 사라오름도 언젠가 산 아래로 내려올 것임. 살아 무너질 것임. 걔라고 언제까지 살아서 오르겠음? 그러나 살아 무너진다는 것은 살아 있기에 가능한 것임. 살아 있음. 살아 있음! 그릇이 내 귀에 외치기 시작한다. 눈을 감으면 입안에 밥알 무덤이 쏴아아 무너지고, 잔해가 이리저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토록 생생한 파괴와 해체에 대해, 나는 신이 나서 친구에게 자주 자랑을 한다.